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집단 감염·투표율 저하 ‘총선 연기’ vs 주류, 정치적 부담 ‘현행 유지’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강타하면서 정치권에서 총선 연기설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당초 총선 연기설이 처음 언급될 당시만 해도 선례가 전무하다며 탄력을 받지 못했으나, 코로나 정국이 이어지면서 최근 ‘총선 연기’ 여론 쪽에도 무게추가 슬그머니 기우는 모양새다. 특히 주목받는 지역은 TK(대구·경북)다. 안 그래도 보수세가 강한 이곳에서 분투하는 여당 측은 코로나19로 표심에 타격을 입을까 우려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와 달리 중앙과 수도권에서는 총선을 예정대로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이 연기될 경우 짊어질 정치적 부담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21대 총선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총선 연기는 실현 가능한 이야기일까. 일요서울이 정치권에서 연기처럼 떠다니는 총선 연기설의 윤곽을 잡아 봤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달 가량 앞둔 19일 부산 연제구청 대회의실에서 연산제2동 사전투표소 감독관 등이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선관위는 이날 관내 사전투표소 예정장소 205곳에서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진행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달 가량 앞둔 지난 19일 부산 연제구청 대회의실에서 연산제2동 사전투표소 감독관 등이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선관위는 이날 관내 사전투표소 예정장소 205곳에서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진행했다. [뉴시스]

-코로나19 정국 전환 위해 5월15일 총선 연기설 대두…TK 與 “들어본 적 없다” 
-전문가 “대통령 결정사항이지만 ‘국회의원 선거’인 만큼 국회와 상의해야”


코로나19로 선거철 풍경이 바뀌었다. 한창 지역 유권자들과 살을 부대껴야 할 후보자들은 마스크를 낀 채 멀찍이서 인사를 건네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치솟을 무렵엔 그마저도 어려웠다. 후보자들은 대면 선거 운동 대신 지역에서 방역 활동을 펼쳤고, 선거사무소에서 유권자들을 만나는 대신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랜선 개소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이목이 쏠리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총선 연기설’이다.

총선 연기는 한국 근현대 정치사(史)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 없었다. 국가가 아무리 어려운 시기일지라도 선거는 치렀다. 그런데도 총선 연기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선 5월15일로 연기하자”…與, “총선 연기 논의 없다”

총선 연기설은 2월 말께부터 언급돼 왔다. 당시는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기승을 부렸을 때다. 확진자 추이가 증가하면서 정치권 전반에서도 하나둘씩 총선 연기설을 거론하기도 했다. 

다만 야당인 미래통합당 측은 총선 연기론에 줄곧 반대 목소리를 내 왔다. 선거가 연기돼 코로나19 사태가 진화될 경우, ‘여당 책임론’이 희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총선 연기론이 뜬구름처럼 정치권을 떠돌며 수그러지는가 싶더니 여당 일각에서 다시금 ‘5월15일 총선 연기론’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실정이다. 

최근 TK에서 분투하는 김부겸 민주당 의원의 한 측근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WHO(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선언했다. 전세계가 이 역병과의 기나긴 싸움에 빠져들고 있다”며 “지금은 대구·경북이 확진자의 90%이지만, 대구·경북이 수그러들 때쯤 인구밀집지역인 수도권에서 사회적 감염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강행했다가 만약 4월16일 이후 곳곳에서 확진자가 속출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려 하느냐”며 “일단 3월23일이 학교 개학날이다. 그때까지 지켜보고, 안 되면 개학과 함께 선거일도 연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20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5월29일까지다. 그러므로 5월15일 연기가 유력할 것으로 본다”라고 부연했다.

당초보다 한 달가량 늦춘 5월15일에 치러진다면 입법부 공백 없이 21대 국회 임기에 돌입할 수 있다는 논지다.

연기설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의 높은 전염성이다. 많은 이들이 투표하기 위해 한날 한 장소에 모이게 될 경우 집단 감염 발생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줄 서서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신분증과 번호표를 주고받는 등 투표 과정에서 감염 소지가 너무나도 크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실현될 경우 여당, 특히 TK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당 인사들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TK은 보수세가 강해 민주당에겐 험지인 곳이다. 또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민주당에게는 뼈아픈 곳인 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와 여당을 향한 민심이 어려워져 표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형국이다.

