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 ‘찔끔’, 용퇴론은 잠잠, ‘감동 없는 공천’  

[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4·15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도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당의 공천은 보통 총선 승리의 가늠자로 여겨진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에서 불거졌던 ‘진박 감별사’와 같은 불공정 공천 논란은 민심의 등을 돌리게 하고 인적쇄신 강도가 총선 승리를 좌우하기도 한다. 민주당의 이번 공천 성적표는 어땠을까. 민주당은 공천 시작 전부터 ‘시스템 공천’을 표방했지만 곳곳에서 무너진 시스템 공천의 잡음이 표출됐다. 인적쇄신도 ‘찔끔’에 그쳐 개혁 공천이라는 감동도 없었다는 평가가 터져 나온다.  

제일 왼쪽부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뉴시스]
제일 왼쪽부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뉴시스]

-공천 기준 ‘이랬다 저랬다’, ‘무너진 시스템 공천’ 
-양정철-이근형 조합, 친문 공천 ‘현실화’

지금까지 진행된 민주당의 공천 결과를 보면 크게 ‘친문’(친문재인) 불패,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건재, 현역 의원 강세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지난 11일 기준으로 총선에 출마한 70여 명 가운데 26명이 공천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서울 구로을에, 고민정 청와대 전 대변인은 서울 광진을에 전략공천됐다. 박수현 전 대변인(충남 공주·부여·청양),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서울 강서을), 복기왕 전 정무비서관(충남 아산갑),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 성남 중원), 한병도 전 정무수석(전북 익산을),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서울 성북갑) 등도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친문 핵심으로 불리는 홍영표(인천 부평을), 윤호중(경기 구리), 전해철(경기 안산 상록갑), 김태년(경기 성남 수정) 의원 등은 단수 공천됐다. 

비문 공천 대거 탈락, ‘미운털’ 박힌 금태섭 탈락

컷오프(공천 배제)되거나 경선에서 탈락한 친문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비문은 쉽게 눈에 띈다. 비문인 오제세·민병두·정재호 의원 등이 컷오프 됐으며 이석현·이종걸·유승희·심재권·손금주 의원 등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특히 금태섭 의원이 서울 강서갑 경선에서 친문 강선우 전 민주당 부대변인에게 패배해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조국 사태’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표결에서 여당 의원 중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진 금 의원이 친문 강성 지지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결국 경선에서 탈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곳은 정봉주 전 의원, 김남국 변호사가 잇달아 도전장을 내밀고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자 추가 공모를 결정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아 ‘금태섭 찍어내기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결국 이는 현실화됐다. 

‘용퇴론’이 거세게 불어 생존 위협을 받던 86그룹 의원들도 건재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불출마로 86그룹 용퇴론에 불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공천 결과 이인영(서울 구로갑), 우상호(서울 서대문갑), 송영길(인천 계양을) 의원 등 대부분이 살아남았다.

지난 11일 기준으로 민주당의 현역 교체율은 27%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40%가 교체돼 수치로만 보면 인적쇄신 경쟁에서 통합당이 민주당을 앞선 모습이다. 

또 이번 공천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민주당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서울 영등포을에서는 김민석 전 민주연구원장이 16대 총선 이후 20년 만에 신경민 의원을 꺾고 3선 도전에 성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우광재)’로 불리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강원 원주갑 경선에서 박우순 전 의원을 꺾고 9년 만의 정계복귀 첫 무대인 본선에 진출했다. 

