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입니다. 급해요. 계속 목을 조르고 있어요. 어머머, 여자가 숨이 넘어가나 봐요.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무더위로 온 세상이 지글지글 끓는 것 같은 8월 중순, 경찰청으로 걸려온 전화 속의 다급한 목소리는 지금 자기 이웃 아파트에서 남자가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웃 아파트의 신고 여인은 자기가 곧 숨이 넘어가듯이 다급했다.

“아주머니, 좀 차근차근 이야기해요. 어디 사시는 누구신지요? 동네와 아파트 이름, 호수부터 대요.”

경찰관이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대치동 금강산 아파트 996동 3106호. 그 집에서 지금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요. 남자가 여자의 목을 계속 조르고 있고, 여자는 사지를 비틀며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비명 소리가 점점 작아져요. 나는 997동에 사는…….”

곧 형사 기동대가 출동되어 3106호로 몰려갔다. “왜들 이러십니까?”
그러나 뜻밖에도 3106호에 있던 30대의 사나이는 더위 때문인지 웃통을 훌렁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멍한 얼굴로 몰려든 형사들을 보고 껌벅였다. 에어컨이 잘 되어 시원한 방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시치미떼어 보았자 소용없어. 바른대로 대! 시체 어디다 감추었어요?”
현장을 지휘하던 추 경감이 사나이를 불러세우고 다그쳤다. 그 사이 형사들이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누구야, 당신 아내를 죽인 게? 왜 그랬어?” 추 경감이 계속 다그쳤다.
“예? 제 아내요? 부산 친정에 간 지가 1주일도 더 되었는데요.”

사나이가 눈을 껌벅거렸다. 형사들은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런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추 경감은 그의 아내가 있다는 부산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정말 그의 아내는 그곳에 있었다.

“반장님, 아무 흔적이 없는데요.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혹시⋯⋯.”
그랬다. 추 경감도 그 997동에 산다는 백숙자라는 여인이 허위 신고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997동을 내다보았다. 50m쯤 떨어진 맞은편 같은 층이 그녀의 아파트였다. 그쪽에서는 이쪽 아파트가 잘 보일 것 같았다.

“반장님, 이런 게 있었습니다.”
그때 강 형사가 현관에서 배달되어 온 것 같은 아직 뜯지 않은 조그만 소포를 뜯어보며 말했다. 하얀 가루가 나왔다.

“아니, 이건 마약 아냐?” 추 경감이 사나이를 건너다보았다.
“난 정말 몰라요. 어디서 누가 보냈는지도 몰라요. 받아놓은 뒤 귀찮아서 뜯어보지도 않았어요.”

사나이의 말이 정말인 것 같았다. 강 형사가 곧 뛰어나가며 말했다.
“백숙자가 허위 신고를 한 것입니다. 내가 알아보고 오죠.”
얼마 안 되어 강 형사가 신고자 백숙자를 데리고 왔다. 요란하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홈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외모와는 전혀 다르게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어 있었다.

“쯧쯧쯧…⋯. 왜 그런 짓을 했어요?” 추 경감은 멀쩡하게 생긴 백숙자를 보고 말했다.
“저 남자는 혼 좀 나야 해요. 내 차를 그렇게 만들어놓고는…⋯.”

강 형사가 보충 설명을 했다. “며칠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 접촉 사고로 저 남자와 대판 싸웠답니다. 길바닥에서 자동차를 세워놓고 서로 제가 잘났다고 멱살 쥐고 싸우는 풍경 종종 보았지요?

길 막혀 못 가는 다른 차들이야 본체만체. 현대의 서울 풍경⋯⋯. 싸우고도 분을 못 이긴 백숙자 씨는 저 남자를 골탕 먹일 셈으로⋯”

“마약을 발신인도 엉터리로 적어 이 집에 배달시킨 뒤 살인 사건이 났다고 신고해 형사들이 이 마약을 찾아내게 한다는 거군⋯⋯. 머릴 썼군. 머릴 썼어⋯⋯. 쯧쯧쯧⋯”

추 경감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 여자 좀 봐! 화해까지 하고도 분이 안 풀렸단 말이오? 아무리 벽 막고 사는 아파트 동네지만 이웃을 그렇게 모함할 수 있어요?”

웃통 벗은 사나이가 삿대질했다. 백숙자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난 처음부터 저 여자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 강 형사가 한마디 했다.

 

퀴즈. 강 형사는 백숙자가 거짓말을 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답변-초단] 아파트 동과 동 사이가 50미터나 되는데다 냉방을 하기 위해 창문을 닫아두었다. 그런데 여자의 비명 소리가 어떻게 거기까지 들리겠는가?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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