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을 하는 동안에도 수원은 사장과 알제리 상공회의소 회장 옆에 앉아 통역을 했다.
“한국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매년 수만 명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식사를 하면서도 한국 원자력 기술에 대해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수만 명이나?”

알제리 회장은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원자력 발전에 뛰어들었을 때 비판적인 사람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사람은 망한다’고 경고하기도 했었지요.”

“하하하.”
알제리 사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수원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파리대학에 있는 대한항공 902편 강제 착륙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모임 이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Pandora, let it be)’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원도 그 멤버 중 하나였다.

반핵을 주장하며 출발한 사이트였지만 점차 세계적인 환경 운동이나 테러 조직에까지 관심을 넓혀 나갔다. 그러다 보니 종종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올라오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창작성 이야기가 게재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수원은 흥미를 잃고 판도라 사이트에 발길을 끊었다.

만찬이 끝나고도 수원은 업무를 계속 수행해야 했다. 알제리 상공회장이 숙소로 가는 동안 한국 소개를 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 알제리 회장은 워커힐 호텔에 숙소를 정해 놓고 있었다.

“오늘 설명회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원자력 발전, 대단합니다.”
알제리 회장이 감탄을 연발하더니 김종호 사장에게 워커힐 호텔에서 한잔 하자고 제의했다. 김종호 사장은 흔쾌히 응했다. 강병욱 정책처장이 김 사장을 모시고 합석하기로 했다.

호텔 현관 앞에서는 설명회 참석 귀빈들의 차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알제리 회장 차가 맨 앞에 있고, 그 다음에 김종호 사장 차가 서 있었다.
“잠깐, 이동하는 동안 궁금한 것좀 물어봐야겠어요.”

호탕한 기질의 알제리 회장이 자신의 차에 타려다 말고 김 사장 차로 걸어갔다. 한국 소개를 위해 동승하려던 수원은 차 문을 도로 닫고 알제리 회장의 뒤를 따랐다.

“알제리 회장님이 사장님 차로 함께 가고 싶으시답니다.”
수원이 통역하자 김 사장은 껄껄 웃으며 환영했다. 운전석 뒷좌석으로 옮겨 앉으며 알제리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럼, 한 차장이 앞에 앉아 통역하고, 강 처장은 알제리 회장 차로 바꿔 타야겠군.”

김 사장이 손수 자리 정리를 해 주었다.
알제리 회장과 김 사장, 수원을 태운 차는 강 처장이 대신 탄 알제리 회장 차를 앞질러 출발했다. 앞에 서 있던 알제리 회장 차가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그때였다.

- 콰쾅.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다. 강 처장이 탄 차에서 화염이 솟고 있었다. 운전석에서 운전사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뒤에 탔던 강병욱 처장은 소식이 없었다. 뒷좌석에서 폭발물이 터진 듯, 차의 뒷부분에 불길이 맹렬했다.

김 사장 차도 비상 제동했다. 차에 탔던 세 사람은 모두 내려 폭발 사고가 난 알제리 회장 차로 다가갔다.
“빨리 소화기를!”

누군가 소리침과 동시에 호텔 경비원 둘이 소화기를 들고 달려왔다.
“어서 사람부터 구해.” “앰뷸런스 불러.”
“추가 폭발이 있을지 몰라. 모두 물러서.”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자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소리쳤다.
차문이 잘 열리지 않자 경비원들은 깨진 차창을 통해 강병욱 처장을 끌어내었다.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몸이 축 처져 있었다.
“이보게, 강 처장.”
김 사장이 안타깝게 소리쳤다.  [계속]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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