이와 함께 청년·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이들을 우대하겠다던 약속도 공수표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천자 중 86세대에 해당하는 1960년대생, 남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세대교체에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과 여성 정치인을 발굴하기 위한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3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이번 민주당 총선 공천의 기준은 투쟁력과 친문 두 가지였다. 인적쇄신은 전혀 안 됐다”며 “역대 선거에서는 물갈이를 많이 한 정당이 이겼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인지 지켜보는 것이 이번 총선 관전 포인트다”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현역 물갈이 폭은 작고 친문과 청와대 출신들이 대거 약진했다”며 “청와대와 이해찬 대표가 적당히 합의해서 비문을 잘라내고 친문, 청와대 출신을 공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 민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무너진 시스템 공천, “원칙 없는 공천” 반발

이와 함께 민주당의 공천 기준이 ‘이랬다 저랬다’하는 경우가 속출해 ‘시스템 공천’이 허물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천관리위원회 결정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번복되는 일이 빈번했다.

일부 지역은 공관위가 경선으로 결정한 지역을 최고위에서 단수공천으로 공관위 결정을 뒤집거나 일부 지역은 100% 국민여론조사로 경선을 치르도록 해 반발을 불러왔다. 민주당 경선 룰은 권리당원 투표 50%와 일반 국민경선 투표 50%를 합산한 뒤 여성·청년·정치신인 등에 대한 가점, 현역 의원 하위 20% 평가자 등에 대한 감점을 반영한다. 

서울 동대문을, 경기 안산단원갑, 경남 김해을,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등은 기존 경선 룰이 아닌 일반 국민 100% 여론조사로 선출 방식이 변경됐다. 

컷오프됐다가 기사회생한 경우도 있다. ‘공항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경남 김해을 친문 김정호 의원은 당 공관위에서 컷오프됐다. 그러나 최고위가 다시 경선 기회를 주기로 하면서 당내에서는 친문 진영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시흥을의 경우는 공관위가 당 정책위의장인 조정식 의원과 김윤식 전 시흥시장, 김봉호 변호사 3명의 경선을 의결했지만 최고위가 공관위 결정을 뒤집고 조 의원을 단수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브리핑에서 “현재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심사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당 정책위의장이 경선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단수 공천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전 시장은 “당이 공관위의 결정마저 짓뭉개며 셀프 추천을 했다”고 반발하며 서울남부지법에 경선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지도부가 ‘특별당규에 명시된 현역 의원 전원 경선’ 계획을 뒤집은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서울 송파병에는 남인순 최고위원이 단수 공천됐다. 당 재심위가 컷오프된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의 재심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최고위는 이를 거부하고 남 최고위원에 대한 단수 공천을 확정했다. 이에 당초 청년 정치인을 키우겠다며 현역 의원 경선 원칙을 내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의원들의 단수 공천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친문’ 세력의 지지가 강한 김남국 변호사가 논란 끝에 경기 안산단원을에 전략공천된 것도 뒷말이 나왔다. 이곳이 ‘청년 우선 전략선거구’로 지정된 합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도 경선을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이해찬 대표가 전략공천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의 공천으로 친문 강세가 다시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부평갑의 경우는 당초 홍미영 전 의원이 단수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홍 전 의원은 이성만 예비후보의 재심 요청이 받아들여져 경선 지역으로 돌려진 뒤 결국 낙천했다. 송영길·홍영표 의원 등 인천지역 현역 의원들이 공천재심위에 홍 전 의원의 단수 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 전략 수립과 공천 경선 여론조사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겸 공천관리위원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도 표출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의 남자’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취임하고 이 위원장이 원외 인사임에도 이례적으로 전략기획위원장에 임명되자 비문 진영을 중심으로 ‘친문 공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서울 성북갑 경선에서 김영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패배한 유승희 의원은 김 전 비서관과 이 위원장 간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 의원은 김 전 비서관이 윈지코리아컨설팅에 경선 홍보 기획을 위탁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위원장은 30%의 지분을 소유한 ‘윈지코리아컨설팅’ 최대 주주이며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임명되기 전 이 회사의 대표를 지냈다.

민주당 한 예비후보 측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선거를 보면 공천에서 망한 당은 선거 결과도 좋지 않았었다”며 “민주당의 이번 공천은 공천 기준이 너무 자주 바뀌는 등 원칙이 무너진 공천이었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