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임은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박인자, 그래, 이번에야말로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
나정임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수사하러 나온 형사 앞에 증언하기 위해 나섰다.

가구회사의 여사원 동기생 21명이 1년에 한 번씩 있는 연수를 위해 이곳 용인 호숫가에 왔다가 윤정선이라는 여사원이 호수에 익사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그때 마침 호숫가에서 나정임, 박인자, 그리고 익사한 윤정선 세 사람만이 있었다.

동기생 21명 중에도 이 세 사람이 가장 친해서 어디든지 거의 같이 다녔다. 그런데 요즘 나정임과 박인자 사이가 서먹해졌다.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르지만 속으로는 대단한 암투를 하고 있었다.

연수 온 첫날부터 이들은 같이 다녔다. 그날도 셋은 모두 수영복을 입고 호숫가로 나갔다. 거기서 뜻하지 않은 비극적인 사건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윤정선이 익사한 경위에 대해 목격자인 박인자와 나정임의 이이기가 서로 달랐다.

“정선이가 식당에서 나와 급하게 가운을 벗어 던지더니 그냥 물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가더라고요. 개는 강 건너까지 단숨에 가는 것 같았어요. 나는 잔디 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면서 걔 수영 솜씨를 부러운 듯이 보고 있었어요. 나정임도 내 앞에서 세수를 하며 머리를 감고 있었어요.

막 수영하러 들어갈 준비를 했던가 봐요. 그런데 갑자기 걔가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다가 물속으로 가라않고 말았어요. 세상에,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없어질 수 있나요? 정선아!“

그녀는 이야기를 마치자 얼굴을 감싸고 울부짖었다. 아직도 비키니 차림 그대로였으나 다 드러난 허벅지와 가슴을 감출 생각도 안 했다.

그녀는 일광욕을 했다고 하지만 눈처럼 하얀 피부와 굴곡이 뛰어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도 드물게 보이는 미인형이었다.
“당신들이 있던 곳에서 윤정선이 익사한 곳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되나요?” 수사관이 물었다. “한 50m쯤 될 거예요.”

현장에서 검안을 한 경찰의는 윤정선의 사인을 일단 익사로 추정했다. 머리와 어깨에 타박상 흔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호숫가 바로 위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입은 상처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인자와 함께 그 사실을 목격했다는 나정임의 증언은 전혀 달랐다. 그녀도 박인자만한 미인은 아니지만 늘씬한 키에 목이 긴 미인이었다. 긴 생머리 타입에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수영복의 물기가 아직 다 마르지도 않았다.

“정말 이럴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기 위해 계속 안경을 벗었다 썼다 했다.
“그때 내가 세수를 하고 있었던 건 맞아요. 하지만 난 똑똑히 보았단 말입니다. 정선이는 호숫가 언덕 위에서 누가 떠밀어 죽였단 말이에요. 이건 끔찍한 살인 사건이란 말입니다, 살인 사건.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녀가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그녀는 실은 우는 것이 아니라 우는 척하는 것이었다. 속에서는 복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서 잘해야 돼. 진짜처럼 말이야⋯ 이제야말로 복수를 하게 되는구나! 박인자!’

살인사건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수사관이 큰 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정말 누가 떠밀었어요? 하지만 언덕에서 떨어졌더라도 윤정선씨는 수영을 잘하니까 호숫가로 헤엄쳐서 나올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정말입니까”
수사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뒤에서 갑자기 떠밀자 기절한 듯 곤두박질해서 물속에 들어갔어요. 그래요, 갑자기 떠밀자 중심을 잃고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며 물 속으로 빠졌어요. 그때 아마 정선이는 정신을 잃었던 게 틀림없어요.”

“그래, 떠민 사람이 누굽니까? 그 사람을 보았어요.”
“똑똑히 보았어요. 그 여자는 바로⋯ ”
나정임은 손가락으로 울고 있는 박인자를 가리켰다.
“아니, 이럴 수가⋯ ”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나정임은 속으로 외쳤다. ‘아! 통쾌하다. 이제야 복수를 하게 되었구나. 박인자, 너는 알 거야. 왜 네가 범인이라고 내가 증언하는지. 김민우, 내 사랑 김민우. 내가 너를 동기생이라고 그이를 소개해준 것이 실수였어. 너는 나쁜 계집애야. 내 사랑을 가로채가다니. 너는 변명했지. 네가 가로챈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뭐 축하를 해 달라고? 나는 그 뒤 혼자서 얼마 울었는지 알아?

박인자, 축하해 주지. 이제 네가 교수대에 서는 것을 축하해 주고말고.‘
“애! 정임아! 너 미쳤니? 내가 떠밀었다고? 맙소사!‘
박인자가 울부짖었다. 그러나 수사관은 두 사람을 한참 번갈아가며 보고 있다가 말했다.

‘거짓 증언한 사람을 경찰서까지 좀 데리고 가겠습니다. 나정임 씨, 같이 가시죠.
“예! 제가요?”

나정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퀴즈. 수사관은 나정임이 거짓말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답변-초단]. 나정임은 도수 높은 안경을 쓰는 근시안이다. 따라서 50미터나 떨어진 언덕 저편에 있는 사람을 안경을 쓰지 않고는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안경 쓰고 세수하는 사람도 있을까?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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