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올 여름 바캉스도 언제 나처럼 박도희(가명)가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는 말이야, 서해의 숨겨진 비밀 해수욕장을 내가 소개할 테니 모두 기대하라고...”

박도희는 남자 같은 걸걸한 목소리로 그녀들의 호기심을 잔뜩 부추겼다.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할 뿐 아니라 성격도 남자 같은 그녀는 언제나 그녀들의 리더 격이었다.

그녀들이란 ‘주식회사 삼삼’에 근무하는 영업 분야 각과에서 모여든 동갑내기 여사원 네 명의 멤버를 말한다. 개발과의 박도희를 비롯해 총무과의 임영자, 비서실의 고민화, 경리과의 맹순미 등이다.

그녀들은 툭하면 한데 어울려 무슨 일을 꾸미거나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다.
올해의 여름 바캉스는 그녀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총무과의 임영자가 올가을에 영업 1부 멋쟁이 총각인 정지훈과 결혼을 하게 되어 사실은 마지막 바캉스가 되기 때문이다.

정지훈을 두고 이들 네 여자가 모두 일생의 반려자로 만들기 위해 대시를 했으나, 결국 임영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 셈이다. 특히 박도희는 끝까지 겨루던 마지막 라이벌이었다.

그들이 휴가 날짜를 맞추어 3박 4일을 즐기기 위해 도착한 곳은 당진군의 북쪽 끝 바다에 있는 작은 무인도였다. 알려지지 않은 해수욕장이라서 그런지 한적하기 이를 데 없고 서해안치고는 모래나 물이 깨끗했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 넘실거리는 파도와 함께 꿈같은 휴가 첫날을 보냈다. 그러나 이튿날 뜻하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그녀가 죽은 것은 박도희에게 큰 책임이 있었다.

무인도에는 북쪽 해안에 5백여 미터 되는 조그만 모래사장이 있고, 오른쪽 사장 끝의 숲이 우거진 언덕을 돌아서면 앞에 또 다른 무인도 하나가 보였다. 그 무인도는 눈앞에 있기 때문에 썰물 때면 바지를 걷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바캉스 두 번째 날 박도희는 임영자와 함께 썰물 때를 타서 그 무인도로 갔었다.
“여긴 우리 둘뿐이잖아. 와, 정말 좋다.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임영자는 겨우 부끄러운 곳만 가린 비키니를 해수욕장에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해방감을 느끼며 두 팔을 벌리고 즐거워했다.

“우리, 여기서 모래 찜질할까?”
박도희의 제안으로 그들은 모래찜질을 시작했다. 먼저 바닷물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서 임영자를 눕게 하고 모래로 묻었다. 얼굴만 내놓고 전신을 모래에 묻었다.

“얘, 이러면 얼굴이 너무 타는 것 아냐?”
겨울 얼굴만 내민 임영자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입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박도희가 갑자기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임영자! 너는 나를 짓밟았어, 정지훈과 결혼을 한다고? 흥! 정지훈은 너보다 사실은 나를 더 사랑했단 말이야.”

“도희야, 너 왜 이래?”
놀란 임영자가 몸부림을 쳤으나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임영자는 얼굴이 하얗게 공포로 질렸다.

“오늘 종일 여기 누워서 반성 좀 해봐. 너는 고통을 당해봐야 해!”
박도희는 그를 버려둔 채 동료들이 있는 무인도로 건너와 버렸다. 세 사람은 깜둥이가 되었을 임영자를 생각하며 깔깔거리고 재미있게 놀았다.
마음속으로 모두 통쾌한 복수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저녁 무렵 다시 썰물이 되었을 때 박도희가 임영자를 데리러 갔다. 임영자는 모래에 묻힌 채 잠든 듯 누워 있었다.
“야! 종일 반성 좀 했니?”

박도희가 그녀 곁에 다가갔다. 그러나 임영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영자야! 영자야....”

다가가서 그녀를 흔들었다. 눈을 감은 채 뜨지 않았다. 그녀는 죽어 있었다.
“내가 잘못했어. 영자야, 제발 살다나다오.”

박도희가 그녀를 젖은 모래 속에서 파내며 울부짖었다.
그녀의 사인은 뜻밖에도 익사(溺死)였다. 박도희와 두 친구들은 후회의 몸부림을 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퀴즈. 임영자의 사인이 왜 익사였을까요?

 

 

[답변-초단] 바닷물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임영자를 묻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에서 밀물이 들었을 때 그녀는 꼼짝하지 못하고 물에 잠겼을 것이다. 다시 썰물이 되자 원래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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