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명 공수처 준비단장ㆍ조윤제 전 주미대사ㆍ김덕현 변호사 등 거론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상장기업들의 3월 주총이 진행되는 가운데 친여(親與) 인사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진출할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법무부가 상장회사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하고 공석(空席)이 된 자리를 여권 인사들이 꿰차면서 특혜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재계 안팎으로 현 정부 코드와 맞는 인사를 대거 영입해 기업의 바람막이 병풍을 기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경제단체 "정부가 `사외이사 일자리’ 만들고 여권 인사가 그 수혜를 봤다.`" 비난 확산
법무부 "사외이사 장기 재직은 독립성 제고 차원. 투명성장 위한 조치 할 것"해명


지난 10일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새 사외이사를 뽑아야 하는 상장사는 566개사이고 새로 선임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718명이다. 최근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상장사 사외이사의 임기가 최대 6년(계열사 합산 9년)으로 제한되면서 사외이사 중 임기가 끝나는 이사들도 많다. 이 때문에 올해 주총에서는 상장사들이 당장 임기 제한을 넘긴 사외이사들의 후임을 구해야 하면서 구인난이 심해졌다.

재계에서는 "사외이사 대란"이란 말도 나온다. 일부 기업끼리 임기가 끝난 사외 이사들을 서로 `돌려막기`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 인사 중 일부가 정부와 연이 닿아있는 ‘코드인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여권 인사, 줄줄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실례로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문재인 대선 캠프 싱크탱크 좌장 출신으로 이번 정부에서 주미(駐美) 대사를 지낸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는 미래에셋대우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문재인 대선 캠프 홍보본부장을 맡았던 예종석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LS의 사외이사로 추천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김덕현 변호사,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을 지낸 박태주 고려대 연구교수는 삼성SDI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노무현 정부 노동부 차관 출신의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는 삼성물산에, 노무현 정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정동채 민주당 고문은 효성그룹에 사외이사로 추천됐다. 정 교수는 타 매체를 통해 "삼성물산 거버넌스 위원회 활동으로 사외이사가 된 것일 뿐 문재인 정권 관련 정치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3월 주총에서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앞서 하나은행 신규 사외이사로 추천돼 논란이 된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준비단장은 하나은행 사외이사를 맡지 않기로 했다.
남 단장은 지난 10일 공수처 설립준비단 보도자료를 통해 하나은행 사외이사 포기 의사를 밝혔다.

남 단장은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이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느낀다"며 "책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하기 위해 공수처 설립준비단장 재직 중에는 단장 외 어떠한 공·사의 직도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 단장이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에 취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하나은행 사외이사에 선임되자,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앞장설 공수처 설립 책임자가 시중은행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에 공수처 설립준비단은 전날인 9일 "남 단장의 하나은행 사외이사 영입은 비상근 명예직인 준비단장 위촉 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라며 "준비단장의 업무는 공수처 조직·인력의 구성 등 공수처의 설립준비를 위한 것으로 은행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남 단장은 오는 19일 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될 예정이었지만, 공수처 설립을 맡아온 인물이 은행의 사외이사를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세자, 결국 겸직을 포기했다.

공수처 설립준비단은 "공수처가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척결하고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여달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잘 출범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자문역일까, 보험용일까. 로비용일까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상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해 ‘일자리’를 만들고 여권 인사들은 그 수혜를 봤다”는 취지를 주장했다.

이에 법무부는 "(논란이 되는) 5개 회사 중 1개사는 연임 가능한 사외이사가 있음에도 새로 교체하는 경우로서 사외이사 장기 재직 금지와 무관하다"며 "나머지 4개사의 경우도 평균 6년 이하를 주기로 사외이사를 교체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상법 시행령 개정 이전에도 정기 주주총회 시기마다 회사들이 정권코드에 맞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보험용’, 또는 ‘방패막이’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계속 있었다"며 "사외이사의 장기 재직 제한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여 감시와 견제라는 제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외이사는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연봉을 받는다. 그동안 사외이사란 신분은 경영진에 대한 투명경영 감시 및 견제 역할 보다는 권력기관을 상대로 한 ‘로비스트(?)’나 `보험금(?)`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기업에 대한 내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이사회 거수기에 그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임기 후반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가 아직 `논공행상`을 못한 인사들에게 수천만 원 연봉이 보장되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의 임기가 대거 만료됨에 따라 ‘물갈이’ 가능성은 일찌감치 예상됐다”면서도 “특히 이번 사외이사 후보군 면면을 살펴보면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대거 포진돼 이들의 역할에 대해 의문이 깊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방안은 외국에서 찾기 어려운 과잉 규제라고 지적한다. 기업 경영에 외부개입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큰 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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