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지난 금요일 아침 언론들은 당정 충돌을 크게 부각했다. 추경안 규모를 놓고 민주당과 정부가 맞섰다는 내용이다. 이해찬 대표가 홍남기 부총리에 해임건의를 거론하며 추경안 증액을 압박한 것이 발단이다. 뉴스만 놓고 보면 홍 부총리 사퇴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자 사태는 이내 수습됐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경제제사령탑 홍남기 신뢰’를 밝혔기 때문이다.

통합당은 황교안 대표, 김형오 공관위원장,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갈등이 부각됐다. 황 대표 공천 재의 요구에 김 위원장이 두 곳을 받아들여 봉합되는 듯했다. 김 이사장이 강남갑·을 공천 수정을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은 즉각 거부했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도 ‘뇌물수수 전력이 없다’며 김 이사장을 겨냥했다. 김 위원장은 강남병 후보의 정체성이 논란이 일자 금요일 오후 사퇴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앞의 두 장면은 민주당이 왜 상대적 우위인지를 알려준다. 민주당은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엄중한 사태를 신속히 봉합했다. 통합당은 총선 한 달 앞 공천 철회와 공관위원장 사퇴로 얼룩졌다. 통산 선거는 최선을 선택한다. 때로는 누가 덜 나쁜지 차악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 선거는 대체로 후자 쪽이다.

이대로라면 통합당은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첫째, 시대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4차산업혁명 물결이 몰려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연대와 협력·수평적 리더십·세대교체·탈이념·공정과 정의·역동성… 미래사회 도래와 함께 중시되는 가치들이다. 민주당이 미래가치를 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통합당에 비해선 조금 낫다는 게 여론이다. 일테면 차악이다.

둘째, 이번 총선은 보수에겐 새 출발 의미가 있다. 국정농단과 탄핵 시대를 끝내고 ‘보수의 미래’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시대소명이 있었던 것이다. 통합당 출범과정과, 이른바 탄핵 5적 배제는 진정성을 결여한 세 불리기에 불과하다. 덩치를 키웠다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옥중서신 등장은 국민에게 보수가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셋째, 승리할 수 없는 정당구도를 방치했다. 이번 총선은 민주당 대 통합당 구도로 치러지고 있다. 보수에서 진보로 정치지형이 바꿨다. 여야 일대일 구도는 불리하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통합당 전신) 선전은 당시 국민의당 탓이 크다.

전국 33개 지역구에서 50% 미만을 얻고도 당선했다. 범진보가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 지역구 의석은 105석이다. 정당구도 이점이 사라진 이번엔 그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넷째, 범여비례 연합정당 출현으로 10석 내외의 의석 출혈이 불가피하다. 미래한국당 출범은 선거법 개정안 취지를 무력화하는 꼼수로 비판 받았다. 물론 범여 비례당도 꼼수다. 통합당은 만드는 데 범여권이라고 만들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당초 이런 빌미를 주지 말아야 했다. 시대 흐름, 보수 소명에 충실하지 못하다보니 꼼수가 등장했고, 또 다른 꼼수를 부른 셈이 됐다.

다섯째, 경쟁력 있는 중진과 대선주자를 사지·험지·불출마로 내몬 것은 통합당의 큰 손실이다. 한 사람의 대선주자가 만들어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한 달 남짓 남겨둔 시점의 전환배치는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게다가 무소속 출마가 속출하고 있다. 공천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수십 곳에서 당선자를 더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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