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금지 안착” VS “권위 추락 부작용 속출”

서울에서 처음으로 친환경무상급식을 시행한 성북구 숭인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지난 10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배식을 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이 일대 변혁의 시대를 맞이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체벌금지 방침에 따라 서울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체벌이 전면 금지됐고, 교사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학교장의 권한도 대폭 축소됐다. 갑작스러운 서울시교육청의 이 같은 방침에 교육계는 들썩이고 있다. 체벌금지의 당위성은 공감하면서도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높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진보성향의 곽 교육감의 교육혁신을 따라가 봤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진보성향을 보이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교육감 취임 이후 친환경무상급식 등 개혁성향 정책을 추진하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학생 체벌금지와 학교장 권한 축소 정책이 대표적이다.

곽 교육감의 이 같은 정책으로 인해 교육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를 맞은 상황. 일단 지난 1일부터 서울 시내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체벌이 전면 금지되자 교육계는 ‘패닉’ 상태다.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달 31일자로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금지 방침에 따라 서울 지역 1300여개 초·중·고교는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했다.

시교육청은 언론에 “거의 모든 학교들이 체벌금지 규정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며 “일부 안 된 학교들은 학교운영위원회 소집 등 날짜 때문에 그런 것이다. 대세는 체벌금지”라고 설명했다.

각 학교들은 다음달 5일까지 개정안을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며, 비슷한 시기에 시교육청은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하달할 예정이다.

규칙 개정 후에 교사가 체벌을 가하게 되는 경우 경중에 따라 징계가 내려진다. 경미한 사안일 경우 학교장의 권한으로 주의나 경고 수준에 그치지만 경우에 따라 교육청이 나서 조사한 뒤 처벌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개정안을 받을 때 운영계획서도 함께 받아 아이디어가 좋은 학교에는 전문 상담사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300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10억 원 수준의 예산을 배정했으며 좋은 아이디어의 경우 다른 학교에도 알리게 된다.


갑작스런 체벌 금지에 ‘역효과’ 우려도

교육계에서는 체벌이 최근 사회적인 문제가 돼왔던 만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은 실정이다. 이에 대한 시교육청과 교육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시교육청은 체벌을 대체할 수 있는 성찰교실, 학부모 소환 면담, 봉사활동 대체 프로그램, 생활평점제 등을 시행하는 한편 상황별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일선학교에 전파해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악습을 없애야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고 이후의 대체방안을 준비한다는 것은 학교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상당수의 학교가 체벌 금지에 대한 대안 마련이 미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찰교실을 위한 공간 확보가 여의치 않고 교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할 학생 수가 적지 않아 생활지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교사들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교권이 추락한 지금의 교실에서 학생들을 통제,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장 체벌 금지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밝힌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 교육청의 체벌금지 발표 이후 학생생활지도 방법에 부작용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58.5%가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각이나 의도적인 수업불참, 수업 방해는 비교적 애교적인 수준의 ‘반항’이라는 게 한국교총의 설명이다.


곽노현 “체벌금지 생각보다 잘 안착”

교육계에서 체벌 금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곽 교육감은 체벌금지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나섰다.

곽 교육감이 체벌 금지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생각보다 잘 안착했다”고 평가한 것.

곽 교육감은 지난 2일 직원 월례회의에서 “서울 지역 학교에서 체벌 전면 금지가 예상보다 잘 안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체벌금지를 빌미로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속출해서도 안 되지만 교사들도 불평만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며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취지에 맞는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체벌은 그동안 한국에서 하나의 문화였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뀌긴 힘들다”며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이제 시대정신”이라고 못박았다.

곽 교육감은 또 우리나라 교육계에 ‘경쟁 완화’와 ‘기다림’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핀란드에서는 어느 한 사람도 ‘경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놀랐다”며 “우리는 입만 열면 경쟁, 경쟁하는데 그것이 참교육을 위한 것인지는 되돌아봐야 한다. 스웨덴은 시장주의적 요소가 있었지만 그런 경쟁도 아이들에 대한 추동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른바 '엄친아'로 대표되는 비교나 경쟁은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지금부터 경쟁을 대폭 완화하지 않으면 창의교육이나 인성교육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학교장 권한 대폭 축소

곽 교육감이 체벌금지 정책에 이어 지난 2일 발표한 학교장 권한 축소 방침 또한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는 곽 교육감의 방침과 달리 학교장 권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곽 교육감이 반기를 들며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일 발표한 ‘2011년 3월 1일자 초등학교 교사 전보 계획’에 따르면 전보유예, 전입 요청, 초빙교사의 총 인원 수를 교사 정원의 30% 이내로 제한을 뒀다. 학교장이 교사를 다른 학교에서 초빙해 오는 경우와 전보될 교사를 붙잡아 두는 경우를 합쳐 정원의 30% 이내에서만 권한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발표된 학교장 인사권 강화 방안에 비해 불과 1년 만에 권한을 대폭 축소시킨 것이다. 지난해 초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었던 이주호 장관은 “교장에게 권한을 많이 부여해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시교육청은 공정택 전 교육감 시절인 2009년 10월 전보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개선안 내용은 정원의 20%를 초빙교사로 채울 수 있고 전입 요청, 전보유예 권한을 각각 전보 대상자의 30%로 정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조치로 각 초등학교 교장은 전에 비해 교사 2명 정도에 대한 초빙·전보유예 권한을 뺏긴 셈이 된다. 이에 학교장들은 “점진적으로 인사권을 줄여 나가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와 동조? 또 다른 논란 예고

곽 교육감의 학교장 권한 축소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가 요구하는 단협 사항 중 하나라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전교조와 손을 잡고 학교장 권한을 축소한다는 인상으로 비춰질 수 있어 보수층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초빙교사제, 전보유예 등을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폐지가 어려울 경우에는 일단 정원의 20%로 단계적으로 축소하라는 것이 전교조의 요구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초등교사 전보 계획에 학교장이 인사를 하기 전 학교별 ‘교원인사자문위’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교사들로 구성된 교원인사자문위는 2008년 전교조와 교육청 간의 단협안에 포함됐던 내용이지만 2009년 단협이 해지되면서 강제성이 없어졌다. 이를 서울시교육청이 부활시킨 것이다. 곽 교육감의 이 같은 파격정책을 두고 교육계에서는 당분간 파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정책을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일선 교사들의 경우 체벌 금지 정책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지만 학교장 권한 축소 방침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의 진보 정책이 앞으로 얼마나 실효성을 보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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