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이처럼 신돈의 하수인은 이제현과 최영을 배후로 지목하여 자백하라고 윽박질렀지만 이존오는 끝까지 거부했다. 이존오의 국문을 지켜보고 있는 이색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이색은 이춘부와 김란을 설득했다.

“고려는 태조 이래 간관을 죽인 일이 없습니다. 나아가 하찮은 유학자의 말이 대인(신돈)에게 무슨 큰 흠이 되겠습니까?”

“으음, 알겠소.”

이춘부와 김란은 이존오의 배후를 밝히는 것을 포기하고 매질을 중단시켰다. 마침내 이존오는 이색의 옹호로 극형을 면하고 고창감무로 좌천되었고, 정추도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은둔 시절에 이존오가 쓴 시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구름(신돈)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虛浪, 허무맹랑한 거짓말)하다.  
중천(中天, 높은 권세)에 떠 있어 임의로 다니면서      
구태여 광명한 날 빛(공민왕)을 따라가며 덥나니.

이후 이존오는 공주 석탄에서 우국의 한을 품은 채 ‘신돈이 망해야 내가 죽는다!’고 외치며 울분 속에 지내다가 5년 후 31세에 화병으로 요절한다.

신돈, 이제현을 비방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다

한편, 이제현은 최영과 동병상련(同病相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처지였다.

신돈의 정치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최영이 실각하자 그 여파는 바로 이제현에게까지 미쳤다. 한 때 온건 개혁세력의 영수로 고려 말의 정치개혁을 주도했던 이제현도 그 존엄한 명성이 폄훼당하는 실의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신돈은 이제현이 자신을 경원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민왕에게 이제현을 비방하여 공민왕의 신임을 잃게 했다.

“익재는 비록 정계를 은퇴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배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문생(門生)이니 좌주(座主)니 동년(同年)을 칭하고 도당을 만들기에 급급합니다.”

더 나아가 신돈은 조정에서 이제현의 세력들을 약화시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정치술수를 부렸다.

“익재와 그 문하의 문생들이 나라의 도둑이 되었습니다. 익재는 유약하여 강직함이 적고, 당을 이루어 서로 의를 두터이 하면서 정에 따르는 유생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신돈은 이제현이 연로한 탓으로 직접 탄압을 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제현은 간신히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또한 신돈은 이제현의 문도(門徒)들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과거시험 자체를 폐지해 버렸는데, 이 때문에 제사를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축문 한 장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처럼 신돈은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하여 이제현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세 사람이 똑같이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믿게 된다는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 라는 고사처럼, 신돈의 계속된 비난은 공민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제현은 공민왕의 신임을 서서히 잃게 되었다.

한편, 신돈의 천거로 재상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 임군보(任君輔)는 최영·이구수 등이 쫓겨나는 것을 반대하고 이존오·정추를 구호하는데 앞장섰다.

임군보는 공민왕에게 친정(親政)을 간하였다.

“신돈은 본디 천승(賤僧)이옵니다. 아무리 나라에 인재가 부족하다고 한들 미천한 중에게 정사를 돌보게 하여 천하에 웃음을 사시옵니까?”

공민왕은 임군보의 간언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임군보는 신돈의 미움을 받아 여흥으로 유배되고 만다.

요승 신돈의 거듭되는 참소에다 성격파탄의 정신분열증까지 겹친 공민왕은 재신들이 즐비한 편전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세신대족(世臣大族)은 친당(親黨)이 뿌리처럼 이어져 있어서 서로의 허물을 가려준다. 초야의 신진들은 감정을 감추고 행동을 꾸며 명망을 탐하다가 귀해지면 집안이 한미(寒微)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는 세신대족과 혼인해 처음의 뜻을 다 버린다. 유생들은 유약하여 강직하지 못하고, 또 문생(門生)이니 좌주(座主)니 동년(同年)이니 하며 당을 만들어 사정(私情)에 따른다.”

이제현은 공민왕이 신돈에 의해 세뇌되어 자신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좌주, 문생, 동년을 칭하면서 당을 만드는 유생’이란 다름 아니라 자신이 중심이 되는 성리학자들을 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현은 깊은 회한에 잠겼다. 신돈이 몰고 온 정국의 불안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때가 묻고 있음을 탄식하고, 공민왕에게 이렇게 하소연해보고 싶었다.

정계를 은퇴한 임금의 장인을 아직도 못 믿고 있느냐……  

이 힘없는 늙은이가 사직을 어지럽힐 자로 보이더냐……

80평생 노심초사 다져온 충절의 일생이 요승의 말 한마디에 의해 폄훼될 수 있는가. 정치생명을 걸었던 혈맹이자 15년을 함께 무수한 난관을 헤쳐온 군신지간의 두터운 인연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도 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제현은 공민왕의 변심에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애써 ‘자신이 용의주도하지 못했던 점은 자업자득이다’라고 자책했다.

‘지난 15년 세월동안 공민왕에게 역사와 왕도를 강론할 때 군왕의 포용력과 민심을 수렴하는 자세에 대해 좀 더 세세하게 깨우쳐 주었던들…….’

이제현은 일개 까까머리 요승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고 있고, 즉위 초의 적극적인 개혁정치를 펼치던 공민왕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그리고 공민왕의 폐정을 바로잡지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원망이 극에 달하면 천재지변이 온다 했던가. 뭔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이 조정은 물론이요 도성 주변에 흉흉하게 떠돌았다. 밤마다 혜성이 나타나고, 전라도 지방에는 메뚜기 떼들이 구름처럼 날아와서 추수기에 접어든 나락을 망쳐버렸다는 소문이 도성 안에 자자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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