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지고 있는 금감원, 피해기업 '민사소송' 준비

신한은행이 금융감독원의 키코 관련 배상안에 대한 수용여부 결정에 대한 '시한연장';을 요청했다. [일요서울]
신한은행이 금융감독원의 키코 관련 배상안에 대한 수용여부 결정에 대한 '시한연장'을 요청했다. [일요서울]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신한은행이 금융감독원의 키코(KIKO, 통화옵션계약) 분쟁 관련 배상안에 대한 수용여부 결정 시한연장을 요청했다.

신한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앞서 배상 또는 불수용 의사를 밝혔고, 마지막으로 신한은행이 분조위 답변 요구 마지막 기일까지 끌고 왔으나, 결정을 미뤘다. 키코 피해 기업인들은 “키코로 기업을 사지로 내몰더니 이제는 금감원의 권고마저 불수용하며 회생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사태와 관련 은행들의 결정에 대해 금감원조차 책임을 미룬 채 뒷짐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분쟁조정위원회 배상 권고 ‘배임’ 소지 크다” 주장
우리은행, 금감원 분조위 권고안 수용 배상 완료

6일 신한은행에 따르면 금감원의 해당 권고안을 두고 이날 오후 이사회를 소집해 논의를 거치고자 했으나, 일부 이사들이 불참해 결론을 내기 위한 ‘수락기간’ 재연장을 요청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외환파생상품인 통화옵션계약 ‘키코(KIKO) 투자로 손실을 입은 기업들에 대한 배상안을 신한은행을 비롯해 우리은행, KDB산업은행, 하나은행, 한국씨티은행, DGB대구은행 등 6개 시중은행에 전달했다. 

금감원은 당시 은행들이 키코 피해기업의 연간 수출액을 넘어서는 규모의 ‘오버헤지’ 계약을 진행한 만큼 이에 대한 배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은행별 배상 금액을 결정했다. 

키코 피해기업, 대법원서 최종 패소

키코 관련 소송 문제는 2008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피해기업 가운데 8곳에서 키코 약관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를 요청했으나, 불공정계약이 아니므로 ‘약관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받았다. 

다만 이를 시작으로 100여 개가 넘는 피해기업들이 같은 해 11월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은행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5년간의 법적 다툼에 돌입했다.

그러나 2013년 9월 당시 대법원(양승태 前대법원장)은 최종적으로 은행 측의 손을 들어 “키코는 환헤지 목적의 정상상품으로 은행이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한 경우 원칙적으로 가입자가 피해 책임을 져야한다. 키코는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다”라고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은행들은 배상 의무가 없고, 무죄 판결이 난 상황에서 금감원의 권고대로 배상을 하는 것은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다만 금감원 분조위는 각 은행들이 기업들과 정상 수출거래 가능 금액의 범주를 벗어난 계약 부분만을 조정 대상으로 삼고 배상을 권고했다. 

예컨대 분쟁조정 대상기업에 포함된 일성하이스코의 경우 신한은행이 거래한 키코는 2008년 1월 계약 건을 포함해 4억100만 달러(약 4700억 원)로 직전연도 수출액 대비 397%에 달했다.

이런 사안에 대해 키코공동대책위원회 측은 “이는 약탈 금융의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며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7년 기업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도산시킨 것에 대한 반성은커녕 시효가 지났으므로 과거의 잘못은 문제가 아니라는 행태는 시대착오적 금융파시스트의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위원회 재조사 요구, 금융위 ‘거절’

특히 박근혜 정권시절 금융위원회 산하 혁신위원회가 금감원에 해당 사안을 다시 조사하라는 권고를 올렸으나, 금융위원장에 의해 바로 취소된 바 있다. 이후 당시 혁신위를 이끌었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면서 키코 사태는 전환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윤 원장은 당시 재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혁신위 시절 지적했던 키코 사태와 관련된 분쟁을 금감원 소속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사와 조정 과정을 통해 지난해 배상안을 마련했다. 

다만 앞서 은행들이 금감원 분조위 조정안에 따른 배상을 거부 또는 불수용 의사를 밝히거나,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면서 가장 큰 금액인 150억 원에 대한 배상 부담이 있던 신한은행마저 의도적으로 이를 미룬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은행권에서는 키코 사태의 추가 분쟁 자율조정 문제를 다룰 은행협의체를 구성해 내달부터 이를 가동할 예정이지만, 배상 권고를 받은 6개 은행 가운데 5곳이 거절 또는 기한 연기 의사를 밝혀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도 불투명해졌다. 

반면 우리은행은 지난달 27일 금감원의 권고를 수용해 키코 피해기업 2곳 총 42억 원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결정하고, 일성하이스코에 32억 원, 재영솔루텍에 10억 원 배상을 완료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은행의 경우, 금감원의 분쟁 조정 대상 4개 피해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과 키코 관련 분쟁이 거의 없어서 지급이 가능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금감원 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피해기업에 배상을 진행했다”면서 “추가적으로 은행협의체에서 논의되거나 배상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한은행을 비롯한 다른 은행들은 향후 도미노 현상처럼 나머지 147개 기업들이 줄줄이 소송을 진행하거나 금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가능성이 큰 만큼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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