만약 총선이 연기되고, 그 사이 코로나19가 진화된다면 민심을 다시 추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잘 대처했다’는 호평을 듣게 될 공산도 있다. 

다만 중앙과 수도권 여당의 경우 총선 연기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먼저 총선이 연기된다면 ‘여당에게 불리해서 총선을 연기한다’라는 의혹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외적으로 국가를 향한 신뢰가 저하되고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이 가중될 우려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총선 연기설은) 현재로서는 전혀 논의된 바 없다”며 “세계적인 추이와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나라는 (코로나19가) 잡혀가고 있는 추세”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서도 총선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19로 선거가 연기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러나 총선이 연기되면 그에 따른 많은 문제가 생긴다”라며 “대외적으로도 총선이 연기되면 국가신인도(國家信認度·경제단위로서 한 나라의 신뢰성·장래성 등을 나타내는 지표)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우려되는 투표율 저하와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사전투표일을 5일가량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서울 구로을에 출마하는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은 지난 11일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총선 연기는 아직 판단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라고 총선 연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윤 전 실장은 “물론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느 때가 되면 판단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은 아닌 것 같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TK지역 의원들 역시 총선 연기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의원은 ‘TK를 중심으로 총선 연기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총선은 원래대로 해야 한다”라며 “총선 연기설이 제기됐다고 총선을 연기하면 되겠느냐”라고 강조했다. 

정부, 총선 강행 확률↑…재외투표 일정 그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당초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현행법에 명시돼 있는 것처럼 우리가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현행 공직선거법 196조 1항은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에는 대선과 총선을 대통령이 연기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즉, 총선 연기 여부는 대통령의 결정사항이므로 선관위가 별도 의견을 제출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이들은 유권자 가운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거나 생활치료센터·자택 격리 중인 이들을 대상으로 거처하는 곳에서 투표할 수 있는 투표 방식인 거소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선거일 3일 전 투표소 방역 진행, 투표 참여 유권자 발열 체크, 선관위 투·개표 관리 인력은 전원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세부적인 방법론이나 보완 등이 논의될 뿐 추가 조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역시 기존 선거일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외국민의 경우 국내 유권자보다 빠른 시일에 투표를 치른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21대 총선 재외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재외유권자는 지난 20대 총선 15만4217명보다 11.75% 늘어난 총 17만1959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다음 달 1일부터 6일까지 재외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하는 날짜에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투표소를 방문해 투표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지난 13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재외투표소 변경 안내’라는 공지를 올려 주목받고 있다. 해당 공지는 투표장소가 구(舊) 한국문화원으로 변경됐으며 투표 기간은 4월1일부터 4월6일까지라고 기재한다. 재외투표가 별다른 조정 없이 진행되는 상황에 비춰 봤을 때 국내 투표 역시 당초 알려진 날짜에 진행될 확률이 높다.

또 다수의 유권자가 자신의 감염을 우려,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투표율이 저하될 가능성도 있어 투표를 연기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선거지원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상황 아래 실시된다”며 “유권자들이 감염을 걱정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투표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바 있다.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코로나19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니 (‘투표를 해야 하나’라는) 머뭇거림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는 투표율 저하보다도 투·개표 과정이 제일 걱정되는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은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으로 도입되는 선거다. 이로 인해 개표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총선에는 약 50여 개 정당이 투표용지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당수가 40개를 초과할 경우 개표기계로 확인이 어려워 일일이 수개표(手開票)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개표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인원이 오랜 시간 동안 한곳에 모여 있는 상황도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 투·개표 모든 상황에서 집단모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특히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에게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령층에서 투표율이 저하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투표율을 살펴봤을 때 고령층은 항상 투표율이 높았던 연령층”이라며 “고령층에서 투표율이 크게 낮아질 것 같지는 않다”라고 진단했다.

다만 “고령층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경로당, 마을회관, 복지회관 등으로 한정돼 있다”면서 “현재 코로나19로 모임 등이 어렵다 보니 그들 사이의 여론 형성이나 결집도가 다소 낮아지는 측면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선거 연기 조건은 ▲국민 여론 ▲확진자 추이 ▲국회와 정부 간 논의 등이다.  총선 연기가 대통령 결정사항이긴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인 만큼 국회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풀이다. 다만 총선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향후 코로나19 사태 진행 상황에 따라 총선 연기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총선 연기설’의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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