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의 한국 철수’ 이미 시작 됐다

GM의 한국 '철수'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다. [일요서울]
GM의 한국 '철수'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다. [일요서울]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판매량이 반토막 나면서 여론과 시장마저 등 돌린 한국GM의 종착역은 ‘GM의 한국 철수’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시 나오고 있다. 해를 넘긴 2019임단협 교섭이 열리기도 전에 한국GM 노사가 격돌했다. 사측이 창원 및 제주의 부품 관련 물류센터와 사업소 폐쇄를 공지하면서, 노조가 카허카젬 한국GM 사장을 고소했다.

 

정부 지원 8000억원, GM 철수 ‘순서만’ 바뀌었다
R&D 법인 분리 등 ‘가성비’ 키워 철수 매각 수순

 

한국GM은 지난해 말 창원공장의 비정규직 근로자 약 560여 명을 해고하고도 판매 부진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생산라인을 2교대에서 1교대 근무로 전환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수용한 노조도 창원 부품물류센터와 제주 부품사업소 폐쇄에는 즉각 반박성명을 내고 급기야 카젬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한국GM 노조에 따르면 정비 분야 협력업체들은 “지난해 인천물류센터가 폐쇄된 이후 제주지역 부품 공급이 더 늦어져 긴급 택배가 많아졌고, 그마저도 업체가 비용부담을 떠안고 있다”며 “중간 저장 창고마저 없어지면 시일은 더 늦어지고 협력사 부담은 더 커지는데 이를 폐쇄하는 이유는 뭔가”라며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앞서 한국GM은 지난해 인천·세종·창원·제주에서 정비 부품 관련 시설을 유지해오다 지난해 인천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이를 세종 부품물류센터로 통합한 바 있다. 이에 노조는 인천과 같은 일방적 통폐합이 단행되면 노사충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에서는 한국GM이 지난해 말부터 부진한 성적을 핑계로 비정규직 해고, 생산량 조절, 부품창고 축소 등 그간 우려해온 GM의 한국 철수를 위한 수순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진다.

GM 결정, ‘가성비’ 키워 매각 할 것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취재진에게 “한국GM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8000억 원을 지원했지만 당시 타당성 심사에 대한 의문이 크다”며 “지금 GM의 방향은 R&D 법인 분리 후 ‘가성비’를 키워 철수·매각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이어 “메리 베라 GM 최고경영자는 이미 경쟁력 없는 전 세계의 공장 철수를 지시했고, 이는 정리가 끝났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의 8000억 원 투자로 한국GM의 사형 순서만 2번째에서 4번째 정도로 바뀐 셈”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부의 지원금은 한국GM이 국내에서 좋은 차를 생산하고 점유율을 올리라는 의미였으나, 미국에서 생산된 이쿼녹스, 임팔라, 카마로 등에 이어 지난해부터 콜로라도, 트래버스까지  OEM 수입차량을 가져오는 것은 한국GM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후 차기 정권으로 교체되면 철수 가능성도 자연스레 높아진다고 내다봤다.

R&D 거점 ‘핑계’ 호주 철수 판박이

GM 본사가 호주 내수시장에서 아예 브랜드 자체를 철수시킬 것으로 보인다. GM은 최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90여년을 이어온 홀덴(Holden)자동차를 은퇴시킨다고 밝혔다. 

GM은 2017년 호주공장을 폐쇄하고 이듬해인 2018년 호주에 대규모 R&D 투자를 약속했다. 그에 앞서 호주 정부가 2012년 10년간 10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를 지원키로 했다가 2억7000만 달러(약 3300억 원) 지원 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GM은 약속 5년만인 2017년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공장 폐쇄 후 GM은 호주 여론을 의식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차종들에 대해 호주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면서, 2018년 8월 1억2000만 달러(약 1460억 원)를 투자해 호주를 연구개발(R&D) 거점으로 설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채 2년이 되기도 전에 GM은 전격 호주를 철수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호주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한국GM의 현재 상황과 흡사해 보였다”며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수입차종을 늘리며 수입차협회에 가입하는가 하면 국내 공장 폐쇄와 비정규직 해고 및 생산규모 축소 등을 단행했기에 GM의 한국 철수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GM은 2018년 2월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이후 같은해 12월 한국을 R&D 거점으로 두고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시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한국에서 개발한 차량을 한국에서 생산하면 생산법인에도 플러스 요인이 있다”며 GM이 주장한 R&D 활성화를 위한 법인 분리에 찬성한 바 있다. 

한국GM ‘트레일블레이저’ 가격 경쟁력 낮아

이후 한국GM이 국내에서 개발해 수년 만에 신차로 내놓은 소형SUV ‘트레일블레이저’에 대한 가격 책정도 문제로 떠오른다. 지난 1월 트레일블레이저 출시를 앞두고 GM 본사에서는 차량의 성능과 사양을 생각해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한국GM이 한국시장을 염두에 둔 합리적인 가격대를 요구해 1995만~2620만 원의 금액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다만 현대나 기아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의 차량들에 비해 한국GM의 차량들은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견해에 비춰볼 때, GM이 한국생산을 결단한 만큼 가격 경쟁력을 확실하게 갖췄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GM과 같이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는 국내 생산 소형SUV 신차 XM3의 출시 가격을 1795만~2695만 원으로 결정했고, 동일 차종 가운데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기아차의 셀토스는 1965만~2865만 원, 쌍용차의 티볼리(오토변속기 기준)는 1873만~2583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기본 사양 기준으로 한국GM 트레일블레이저의 진입장벽이 가장 높다. 

김 교수는 “가성비 높은 경쟁 모델이 많은데 완성도 낮은 신차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소비자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국내 생산이라는 강점을 가진 트레일블레이저의 높은 가격은 한국GM의 제 발 밟기”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GM은 현재 트레일블레이저의 초기 반응은 아주 좋다며, 오는 2023년경부터 신차가 투입되고 2교대 전환이 이뤄지면 이 때 상황을 봐서 도급직 등의 재고용에 대한 부분을 한국GM에서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미뤄진 2019임단협 교섭에 대해서 회사는 항상 대화 창구를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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