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금쯤 후회막심일 것이다. 처음에 결심한 대로 고향이 있는 밀양·의령·함안·창녕 지역구를 고집했어야 했는데 하고. 당대표를 지낸 입장에서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당을 배려한다고 양산을에 공천을 신청하는 순간 홍 전 대표는 궁지에 몰렸다. 아마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거듭된 요청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양산을 정도면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던 것 같다. 

홍 전 대표는 ‘험지도 아닌 험지’였던 양산을에 공천 신청을 하고도 공천 배제를 당하면서 고향 지역구로 돌아가기도 힘든 처지에 몰렸다. 다시 고향 지역구로 돌아가기에는 명분이 없다. 한국 정치가 아무리 막장을 달려도 이 정도면 본인 말대로 “정치 은퇴”가 답이다. 한때 동료였던 김형오 공관위원장이나 황교안 대표를 원망하기에는 본인의 무능이 너무 두드러져 보인다. 고향에 가봐야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게 뭐꼬?”하는 소리나 듣지 않겠나 싶다.

그에 비해 똑같이 험지 차출을 거부했다고 공천 배제를 당한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입장이 다르다. 김 지사도 당의 요구 초기에 다른 지역을 거론하긴 했지만 결국 고향이 있는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에 공천을 신청했고, 탈락했다. 김 전 지사는 탈락한 결과가 나오자마자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지사에게는 명분이 있다. 김 전 지사 입장에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았고, 경남 선거로 승리고 이끌어 당에 기여하겠다’는 사람을 당이 내몬 것이다.

오제세 의원은 보수적 성향의 충북에서 4선을 한 중진 의원이지만 경선대상자 명단에도 못 오르는 수모를 당했다. 정권 핵심인사의 측근이 오 의원 지역구인 청주 서원에 공천을 신청하면서 오 의원 공천 배제설이 나돌더니 결국 설이 사실이 되었다. 

오 의원 입장에서는 단수 공천은 어려워도 경선 정도는 붙일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재심까지 기각당한 오 의원 주변에서는 무소속 출마설을 넘어 야당인 미래통합당행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임재훈 의원은 바른미래당에서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손학규 전 대표의 측근으로 바른미래당 사무총장을 지낸 임 의원이 주군을 버리고 미래통합당행을 택한 이유는 공천 때문이었다. 임 의원은 애초에 안양 동안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5선을 한 곳이다. 일찌감치 더불어민주당의 신진인 이재정 의원과 심 원내대표의 양자대결 구도가 굳어졌다. 임 의원 입장에서는 바늘 들어갈 구멍도 없으니 활로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래통합당 행을 선택했고 지역구까지 옆으로 옮겨 안양 동안갑으로 공천을 신청했는데, 공천에서 배제됐다. 역시 옆 지역구인 안양 만안구에서 공천을 신청했던 임호영 변호사가 공천됐다. 오랫동안 민주당 당직자 생활을 한 임 의원 입장에서는 신의를 저버리면서 실리를 추구했는데 결과는 안양천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임 의원이 미래통합당 행을 택했을 때 “동안갑 공천을 내락 받은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지만 결과는 차가운 정치현실만 확인하는 꼴이 되었다.

선거 때마다 이런 식의 공천 희비극이 벌어지는 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의 본질상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유권자인 시민의 의견과 너무 괴리되어 있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마음에 안 들면 투표에서 안 찍어주면 된다.

공천은 정당의 일이다. 정당이 할 일은 공천에서부터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당내 민주주의가 일천한 우리 정당 문화에서 공천 과정에 민주적 절차라는 게 얼마나 관철될지도 의문이다. 유권자는 표로 심판하면 된다. 심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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