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름은 가고 서늘한 가을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게 불행 중 다행 아닙니까? “강 형사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다행일 것도 많다.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이런 사건이 제일 골치 아픈 사건이라는 걸 몰라서 지금 그러는 거야?”

추 경감의 불호령이 강 형사의 등 뒤에 내려꽂혔다.
“아이고, 모르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말 같은 소리 그만하고, 피해 사례가 접수된 것 있나?” “아직 없습니다.”
강 형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추 경감 앞으로 왔다. “그런데 이거 발표를 해야지, 그냥 쉬쉬하고 있다가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비밀 수사를 한단 말입니까?”

“내 말도 그거야. 이건 상부에서 찍어누르니 어떻게 할 도리가 있어야지.”
“그게 바로 반장님도 늙으셨다는 증겁니다. 어디 옛날 같아 보세요. 어디 그런 걸 두려워서 말씀 못 하시겠어요?”

“그럼 안 늙은 자네가 발설해 보지그래?”
“헤헤, 저야 앞길이 구만리 같은 몸인데 어떻게….” 강 형사는 실실 웃으며 꼬리를 뺐다.

아닌 게 아니라 걱정이 되는 것이 정상이다. 국내 청량음료 중 가장 잘 팔리는 A사의 음료에 독약을 넣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왔으니, 어떤 피해가 생길지 짐작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집안의 누구나 덜컥 사 먹은 것이 독극물이 든 음료수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A 회사 측에서는 절대로 문제가 없도록 조처를 하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생산 전 공정에 감시조를 투입하고 제품을 최종 단계까지 검사할 터이니 안심하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기는 이런 협박은 한 번 들어주면 그 끝을 모르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불안해진 시민은 당연히 그 음료를 피하게 된다. 그 때문에 신고도 되지 않은 채 협상에 넘어가는 것이 되고 말았다.

“반장님, 사당동에서 사건이 터졌답니다. A사 청량음료를 사 먹은 20대 청년이 약물 중독으로 위험하다는군요.” “뭐야?” 추경감이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A사 측에서는 자기네 제품 대부분이 아닐 거라고 말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 음료에서 수용성 독물이 나왔다는군요. 액체에만 닿으면 그대로 녹아서 사라지게 되는 놈으로 무색무취 무미한 독물이랍니다.”
“어떻게 구할 수 있는 독극물인데?”

“글쎄요? 일반인은 구할 수 없는 독이라고 하던데요. 특수한 연구에만 사용되는 독극물로 수입되면서부터 관리대상에 들어가는 놈이랍니다.”

“그래? 그럼 범인 색출은 뜻밖에 쉬울 수 있겠는데?” 추 경감의 얼굴이 펴졌다.
“예, 그럴 것 같습니다.” “강 형사, 자네가 그 약물을 취급하는 사람들을 조사해 봐. 난 국과수로 가볼 테니까 말이야.”

강 형사가 명령을 받고 총알처럼 뛰어나갔다. 추 경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향했다.

“그 슈퍼의 다른 음료에는 독이 들어 있지 않았단 말이지요?”
추 경감은 분석 결과를 보고 연구원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독은 제품 출하 이후에 주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음료가 슈퍼에 온 것은 협박 전화가 오기 이틀 전입니다. 공장에서 손을 썼다면 당연히 협박 전화도 이틀 전에 왔어야 합니다.”
연구원의 지적은 타당했다. 추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그 슈퍼에 설치된 비디오에 찍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범인의 모습이 잡혔나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구원은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저기 비치는 잠바를 입은 사람을 보십시오. 음료를 손에 쥐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무슨 짓을 했는지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음료를 올려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사고를 당한 청년의 모습을 보시지요.”

연구원은 비디오를 빨리 돌렸다. “저 청년이 잡은 음료는 분명히 아까 잠바를 입은 사내가 돌려놓았던 음료입니다. 슈퍼 주인의 말로는 청년이 계산하고 바로 음료를 따서 마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음료입니다.” 연구원은 캔으로 된 A사의 음료를 가져왔다.
“보시다시피 환경 보호를 위해서 새로 고안된 방식인 음료수 캔입니다. 따개가 떨어지지 않고 밑으로 함몰되게 되어 있지요.”

“그렇군요. 요즘 나오는 음료수 캔은 대부분 이렇게 되어 있지 않나요?”
“아직 옛 방식대로 캔 따개를 사용한 예도 많습니다.” 연구원이 씩 웃었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독이 주입된 것일까요?

“글쎄, 그 점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캔은 완전한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는 것이니 주사기를 꽂을 수도 없으니까요.” 추경감은 캔을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아아,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법인을 잡으면 확실한 것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퀴즈.  범인은 어떤 방식으로 독을 음료에 넣었을까요?

 

[답변 - 초단] 범인은 청량음료의 캔 꼭지 부분에 독약을 묻혀 놓았다. 캔을 따기 위해 꼭지를 밀면 그 부분은 음료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독약이 음료에 용해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