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만 30년, 관용은 없다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에서 이현동 후보자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3번째 국세청장인 이현동 청장이 지난 10월 21일자로 취임 50일을 맞이했다. 국세청 45년 역사에 19번째 국세청장이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이 청장의 취임은 단순한 의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부 재벌기업들의 비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알려지고 있고 그 중심에서 국세청이 발 빠른 조사를 벌이고 있다. 완벽한 세무조사를 통해 신뢰 형성에도 앞장서는 움직임이다.

같은 달 19일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재력가들의 세금 업무를 자문해주는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대표들을 불러 대기업과 대주주들이 성실하게 세금을 낼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문제가 되는 업체는 엄중처벌 할 뜻도 함께 전했다. 이는 MB의 사정정국 정책과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청장은 1년 만에 배출된 내부승진 국세청장이다. 때문에 그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일부 재벌그룹들의 비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국세청 직원들의 움직임도 바쁘다. 기업비리가 알려지면 국세청 직원들은 현장에 나가 문제의 서류를 찾는 등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과거 명성을 찾았다는 평가도 주를 잇는다.

국세청장이 내부 승진 인사였기에 가능하다는 평도 있다. 누구보다 세법에 밝다보니 한 발 빠른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 이 청장은 세법만 30년 넘게 공부한 세무 통이다.

이 청장의 취임 후 첫 공식행보도 세법과 관련된 일이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회계, 법무법인 대표들을 불러 간담회를 개최했다.

국세청장이 대기업과 대주주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회계·법무법인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청장은 이 자리에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 대주주와 그 가족들의 해외 재산은닉과 역외탈세 연루 가능성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그는 회계·법무법인들이 세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거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문구해석으로 탈세나 조세회피 행위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다며 엄격한 윤리기준에 따라 공익적 차원에서 판단해 달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탈세나 조세회피를 기업 가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지만 국내 일부 대기업의 이사회나 최고경영자는 세무위험의 통제문제에 관심이 없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 청장의 이 같은 발언은 국세청이 일부 대주주들의 역외탈세 혐의를 포착한 상황에서 나와 더욱 주목받는다. 재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장과 덕장’ 이미지 갖춰

이 청장은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경북고와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그는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국세 조사실무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세정과 세제 등 국세업무 전반에 정통한 세무공무원으로 성장했다.

구미세무서장, 국세심판원(현 조세심판원) 근무를 거쳐 서울국세청 조사 2국2과장, 조사1과장, 국세청 법무과장, 대구국세청 조사 1국장, 중부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서울국세청 조사 3국장, 청와대 파견,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국세청 법무심사국의 핵심부서인 법규과를 창설하고 2007년부터 개설된 ‘국세법령정보시스템’ 설치를 주도하는 등 조직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서울국세청 조사 3국장으로 근무하던 2008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과 함께 인수위에 파견,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 그리기 작업에 참여해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국세청 핵심요직인 조사국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지내면서 사상 초유의 국세청장 장기 공석사태에서 국세청 수뇌부로서 조직안정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 청장은 국세청 내부에서도 꼼꼼하고 치밀한 업무추진력과 늘 새로운 제도를 구상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아이디어맨’이다. 자신과 함께 일했던 부하직원들을 잊지 않고 챙기는 ‘맏형’이미지도 갖고 있다.

누군가 만날 때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유머’ 한 두 가지를 준비하는 센스로 지장과 덕장의 이미지를 골고루 갖췄다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내부 승진 통해 직원들 사기 높여

이에 백용호 전 국세청장 당시 국세청 차장으로서 각종 개혁과제를 효과적으로 추진했고, 조직의 안정을 바탕으로 개혁과제가 일관되게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국세청장에 준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다.

국세청 직원들이 새 희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청장의 경우 30여 년간 국세행정 일을 하면서 승진한 내부 인사이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경찰처럼 후배가 청장에 오르면 선배들은 용퇴하는 관행이 있어 어느덧 이 청장이 최고참 선배가 됐다.

따라서 이 청장은 2만여 국세공무원들의 사명감과 자부심 그리고 상호 신뢰를 한 데 모아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선진 일류 국세행정’을 조기에 정착시키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한다.

지난 8월 30일 열린 취임식에서도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전문가로 인정받아 제2의 인생도 설계할 수 있는 공직은 국세공무원 밖에 없다”며 “우리가 명예롭게 공직을 마친 후에는 전문가로서 국세동우회라는 동문사회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으므로 국세청에 근무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내부 인사 발탁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높였다.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

또한 일자리 창출 및 성실 중소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예하는 등 친서민정책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국세청은 정부의 친서민정책을 세정면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선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소통채널을 확대하고 납세자 보호기능을 강화해 나가는 한편 현재 시행되고 있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조기에 정착시키고,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ICL) 업무를 차질 없이 준비해 나가며 기존 세정지원 장치들이 실질적으로 작동돼 실효성 있는 생활공감 세정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총소득 1천700만 원 미만자를 대상으로 하는 근로장려세제가 최저생계비의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 “지난 6월22일 기획재정부에 관련법령의 개정을 건의했다”고 소개했다.

때문에 이 청장이 이끄는 국세청호(號)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의 한 인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받는 국세청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기도 한다.

이 청장은 부인 신관옥 여사와의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이현동 국세청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무관용의 원칙론’

지난 8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이현동 국세청장은 취임 초부터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끄는 행보를 보였다.

이 청장은 이날 취임사를 마친 뒤, 자신의 임기동안 꼭 지켜나가겠다는 ‘무관용의 원칙’을 제시했다. 무관용 원칙은 사소한 위법행위도 죄질이 나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사법 원칙이다.

이 청장은 “명절 같은 때 (자신에게) 지역 특산물 등 선물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운을 뗀 뒤, “앞으로는 선물을 보내오면 성의는 받고 물건은 감찰담당관실로 보낼까 한다”며 “대신에 책 한권을 선물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시중 베스트셀러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직접 읽어 본 책 중에서 국세청의 발전을 위해서 제가 꼭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라며, “밑줄도 쳐있고, 여러분의 손때가 묻은 정성이 담긴 책이라면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느 책에서 본 일화도 소개했다.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벽돌공 3명에게 행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각자의 대답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한 벽돌공은 인상을 찌푸리며 ‘벽돌을 쌓고 있다’고 퉁명스럽게 말했고, 다른 벽돌공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한 명의 벽돌공은 활짝 웃는 얼굴로 ‘나는 지금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직원들에게 “지금 쌓는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서 후손들이 두고두고 기릴 아름다운 성당이 되듯이 여러분이 쏟는 작은 땀과 정성이 일 잘하는 국세청을 만들고 국세행정의 미래를 위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범>

[글·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사진·맹철영 기자] photo@dailypot.co.kr


이현동 국세청장 약력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경북고, 영남대 행정학과(성대 경영대학원) 졸업

경력사항
▲행시 24회
▲구미세무서장
▲국세심판원
▲서울청 조사2국2과장
▲서울청 조사2국1과장
▲국세청 법무과장
▲대구청 조사1국장
▲중부청 납세자보호담당관
▲서울청 조사3국장
▲청와대(파견)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국세청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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