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하다 보면 개들의 울부짖음 들려 고통스럽다”

뜬장에 갇힌 개들 [사진=제보자 A씨 제공]
뜬장에 갇힌 개들 [사진=제보자 A씨 제공]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개고기 문화’ 는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주제다. 강아지를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 것이 사라져야 할 야만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반면 개 역시 가축의 일부일 뿐이며 소나 돼지, 닭처럼 잡아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동물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양 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개의 경우 소나 돼지처럼 시스템화 된 사육 시설이나 도축장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이로 인해 개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제대로 된 음식이나 생활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에 위치한 한 개농장의 개들 역시 적지 않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계양구청 “과태료 처분 했다…현행법상으로는 강제 철거 어려워”
롯데 “故 신격호 회장 개인 소유 토지…상속 절차 끝나야 정리 가능”

계양산은 계양구 계산동에 위치한 높이 395m의 산이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이 산에는 주민들이 ‘솔밭숲’이라고 부르는 인천 둘레길 코스가 조성돼 있다.

그런데 이곳으로 산책, 나들이를 나선 주민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 울부짖음에 기분이 상하곤 했다. 계양산 일부를 점유한 채 운영되는 개농장 때문이었다.

지난 8일 지역 주민 A씨는 기자에게 보낸 제보에서 “개농장 주인이 30여 년간 (땅을) 불법 점유하며 개와 소, 닭을 키우고 농사 지으며 거주해왔다고 한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현재 해당 개농장에는 140여 마리에 달하는 도사견들이 사육되고 있다.

A씨는 “개들은 뜬장에 갇혀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키워지고 있다”면서 “개 도축은 목을 졸라서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를 여러마리 중 고르면 바로 잡아서 보신탕 끓여주는 곳과 연결돼 있다고 한다”며 “솔밭숲을 지나면 개들이 엄청나게 짖어대고, 죽을 때 우는 소리로 등산객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또 “(해당 개농장은) 가축분뇨처리법 위반과 불법점유 등으로 과태료를 냈다”며 “그런데도 음식물 찌꺼기를 끓이지도 않고 주는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들은 (개농장을) 하루 빨리 철거해 계양산을 깨끗하게 하고, 농장주를 추방한 뒤 개들을 구조해 보호소에서 보호해야 하는데도 ‘8월에 철거하겠다’는 농장주 말만 듣고 기다려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개들이 뻔히 불법 도축되고, 개고기가 될 것을 알면서도 불법도축 사실을 눈감아 주고 있다”며 “(불법도축의) 증거도 잡지 않고 복날에 농장주가 영리를 최대한 취하도록 기다려주고 있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실제 A씨가 함께 제공한 영상에서는 좁은 뜬장에 갇힌 채 오도가도 못 하며 울부짖는 개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A씨는 “인천의 명산 계양산에서 수년간 이런 일이 자행되어 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시민들이 쉬려고 오는 등산길에 개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고통을 느껴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A씨는 지난 10일 인천에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공무원에게 같이 (개농장에) 가서 실태를 좀 보면 안 되겠느냐고 했는데 ‘사유 재산이라 안 된다’고만 한다”며 “불법 점유하고 있는 곳인데 누구 재산이냐”고 반문했다.

‘개농장’ 자리 잡은 계양산
롯데그룹 소유 토지?

A씨의 주장 중 눈에 띄는 점은 개농장이 위치한 계양산이 롯데그룹 故 신격호 회장 소유의 토지라는 것이다.

A씨는 “공무원에게 듣기로는 소유주(롯데)가 얼마 전에 불법 점유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며 “대기업 롯데가 30여 년 간의 엄청난 사용료를 민사청구하지 않는 대신 저 개들을 포기하는 것을 요구해 도움을 주기를 바라본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롯데그룹이 소유한 계양산 부지는 약 50만 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지난 2009년 계양산 골프장 건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인천시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송영길 시장이 취임한 뒤 자연생태계 보호와 난개발 방지, 주민 반발 등을 이유로 2012년 허가가 취소됐다. 롯데 측은 허가 취소 결정에 불복해 2013년부터 소송을 진행했지만 2018년 대법원 상고에서 최종 패소하며 사업은 완전 무산됐다.

문제는 롯데 측이 자사 소유 토지 내에서 개농장이 30여 년간 운영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개농장 운영 사실은) 알지 못했다”라면서 “그 땅은 회사 소유 부지가 아니라 돌아가신 명예회장님 소유의 땅이다. 관련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양산 토지) 관련해서는 상속자분들의 협의를 거쳐서 어떻게 정리될지는 두고 봐야 할 거 같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이 롯데 측이 조치를 해줄 수 없는지 궁금해 한다’는 기자의 질문에는 “회사 소유의 땅이 아니고, 돌아가신 회장님 개인 소유의 땅이셔서”라면서 “기업이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상속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는 기업 차원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계양산 개농장’ 직접 방문해보니…

10일 방문한 계양산 개농장은 사방이 막혀 내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곳곳에 난 틈으로 살펴본 농장 안에서는 묶여있는 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가 접근하자 인기척을 느낀 개들은 또다시 짖어댔다. 기자는 농장주와의 인터뷰 및 농장 내부 확인을 위해 방문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내려가던 중 만난 등산객 B씨에게 개농장에 대해 묻자 “평소에 개 짖는 소리가 심하게 나긴 한다”면서도 “개농장이 있는지는 몰랐다. 가족들도 많이 찾는 곳인데 적절하지는 않은 거 같다”고 대답했다.

계양구청은 해당 개농장에 대한 강제 철거 집행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계양구청 관계자는 “불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해당 과에서 지속적으로 점검, 처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농장 자체가 법의 사각지대에 속해 있다. 그곳에서 개를 사육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아니다’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제 철거는 어렵다”라면서 “저희도 행정기관이고, 법적 절차에 따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불법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과에서 처분도 하는 중이고”라고 덧붙였다.

계양구청의 설명처럼 개농장 관련 문제는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모호하다. ‘축산법’상 개는 가축으로 분류돼 식용을 목적으로 사육이 가능하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상 식용을 위해 도살 가능한 가축에서는 빠져 있다. 허가를 받지 않고 도축했다면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지만 이 경우 해당 농장에서 도축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물론 구청이나 기업에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농장주를 쫓아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법과 절차의 사각지대에서 농장에 갇힌 개들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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