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만 있고 책임자는 없었다”…2000억 규모 분식회계 재점화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2013년 당시 2000억 원대 투자자 피해를 줘 투자금 손실을 불렀던 ‘중국 고섬사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7일 나왔다. 대법원은 상장 주관사였던 한화투자증권에 부과된 20억 과징금이 적법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결정이 나오면서 당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향후 한화투자증권의 대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투자자들은 인수인 평판 신뢰…원심 판단 잘못돼”

판결, 미래에셋대우 소송에도 영향 미칠지 주목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3년 12월 소송이 제기된 후 6년이 지나서야 내놓은 결론이다. 특히 증권신고서의 거짓 내용에 대해 주관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첫 판단이 됐다. 대법원은 “주관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증권신고서 등의 중요사항을 거짓으로 기재한 것 등을 방지하지 못한 때에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과징금 20억 결정에 불복… 소송 이어나가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금융당국은 상장 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와 한화투자증권에 대해 ‘부실실사’ 책임을 물어 역대 최대 과징금인 20억 원씩 각각 부과하며 제재를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한화투자증권은 “회계법인의 감사 의견을 따랐을 뿐”이라며 이 같은 결정에 불복하면서 소송을 이어 나갔다.

앞서 ‘중국 고섬사태’는 싱가포르에 본점을 둔 중국 섬유업체인 ‘고섬’이 2010년 12월 국내 주식시장 상장을 위해 현금이 부족했던 상황을 속이고 1000억 원 이상 현금과 자산을 가진 것처럼 허위 기재 후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2011년 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던 고섬은 결국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면서 2개월 만에 거래가 정지됐다. 금융당국은 고섬이 기업공개(IPO)로 공모자금을 부당히 챙겼다고 판단했고, 2013년 10월 최종적으로 상장폐지를 내렸다. 고산이 부당 취득한 공모자금은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갔다.

한화투자증권이 금융당국의 결정에 불복하면서 소송을 이어나간 가운데 1심과 2심은 모두 한화투자증권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화투자증권을 과징금 부과처분 대상자인 ‘증권의 인수를 의뢰받아 인수조건 등을 정하는 인수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증권 상장을 위한 인수가격 결정 등은 대표주관회사인 미래에셋대우가 수행했고 한화투자증권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고 증권을 배정받은 인수인에만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기업이 작정하고 중요사항을 거짓으로 쓰는 등 속이는 행위를 주관사가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는 과징금을 부과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장 주관사의 책임과 의무를 보다 엄격하게 규정했다. 대법원은 “증권 발행사는 직접 공모보다는 인수인을 통해 간접공모를 하는 게 통상”이라며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들은 시장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을 하는 인수인의 평판을 신뢰하고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제공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은 인수인이 증권신고서의 직접 작성 주체는 아님에도, 중요사항을 거짓 기재하거나 누락을 방지하는 데 적절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다”며 “원고가 실제로 주관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잘못됐다”라고 결론지었다.

한화투자증권 “법원 판단 존중…일단 지켜볼 것”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법원 판단을 존중하고 중과실 여부 관련해서는 대법원 쪽에서 다시 얘기를 한 것이니 일단 지켜본다”며 “아직 재판과정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같은 소송 중인 미래에셋대우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래에셋대우 역시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 선고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고섬사태 피해자 550명은 미래에셋대우와 한국거래소, 회계법인 EY한영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손배소)을 제기했지만, 미래에셋대우가 2016년 2월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과징금 20억 원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서 이기면서 피해자들의 손배소 항소심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됐다. 당시 손배소 항소심 재판부는 과징금 취소소송 결과를 지켜본다며 재판을 멈췄고, 과징금 취소소송 후 손배소 항소심 재판부는 “대우증권의 중과실 책임은 없다”며 배상액을 1심의 절반 수준으로 깎았다.

이 같은 판결 후 “피해자만 있고 책임자는 없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고섬 사태는 초반 금융당국은 물론 국회의원들까지 관련자에 대해 책임 추궁에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이번에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로 투자자들의 배상에 대해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투자자들의 손해배상소송(손배소)은 사실상 이미 끝난 상황이다. 법원은 상장 전 공모 때 투자한 사람들만 투자금의 4분의 1을 배상받았고, 상장 이후 투자한 경우 아예 배상을 받지 못했다. 특히 이번 한화투자증권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과징금에 대한 것만 따졌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돈은 없다.

현재까지 고섬사태 피해자 모임 카페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피해자들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대법원이 증권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기 때문에 향후 투자자들이 다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대법원 판결까지 이미 오랜 기간이 지났고 포기한 투자자들도 많아 실제 소송에 나서는 투자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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