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세심하게 신경써줬으면” vs “이 시국에 이게 어디냐”

노원구에서 구민에게 배포한 마스크 [사진 제공=김씨]
노원구에서 구민에게 배포한 마스크 [사진 제공=김씨]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대한민국은 지금 ‘마스크 대란’을 겪고 있다. 중국발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마스크 수요가 크게 증가하며 재고가 부족해진 탓이다. 결국 태어난 연도에 따라 마스크를 제한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마스크 5부제’라는 사상 초유의 제도까지 시행됐다. 그럼에도 짧게는 십 수 분에서 길게는 1시간 여 이상 기다려야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 상대적 취약계층을 위해 “건강한 분들은 마스크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은 같은 날 김 실장 본인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사실이 알려지며 신뢰를 잃었다. 이처럼 마스크 대란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울시 노원구가 구민 54만여 명에게 무료 마스크를 배포했다. 마스크를 받아든 구민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고 있다.

배포 초반 ‘가짜’, ‘유통기한 지난 마스크’ 논란도
“공무원 동원해 주말에도 소분 작업했다”

노원구는 지난 11일 홈페이지와 안전 안내 문자 등을 통해 “이날 저녁부터 주민 1인당 마스크 2장씩을 무료로 나눠드리겠다”고 공지했다. 노원구는 오승록 노원구 재난안전대책본부장 명의의 공지에서 “4인 가족이면 총 8장을 받을 수 있다”며 “통장들이 각 세대를 방문할 계획이니 마스크를 받으시면 가족 중 한 분이 꼭 서명을 해주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재중일 경우 통장 연락처를 문 앞에 부착해 놓으니 연락해 받으시면 된다”면서 “배부는 금요일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기다리시면 순서대로 받으실 수 있으니 불필요한 전화는 자제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노원구는 또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구민들의 불편 해소와 약국 줄서기로 인한 또 다른 감염 위험을 막고, 거동이 힘든 어르신과 장애인 및 임산부 등이 줄서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했다”며 마스크 직접 배부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번에 배부하는 마스크는 약국에서 파는 마스크와 다른 제품도 있으며 색깔도 다양하다”며 “마스크는 모두 공인기관의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코로나 예방에는 지장이 없으니 안심하셔도 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별개로 유아용 마스크 10만장을 어린이집, 유치원, 가정을 통해 유아 1인당 4장씩 배부했다”며 “받지 못한 아동은 동주민센터로 연락바란다”고 전했다.
노원구는 이번 배포를 위해 지난 한 달여간 경기도 양주와 서울 구로, 부산광역시 등 전국의 마스크 공장을 찾아다니며 예산 17억1000만원을 투입, 마스크 100만 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노원구 구민들은 구청의 행정력에 박수를 보냈다. 마스크 한 장 구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일인당 2장씩을 배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양주·부산·밀양’ 등 다니며 마스크 100만 장 확보
차별·품질 논란 일자 ‘당혹’

구민들에 대한 마스크 배포는 지난 12일과 13일에 걸쳐 진행됐다. 구민들은 ‘무료 마스크’가 생긴 것에 대체로 만족해했다. 하지만 마스크 배포 직후 일부 구민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품질이 좋지 않다”거나 “어떤 동네는 좋은 거 주고 우린 싸구려 줬다” 등 ‘차별’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마스크 배부가 끝난 후 한 지역 카페에는 “아무리 랜덤이어도 한 집에 94 하나씩 들어가게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다. 누군 94주고 누군 그냥 일회용을 주느냐”는 불만이 게재됐다. “아이가 초등학생 하나라 그런가 싶어 섭섭했다”는 구민도 있었다. 불만 섞인 목소리는 구청 홈페이지에도 게재됐다. 일부 구민들은 얇은 마스크 사진과 함께 “구청이 생색내기 용으로 싸구려 제품을 배포한 게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 “낙후되고 어르신이 많은 우리 동네에는 얇은 마스크를 주고, 잘 사는 중계동에는 낱개 포장된 마스크를 줬다”는 ‘동네 차별’ 의혹까지 제기됐다. 노원구에 거주하는 박 모 씨는 기자에게 “우리 집은 10개를 받았는데, 1개만 개별 포장된 걸로 받고 9개는 지퍼 백에 들어있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구민 김 모 씨 역시 “(제대로 된 마스크가 아니라) 다 섞였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노원구가 나눠준 마스크가 ‘가짜’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노원구 측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KF인증을 받지 않은 가짜 보건용 마스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입수한 마스크 사진에는 ‘94’라는 숫자만 적혀있을 뿐 ‘KF’ 인증 마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 해당 마스크를 보건용 마스크인 것처럼 속여 팔다 적발된 업체가 있었기에 구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지역 카페에는 “구청에서 나눠준 마스크가 가짜 마스크라고 한다”며 “구청도 사기 당한 게 아니냐”는 구민들의 글이 게재됐다. 또 마스크 포장지 하단에 적힌 날짜가 2020년 2월 19일이라며 유통기한이 지난 마스크를 배포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논란으로 알려졌다. 노원구 측은 해당 마스크가 보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원구는 한국일보에 “처음부터 KF94 마스크가 아닌 주로 덴탈용 마스크와 그 외 일반 마스크들을 구매했다”면서 “가짜나 불량품은 아니고, 시험성적서나 특허권 등도 다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얇은 부직포 마스크가 아닌 두꺼운 마스크의 경우 구매 비율이 전체의 20%가 채 안 돼 주민 전체에게 돌아가는 것이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기한 논란도 사실과 달랐다. 기자가 해당 마스크 판매업체에 문의한 결과 포장지 하단에 표기된 날짜는 유통기한이 아닌 제조일자로 확인됐다. 마스크의 유통기한은 일반적으로 제조일로부터 36개월이다.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논란 여부를 떠나 노원구의 노력에 감사하는 구민도 적지 않았다. 누리꾼 A씨는 “이 시국에 그냥 감사히 쓰려고 한다”며 “무료료 집집마다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노원구청 그 많은걸 구하다니 진짜 대단한 거 같다”고 칭찬했다. 또 다른 누리꾼 B씨 역시 “이렇게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 일반 부직포 마스크도 없어서 못 쓰는 마당에”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주말 잊은’ 공무원들
‘위생’ 문제는 여전

다만 마스크 배포를 위해 주말에도 출근한 공무원들과 소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생 문제는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노원구 소속의 한 공무원은 “주말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마스크 소분 작업을 했다”고 귀띔했다. 소분 작업의 경우 각 주민센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래도 주민센터 등이 전문적인 마스크 포장 업체가 아니다보니 위생상의 문제도 지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자는 이에 대한 노원구청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해당 업무를 담당한 자치안전과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이어 노원구청 소속 타 부서 관계자는 ‘마스크 소분 작업을 위해 주말에 공무원을 동원한 사실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