영준은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재빨리 핸드폰을 열고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초소에 있던 경비원 두 사람이 달려왔다.
“주 차장님, 어딥니까?”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다급하게 물었다.
“저기! 붉은색과 푸른색 물체. 아무래도 사람 같습니다.”
“정말이네요. 어디서 흘러들어 왔을까요?”

경비원은 여기 저기 전화를 걸었다. 5분도 안 되어 작은 배 한 척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마치 바다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나온 것처럼 신속했다.
“이곳을 담당한 해양경찰대입니다.”
영준이 수원에게 나직하게 설명했다.

금세 방파제 위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해양경찰선에서 구조 경찰 서너 명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잠수복을 끌어당겼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거 참 희한한 일이야. 어떻게 여기 들어왔지?”
“혹시 간첩 아닐까?”

구경삼아 모여든 직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해경대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물체를 배위로 끌어올렸다. 짐작대로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등에는 산소통을 메고, 옆구리에는 갈고리 같은 장비와 배낭처럼 생긴 백을 차고 있었다. 산소호흡기 마스크가 벗겨져서 가슴께에서 덜렁거렸다. 멀리서 보아도 죽은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바다 위 먼 곳에 떠 있던 요트 한 척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오직 수원만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쪽을 응시했다.

한수원. 나이 스물여덟. 파리 제6대학 핵물리학 박사과정 졸업. 프랑스의 프라마톰 원자력 회사에서 1년간 근무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민간 원자력 연구소에서 핵 발전을 연구하던 중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의 초청으로 귀국, 한국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고리원자력발전본부 제2발전소에 배치돼 한국형 원자로 주제어 시스템 개발을 맡고 있었다.

눈에 확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큰 키에 둥그스름한 얼굴, 단정한 이목구비가 볼수록 호감이 가는 형이었다. 어린 나이에 국제원자력 학술지에 독특한 방식의 제어시스템 논문을 발표해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재원이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곳곳에서 스카웃하려고 제안을 했지만 수원이 선택한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강병욱 정책처장이 연락을 취해 오자 수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어머니 김윤실은 수원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잘했다. 역시 네가 고국을 택할 줄 알았어.”
“나 없이 혼자 남아도 괜찮아?”
어머니는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나이가 벌써 예순여덟. 젊은 시절부터 혼자 살아온 어머니를 홀로 남기려니 수원은 마음이 아팠다.

“무슨 말을? 할아버지, 아버지의 뜻을 이어야지.”
어머니의 눈에 물기가 서렸다. 그러나 입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수원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심 때 바다에 떠오른 시체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퇴근할 무렵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아까 많이 놀라셨지요? 괜찮으십니까?”
주영준 차장이었다. 
“괜찮을 리가 있나요? 아까 본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네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술이라도 마실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좋은 생각이시네요.”

수원은 서류 가방을 챙겨들고 영준이 기다리고 있는 현관으로 나갔다.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준은 어색할 정도로 깍듯이 예의를 차렸다.
“제 차로 움직일까요? 간절곶에 한번 가보죠. 대한민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입니다.”

수원은 영준의 권유대로 지프 옆자리에 앉았다.
차는 곧 해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바다와 반대쪽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해가 뉘엿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낮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대요?”

“죽어 있었답니다. 익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영준은 로봇처럼 꼿꼿한 자세로 앞만 바라보고 운전하며 대답했다.
“이상한 점이라니요?”

“단순 사고사가 아닌가 봅니다. 장비가 모두 프로급이었답니다. 아주 계획적으로 인테이크에 접근한 것 같습니다.”
인테이크란 원자로의 냉각수로 쓰기 위해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취수구를 말한다.

“원자로에 침입하려고 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스톱 로그와 스크린 바까지 뚫을 수 있는 수중 강력 절단기를 갖추고 있었답니다. 인테이크를 통해 원자로로 가는 수로를 찾으려다가 스톱 로그에 장비가 끼여 꼼짝 못하게 됐나 봅니다.”
스톱로그는 큰 물고기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지 못하게 바다 밑에 촘촘히 세운 쇠기둥을 일컫는다.

“쇠기둥 틈에서 허우적대다가 숨이 끊어진 후 수면 위로 떠오른 것 같습니다.”
“그랬군요. 근해에서 잠수한 걸까요?”
“산소통 용량이 4시간짜리였다고 하니 수천 미터 떨어진 뭍이나 배, 소형 잠수정을 통해 들어왔을 겁니다.

“무슨 때문에 침입하려 했을까요?”
“수사팀도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습니다.”
“폐연료봉이라도 훔치려 했나?”

수원이 농담처럼 말을 던지자 영준이 힐끗 쳐다보았다.
“어쨌든 방사선 계측 결과 N.D(No Data)로 나왔다고 합니다.”
영준은 조그만 횟집 마당에 차를 세웠다.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야, 두 재원이 어쩐 일이신가?”

두 사람이 홀에 들어서자 누군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방사선 안전부 김승식 부장이었다. 총무과의 조민석 보안과장과 마주 앉아 소주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김승식 부장은 주영준 차장의 직속상관이었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목이 두툼하여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사람이 좋아 남의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해주었다.
“합석하지. 한 차장, 이쪽으로 앉아요. 술은 미인과 함께 마셔야지.”
김승식 부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수원을 향해 손짓했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야.”  [계속]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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