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우한 폐렴 창궐로 인하여 여명(黎明)이 보이지 않는 동토(凍土)의 땅이 되어버렸다. 특히 죄 없는 대구는 불안과 공포의 그늘이 가득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며 책임을 국민 탓으로 돌렸고,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인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여당 대변인은 “대구·경북 봉쇄” 발언으로 TK 민심에 염장을 질렀다.

그동안 정부는 발원지인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인 여행객의 한국 입국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중화주의 패권의식에서 나온 적반하장(賊反荷杖)뿐이다.

중국 지방정부들은 한국 교민들의 거주지를 봉쇄했고 격리 조치했다. 왕이 중국 외교장관은 “불필요한 국가 간 이동을 줄이는 것이 감염 확산 차단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한국인 격리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전염병 예방”이라며 한국을 협박하고 있다.

3년 전 ‘사드 보복’이 있은 때도 그랬다. 중국 정부는 보복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롯데가 중국에서 쫓겨나듯 철수했지만 유감 표명 한 마디 없었다. 이번에 우한 폐렴 창궐 이후 한국인이 중국에서 격리되고 물리적 위협까지 당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한·중 5000년 역사는 중국의 300여 회의 침범으로 얼룩져 있다. 지난 역사를 반추해 보면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은 우한 폐렴 초기에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경제를 핑계대고 있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 시진핑의 방한(訪韓)을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금 대한민국이 당하는 수모는 당리당략을 위해 ‘국민 안전’이 뒷전으로 밀린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월 26일부터 “감염병 관리의 핵심은 해외 유입 환자 차단”이라 주장하며 무려 7차례나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촉구했다. 대한감염학회는 지난 2월 2일 “입국자 제한 지역을 중국 후베이성 이외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같은 전문가들의 경고를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외면했다. 나아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매달려 ‘위기경보 격상’ 요구도 일축했다. 대신 중국 시진핑에게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했다.

그 결과 “무책임한 낙관론이 사태를 더 키웠다”는 뉴욕 타임즈의 기사처럼 대한민국은 세계 80개국이 넘는 나라로부터 입국 금지를 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문 정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비롯해서 이번 우한 폐렴처럼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사안에 대해 사과하는 법이 없다. 문 대통령은 5년 전 메르스(MERS) 사태 당시 “정부 무능이 낳은 참사”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지금은 메르스 때보다 상황이 훨씬 더 위중하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진시명월한시관(秦時明月漢時關)/ 만리장정인미환(萬里長征人未還)/ 단사용성비장재(但使龍城飛將在)/ 불교호마도음산(不敎胡馬渡陰山). 진나라 때나 한나라 때나 같은 옥문관인데/ 만 리 먼 길 원정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네 /적지 용성으로 쳐들어가 용맹을 날린 이광(李廣)같은 장군만 있다면/ 오랑캐 말들이 음산을 넘어오게 두지는 않으련만.

당나라의 왕창령(王昌齢)이 쓴 ‘변경의 요새를 나가며(出塞출새)’다. 왕창령은 전쟁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간 참상을 고발하기 위하여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5천년 역사를 면면이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국난을 당했을 때 관군은 도망쳤지만 의병이 떨쳐 일어나 나라를 지켰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무기력했지만 의사·간호사들의 헌신이 있어 한 가닥 희망을 걸 수 있다.

시름에 잠긴 대구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는 ‘의병(醫兵)’들이 속속 쇄도하고 있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확진자 진료를 위해 전국에서 파견된 의료진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총 200여명을 넘고 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이나 불구덩이로 뛰어든 소방관과 다를 바 없는 살신성인의 자세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진들은 공동체의 영웅이다.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굴러간다. 이들의 과로 탈진이 없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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