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현행 준연동형제 선거법은 소수당 배려와 다당제 기반 강화 차원에서 도입됐다. 민주주의 발전의 심화도 기대됐다. 나아가 권력 분산 등 개헌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주요 국정 현안이기도 했다. 국회는 선거법 개정을 위해 거의 1년을 보내야 했다. 개정 선거법은 4+1 협의체를 구성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등 지난한 과정과 극심한 갈등 끝에 간신히 탄생했다.  

범진보 국회 장악 의도, 누더기 법안, 정의당을 위한 제도… 온갖 비판이 쏟아졌다. 통합당은 대놓고 비례 위성정당 창당에 착수했다. 잘못된 선거법 개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선거법 개정 취지는 물론 애써 만든 제도를 정면 거부한 것이다. 간을 보던 민주당도 발 벗고 나섰다. 처음엔 소수당 원내 진입을 돕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검은 속내는 금세 드러났다. 친문을 내세워 사실상 민주당 주도로 비례 위성정당 절차를 밟았다.

민주당·통합당 산하 비례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대부분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행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이다. 이 중 준연동형은 30석, 기존 병립형은 17석이다. TBS의뢰 리얼미터(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501명 대상으로 조사) 여론조사 시뮬레이션 결과 민주당·통합당 산하 비례정당이 40석 이상을 싹쓸이했다. 6석 내외만 정의당, 국민의당 등에 돌아갔다.

한국갤럽 자체조사(지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으로 조사) 여론조사 시뮬레이션 결과도 비슷하다. 민주당 비례정당 20석, 미래한국당 17석 등 37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정당들 몫으론 불과 10석에 그쳤다. 정의당 5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2석 등이었다.

민주당·통합당 산하 비례정당 의석 싹쓸이는 오랜 승자독식 양당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준연동형제 도입으로 선거법을 개정했지만 관행과 국민정서까지 바뀌지는 않은 것이다. 민주당·통합당이 1당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지지층의 결집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거대 양당의 비례의석 독점은 반칙에 가깝다. 소수당 배려와 다당제 기반을 무너뜨린 민주당·통합당의 쿠데타인 셈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정의당이다. 2018년 여름 노회찬 의원의 극단적 선택 이후 정의당은 새롭게 조명 받았다. 작년 여름엔 10% 중후반대 정당투표 지지율을 나타내기도 했다. 준연동형 도입 선거법 개정으로 교섭단체(20석) 확보가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비례의석 싹쓸이 가능성이 커지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민주당·통합당의 비례대표 쿠데타에 표심은 어떻게 나타날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최선의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는 보편적인 ‘참여’의 방법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 선거는 종종 후자 쪽이다. 2016년 총선에선 전국적, 권역별로 기득권을 심판했다. 비례대표에서 민주당·새누리당을, 호남에선 민주당을, 영남에선 새누리당을 심판한 것이다.

이번 총선은 진영 간 대결이 치열하다. 지난 총선과 같은 제3당 약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민주당·통합당의 비례대표 분탕질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 중 한 곳을 선택할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상대적으로 덜 나쁜 정당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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