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는 ‘우한 폐렴(코로나19)’ 수습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지난달 15일부터 대구에 상주하고 있다. 70대의 노구를 이끌고 현장에서 관련 업무를 통할하는 노(老)정객의 의욕만은 공직자의 귀감이 될 만하다. 그러나 그동안 우한 폐렴 대응과 관련한 정 총리의 언행을 들여다보면, 공직자의 귀감과는 거리가 멀다. ‘책임 총리’로서의 책무를 접고 문재인 정권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나 틀어막는 문재인 호위무사(護衛武士) 같다. 정 총리는 지난 1월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총리가 된다면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던 그의 다짐은 간데없다. 그는 “직언” 대신 대통령이 듣기 좋아할만한 꿀 바른 감언(甘言)을 토해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한 폐렴의 감염원인 중국발 승객들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일찍 취하지 않고 미뤄, 전염병 확산을 최악 상태로 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올 상반기로 예정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방한 추진에 누가 될 것을 우려, 중국이 꺼리는 중국 감염원 차단을 주저한 탓이다. 하지만 대만은 이미 1월23일부터 순차적으로 중국 발 입국을 막기 시작, 2월7일엔 중국·홍콩·마카오에서 오는 승객들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한국은 겨우 2월4일부터 후베이성으로부터 들어오는 입국만 부분적으로 금지하기 시작,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동안 전염병 예방 전문가들은 중국 감염원 유입 차단을 요구했다. 여기에 정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조기 중국 봉쇄를 설득했어야 옳다. 자신이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말고 조기 봉쇄를 관철시켰어야 했다. 책임 총리의 책무이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정 총리는 책임 총리 역할을 접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문 정권의 실책을 호도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전염병 확산과 환자 치료를 위해 중앙정부가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우한 폐렴은 “신종 전염병으로 지구상에서 백신도 없고 실체에 대한 그림이 나오지 않은 전염병”이라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우한 폐렴이 신종 전염병이고 백신도 개발되지 못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정부가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감염원 유입 차단에 실패했고 확진자가 병원의 병상이 모자라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자가 격리된 채 죽어가야 했으며 마스크 대란이 오래 지속되도록 혼선을 빚어냈다는 데 있다. 우한 폐렴 확산에 대한 정 총리의 변명은 우한 폐렴으로 장사가 안 돼 짜증스런 자영업자를 찾아가 “손님 없으니 편하시겠습니다”라고 염장을 지른 말과 다르지 않다.

정 총리는 작년 12월 총리에 지명되자 “국민에게 힘이 되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작정”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힘이 되는 정부로 만들기 위해서는 ‘책임 총리’로서 제왕적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말고 대통령을 바른 길로 보좌해야 한다.

하지만 정 총리에게서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의 20대 국회의장 시절 족적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국회의장으로서 당적을 포기하고 여야 간에 중립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그는 더불어민주당 편에 일방적으로 섰다. 참다못해 야당은 2016년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정세균 방지법’ 제정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젠 정 총리를 맞아 ‘총리 직언법’ 제정이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라도 정 총리는 자신이 약속한 대로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총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에게 힘이 되는 정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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