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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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프리랜서 이정석  기자] 지구 반대편, 남미 콜롬비아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터키 항공을 이용, 이스탄불을 환승한 덕에 더욱 멀게 느껴졌다. 24시간의 비행 끝에 수도 보고타에 내렸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북쪽으로 400km 떨어진 첫 트레킹 예정지는 보야카 지역의 엘 코쿠이 국립공원. 버스로 9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아직 하늘길이 열리지 않아서 그렇다. 멀고도 험한 길.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어서 그럴까? 길에서 마주친 콜롬비아 사람들은 투박하지만 아름다웠다. 웅장하면서도 선이 고운 그들의 자연을 쏙 빼닮았다.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자 놀라움은 계속 이어졌다.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하나 둘 열려 나가고 있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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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king
엘 코쿠이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Natural El Cocuy

남미 대륙 최남단 칠레에서 시작되는 안데스 산맥. 북쪽으로 무려 7000km를 달려온 이 거대한 산허리는 남미 대륙 최북단 콜롬비아에서 세 갈래로 쪼개진다. 이 중 가장 오른쪽 산맥에 엘 코쿠이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25개 이상의 봉우리들은 해발고도 5000m가 넘어 1년 내내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5,300m의 리타쿠바 블랑코Ritacuba Blanco. 이 중 우리가 찾아갈 곳은 악마의 제단이라는 뜻의 ‘풀피토 델 디아블로’와 고산 속 호수 ‘라구나 그란데’이다. 산 정상에 네모반듯하게 솟은 영험한 바위와 파란 호수를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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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피토 델 디아블로 Pulpito del Diablo

해발고도 5100m 악마의 제단을 만나기 위한 트레킹은 4000m 지점에서 시작된다.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산행이다. 전날 고산 적응을 위해 4100m까지 가벼운 산행을 마쳤고, 3900m에 위치한 카바냐스 칸와라 산장Cabañas Kanwara Hostel에서 숙면을 취한 덕에 컨디션은 좋다. 게다가 전날 현지 산악 가이드와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코카잎 의식을 가져서일까? 날씨도 더 이상은 맑을 수 없을 만큼 화창하다. 국립공원 검문소를 지나자 완만한 내리막길 너머로 만년설에 덮인 해발 5120m의 판 데 아수카르Pan de Azucar 봉우리와 악마의 제단이 한눈에 보인다. 우거진 숲길을 헤치고 나아가니 남미 대륙 북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독특한 식물이 일행을 맞는다. 해발고도 3200~4500m에 서식하며 1년에 단 1cm만 자란다는 프라일레혼Frailejon이다. 대부분 2~3m 높이인데 큰 것은 5m에 육박한다. 무려 5백년이나 한자리를 지킨 것이다. 산들바람을 맞으며 5km 정도 평탄한 길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고도는 4200m. 다리 근육에 힘이 들어가자 산소 공급이 줄면서 숨은 가빠지고 이내 두통이 시작된다. 고산병이다. 이때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물을 많이 마시고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걷는 것이 최선이다. 2km를 올라가자 더 심한 경사가 나타난다. 아직 2km를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눈앞이 아득하지만 별 수 없다. 다시금 이를 악무는 수밖에.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해발 4,600m 정상부. 순백의 설산과 거대한 사각형의 바위가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온화한 모습으로 일행을 맞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풀피토 델 디아블로는 악마를 떠올릴 만한 풍경이 아니었다. 왜 이런 살벌한 이름이 붙었을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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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은 원주민이 태양신을 섬기던 제단이었어요. 그런데 16세기 스페인 침략군이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한다며 이 신성한 곳을 '악마의 제단'으로 바꿔버린 거죠.”

각종 전염병으로 원주민의 90%를 몰살시킨 것도 모자라 문화적 뿌리까지 없애려 한 스페인 사람들의 의도가 궁금해 졌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바가 과연 이런 것인지, 아니면 단지 종교의 탈을 쓴 인간의 추악한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인지 말이다.

■산행거리: 18km
■산행시간: 10시간 20분
■고도차: 해발 4000~4600m

라구나 그란데 Laguna Grande

다음 날, 엘 코쿠이 국립공원이 자랑하는 고산 호수, 라구나 그란데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섰다. 이곳 역시 원점회귀 코스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를 지나 완만한 산길을 오른다. 전날 봤던 프라일레혼이 이곳에도 지천이다. 빨간색이 강렬한 꽃도 자주 보인다. 페가페가라는 꽃인데 끈적끈적한 꽃잎에 붙은 곤충을 먹고 사는 식충식물이다. 계곡을 따라 한적한 숲길이 이어진다. 바람소리와 새소리 외에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불어오는 바람에 향긋한 꽃냄새가 묻어난다. 산책하기 좋은 길이 끝나자 오르막이 시작된다. 돌이 많은 너덜길이라 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다. 금세 땀이 배어 나오고 숨도 가빠진다. 이 길 역시 해발 4000m가 넘는 곳이라 조금만 급하게 걸으면 머리가 띵해지고 가슴은 터질 듯이 뛴다. 이런 황량한 곳에는 어떤 야생동물들이 살지 궁금하던 그때, 한 푯말이 보인다. 퓨마 서식지를 알리는 표시다. 하늘엔 안데스 콘도르의 비행도 이어진다. 콜롬비아는 새들의 천국이다. 전 세계 9,000여 종 중 1,800여 종이 콜롬비아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새를 관찰하러 콜롬비아를 찾는 ‘새 구경’ 여행객도 꽤 된다고 한다. 산행 6시간.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는 작은 호수들. 10분을 더 올라가자 오늘의 주인공, 라구나 그란데가 장엄한 자태를 뽐내며 펼쳐졌다. 깊고 푸른 호수는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을 배경으로 일행을 맞이했다. 해발 4500m 산속에 황량함까지 더해지니 마치 세상의 끝에 다다른 느낌이다. 아마존 강의 원류 중 하나인 라구나 그란데. 생명의 근원을 마주한 것 같은 경건함마저 든다.  

■산행거리: 16km
■산행시간: 9시간
■고도차: 해발 3,600~4,5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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