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묻고 더블로 더 삽니다'...경영 승계 포석 의도 깔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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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주가가 하락하자 주요 기업 오너들이 자사주를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해당 기업은 책임경영과 주주 가치 제고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싼 값에 주식을 사들여 향후 경영 승계를 손쉽게 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GSㆍ신세계백화점ㆍ우리금융 등 오너 자사주 매입 현상 뚜렷
일각에서는 싼값에 주식 사들여 경영승계 목적 사용 '비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준선 씨와 차남인 정원선 씨는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모두 7만 주를 사들였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 지분율도 37.88%에서 38.00%로 올라가며 경영권 안정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분석이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도 주가 부양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BNK금융의 자사주 매입은 2011년 지주 출범 후 처음이다. BNK금융은 지난 3일 한국투자증권과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7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12일 손태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1만1700주에 달하는 자사주를 장내 매수하며 주가부양 지원에 나섰다.

우리금융그룹 경영진들의 자사주 매입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내외 경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최근 금융주를 둘러싼 우려가 과도하다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자사주 매입에는 손태승 회장, 이원덕 부사장, 박경훈 부사장, 신명혁 부사장, 정석영 전무 등 이 참여해 자사주(우리금융지주 주식) 총 1만1782주를 장내 매수했다. 손 회장은 총 5000주를 매입해 총 7만3127주의 자사주를 보유하게 됐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손 회장과 경영진들의 이번 자사주 매입으로 최근 금융주를 둘러싼 우려가 과도하다는 메시지를 대내외 천명하게 된 것”이라며 “코로나19 영향으로 연초 계획됐던 일정이 순연 중이나, 사태가 진정되면 적극적으로 국내외 IR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취임 후 네 번째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DGB금융은 김 회장이 지난 4일 자사주 1만주를 장내매수 했다고 9일 밝혔다. 김 회장은 취임 이후 4차례에 걸쳐 자사주를 매입했으며 이번 매수 포함 2만5000주를 보유하게 됐다.

김 회장뿐 아니라 DGB금융과 대구은행 경영진들도 자사주 매입에 동참했다. 올해 들어서만 경영진이 사들인 자사주와 우리사주는 8만여주에 달한다.

대신증권 창업주 3세인 양홍석 사장은 지난 2일과 3일 3만3417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번 거래로 양 사장은 2014년 취임 당시 6.66%였던 지분율은 8.23%까지 증가했다. 보유주는 418만568주다. 대신증권의 당기순이익은 1023억원으로 27.3% 감소했다. 주가는 연초 1만1950원에서 지난 2일 9420원까지 하락했다가 1만원선을 회복했다.

GS그룹 오너 4세이자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인 허 사장은 지난달 5~6일, 11~19일에도 GS 주식을 각각 8만1900주, 2만4000주 사들였다. 최근 한 달새 GS 주식 44만1110주(약 190억원)를 매입한 것이다. 이 기간 허 사장의 GS 지분율은 1.51%에서 1.98%로 크게 올랐다.

GS그룹 오너4세 장손인 허준홍 삼양통상 대표도 지난달 말 GS 주식 10만여주를 장내에서 매수하는 등 GS그룹 오너4세 여러 명이 그룹 지주사인 (주)GS의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 이들은 GS 주가가 올들어 전날(4만800원)까지 20.9% 떨어지는 등 최근 5년내 최저가를 기록 중인 점을 감안해 보유 지분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의 장남 윤인호 전무가 지난달 말 회사 주식 5만1500주를, 대한제분 창업주 이종각 회장의 장남이자 2대 주주인 이건영 회장이 자사주 4378주를 사들였다.

주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도 자사주 매입레이스에 동참 중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3일과 4일 자사주 5000주를 장내 매수했다. 정 사장이 보유한 자사주는 기존 1만1697주에서 1만6697주(지분율 0.01%)로 증가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달 25일 전무·상무급 임원 7명이 자사주 2466주를 매입했다.

 
기업 가치 제고 계기 될 수도
 
자사주 매입에 나선 대부분의 기업들은 '책임경영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경영진이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DGB금융은 “김태오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자발적인 자사주 매입은 애사심 고취와 함께 경영진으로서 책임경영과 주주가치 제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것이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최근 장기 저성장·저금리 기조로 인한 금융산업 전반의 주가 하락과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경기의 침체 등이 우려되는 가운데서도 지역의 확고한 기반을 바탕으로 신시장 공략, 고객 가치 최우선의 차별화된 금융서비스 제공 등을 통한 실적 개선에 대한 의지와 미래 기업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상장사 주식을 직접 증여하기보다 주가가 떨어졌을때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승계를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상장사 오너 일가의 지분 확대 시점을 살펴보면 주가가 저평가될 때가 많다. 이는 상장사의 경영권을 물려받으려는 자녀들의 경우 승계 비용을 줄여 지분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의 두 얼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웃는 기업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심각 수준이다. 하지만 편의점과 대형할인점 등은 마스크와 간편식 판매 증가, 온라인 판매채널 매출 확대등으로 매출이 뛰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이마트 주가는 최근 한 달 6.2% 하락했으나, 최근 일주일 성적만 보면 2% 가까이 상승했다. 외국인이 지난 25일과 26일 각각 2조6176억원, 4929억원어치를 매수하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롯데쇼핑과 GS리테일도 주식 시장에서는 가벼운 마음이다. 최근 5거래일 동안 이들 종목에 대해 각각 2714억원, 653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롯데쇼핑은 대규모 구조조정 이슈로 최근 한 달 주가 등락률이 마이너스(-) 17.9%에 달했지만, 최근 5일 등락률은 11.7%에 그쳤다. 이달 들어 10% 넘게 떨어졌던 GS리테일 주가도 25일과 26일 연속으로 오름세를 나타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이달 하순부터 급증하면서 면세점과 백화점, 가전양판점 시장은 올 1분기 많이 축소될 것"이라며
"코로나19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의점과 온라인 채널 판매가 오프라인 매출 감소를 상쇄하는 대형마트는 실적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우려가 심화하는 국면에서는 편의점, 대형마트, 담배, 라면, 간편식 관련 업체 주가가 업종 내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우려가 완화되면 주류, 백화점, 면세점을 포함한 중국 관련 소비재 등에 투자하는 공격적인 포트폴리오가 선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들 기업 관계자들은 "매출이 높아졌지만 마음은 무겁다"며 "무턱대고 신바람 나는 일은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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