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면 어느 정권이나 차기 경쟁이 점화된다. 그리고 만 3∼4년 무렵이면 차기 구도가 대략 윤곽을 드러낸다. 이때부터는 당내 경선도 본격화한다. 문 대통령도 어느덧 3년이 다 돼간다. 임기 만 3년 직전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은 여야 잠룡들이 본선으로 가기 위한 결정적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잘 나가던 민주당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코로나19는 보수통합 직후 밀어닥친 대형 국가재난이다. 통합당은 출범 이후 공천 물갈이 드라이브를 걸면서 상승세를 탔다. 진보매체조차 민주당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놨다. 중국인 입국금지, 문 대통령의 ‘코로나 곧 종식’ 발언, 마스크 혼란이 지속되면서 민주당 위기가 심화되는 듯했다.

이때 이낙연 전 총리가 나섰다. 이 전 총리는 ‘코로나19 재난안전대책위원장’으로 당정청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신천지에서 확진자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본능이 반짝였다. 다들 망설이고 있을 때 이 지사는 재빠르게 신천지에 강제로 진입했다. 신천지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신천지 관계자들을 살인죄로 고발한 것이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김부겸 의원도 코로나19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코로나19 대책을 주도한 이들은 모두 민주당 차기주자들이다. 코로나19 확산에서 비롯된 민주당 위기가 잠룡들의 경쟁의 장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 전 총리는 다수 여론조사에서 안정적인 1위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의 신뢰도 역시 견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황교안 대표와 종로대첩을 치르고 있지만 여유 있게 앞서 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대선후보에 한발 더 다가서는 셈이다.

이 지사는 코로나19 ‘사이다 대응’이 호평을 받으면서 차기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 10%대 초중반을 나타내면서 2위 황 대표에 근접한 3위로 올라섰다. 이 전 총리와 격차도 10%대 전후로 줄었다. 추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변수다. 박 시장과 김 의원도 코로나19 대응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언제든 차기경쟁에 합류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통합당 대선주자들은 시련의 총선을 보내고 있다. 황 대표는 종로에서 이기거나, 지더라도 통합당이 승리하면 범보수 1위를 고수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종로에서 지고, 당도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 범보수 2위권을 유지했던 유승민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한데다 측근들의 생환여부도 불투명하다. 시련이 길어질 수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밝지만은 않다. 호남세가 강한 광진을에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과 접전을 펼치고 있다. 그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공천에서 배제됐다. 만약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다면 총선 이후 당 사정에 따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 전 총리, 이 지사, 박 시장, 김 의원 등으로 차기 구도가 드러났다. 총선 결과에 따라 이 전 총리와 김 의원은 변화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하다. 통합당은 총선 이후에야 비로소 차기 구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서 원희룡 제주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윤석열 검찰총장이 부각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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