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IMF·신종 플루에도 선거는 치렀는데…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중국 발(發) ‘우한 폐렴’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감염증으로 국내 확진 환자가 연일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15년 발생한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사태로 인한 확진·사망자 수 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돼 충격을 주고 있다. ‘코로나19’의 경우 다수가 밀집된 공간에 접근할 경우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오는 4.15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이른바 ‘총선 연기론’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헌정사상 유례없던 ‘총선 연기’에 대해 알아봤다.
 

선거 도장. [뉴시스]
선거 도장. [뉴시스]

 

-‘입법부 공백’에 따른 ‘대통령 전횡’ 우려…결국 中 시진핑 방한?

‘총선 연기론’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과 민생당 측에서 먼저 언급됐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달 2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중국인 입국을 전면 제한해야 하고 총선 연기도 검토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설훈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24일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총선 연기는)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해방 이후 한 번도 없었다”며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더 악화하면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그때는 또다시 생각해야 될 문제”라고 발언했다. 유성엽 당시 대안신당 통합추진위원장 또한 이날 국회에서 “이번 주 상황을 지켜보며 총선 연기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총선 연기론’이 등장한 것이다.

다만,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6·25 전쟁 당시 부산에서 대선을 치렀다”며 “국민적 합의가 없는데 정치권이 먼저 총선 연기를 말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4일 ‘쿠키뉴스’가 조원씨앤아이(C&I)에 의뢰해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일까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8.3%가 ‘총선 연기 불가’ 입장을 나타냈다. ‘총선 연기’ 입장의 응답자는 31.5%에 달했다(표본수는 1002명으로 총 접촉 성공은 2만5566명이며 응답률 3.9%,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결과는 조원씨앤아이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편 공직선거법 제196조 등에 따르면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 대통령이 선거를 연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선거를 연기하는 경우 대통령은 연기 사유 등을 공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연기 사유로 둘 경우 대통령이 선거를 연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직접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4월15일 실시하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5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시 선거관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모의개표 시연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수작업을 통한 모의개표를 하고 있다. 2020.02.05. [뉴시스]
4월15일 실시하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5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시 선거관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모의개표 시연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수작업을 통한 모의개표를 하고 있다. 2020.02.05. [뉴시스]

 

총선 연기는 입법부 공백…대통령 전횡 견제 불가

‘총선 연기론’에 대해 알아보고자 지난 3일 서울 서초동을 찾았다. 김현(64) 대한변호사협회 전임 회장은 이날 오후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총선을 어떤 사유로 미루게 될 경우, 선례로 남게 되면 차후 어떤 사태가 올 때 계속 미루게 될 수도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전 회장은 “기자도 알다시피 약 70년 전 일어났던 6·25 전쟁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선거를 치렀다. 지난 2009년에는 신종 플루가 유행 했는데, 당시 10·28 재보궐 선거가 연기되지 않고 예정대로 치러졌다”며 “헌정사상 단 한 번도 선거를 연기한 적이 없었고, 섣부르게 연기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특정 정파의 이익에 따라 선례를 남기게 되면 향후에도 계속 법에 따른 연기가 아니라 정파의 이익 등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라며 “중립적인 선거 관리 차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특히 김 전 회장은 총선을 연기하게 될 경우 “입법부의 공백을 막을 방법이 아무것도 없어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남게 되면, 결국 삼권분립의 원리를 해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총선 연기’로 인한 ‘입법부 부재’, 즉 국회 공백 상태가 될 경우에 대해 장영수(60)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3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마치 국회를 해산하거나 국회를 구성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형태가 될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긴급 명령 등을 발동해도 국회가 구성되지 않아 견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 교수는 “6·25전쟁 당시와 지난 1997년 IMF 사태 당시에도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그런데 투표소에 사람 모이는 것 때문에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한다면, 지금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해 마스크를 사고자 국민들이 마스크 보급지정소 앞에 모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초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심각해졌는데, 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다”며 “감염 확산이 심각한 상황인데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보는 것 아니냐”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아울러 장 교수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 방한이 거론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로 ‘총선 전 시진핑 중국 주석 방한론’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2019.12.23.[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2019.12.23.[뉴시스]

 

총선 연기론…결국 ‘中 시진핑’ 방문 때문?

정치권 안팎에서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北 김정은’의 회담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진행돼 그 여파로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두고 장 교수는 기자에게 “만약 현 정부가 이와 비슷한 효과를 기대한다면 총선 연기의 이유가 예상된다”면서 “그럴 경우 정당한 선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아울러 그는 “따라서 ‘총선 연기론’을 띄우는 것 자체가 ‘불손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헌(59) 대한법률구조공단 전임 이사장 또한 지난 4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데, 이를 4월까지 막지 못할 경우 정권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게 될 것이며 만약 선거를 연기할 경우 분노한 민심에 의해 붕괴를 더 빨리 자초하게 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이사장은 이날 기자에게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를 정부가 완전히 놓쳤다”며 “헌법재판소에서 언급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회피 및 유기를 하는 행위와도 연관된다”라고 지적했다. 이 전 이사장은 “헌법 제34조 6항에 따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중국에서 들어온 감염병인 ‘코로나19’의 경우 해당 조항에서 언급된 ‘재해’에 속하기 때문에 정부는 당연히 국민 보호 의무 노력의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대한의사협회가 중국인 입국 금지 등을 문재인 정부에 수 차례 제안하는 등 ‘재해’에 속하는 코로나19를 최초부터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다가 적기를 놓쳐 감염병을 창궐하게 만든 것은 명백히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회피 및 유기를 한 것으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전 사장은 “이런 상황에 선거까지 연기하고 시 주석을 오게 한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내세워 총선에서 이기려고 하는 행위”라며 “만약 정말 그럴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격노하고 있는 국민들이 공직선거법에 따라 총선을 연기하겠다는 정부의 명분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즉, 세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총선 연기는 불가하다’는 결론에 입을 모았다. 현재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선거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계속 총선 연기론이 거론된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6일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코로나 19 환자를 격리병동으로 옮기고 있다. 2020.02.13. [뉴시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6일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코로나 19 환자를 격리병동으로 옮기고 있다. 2020.02.13.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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