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노동자 7명 사망… 마사회, 방관·제 식구 감싸기로 논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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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지난 9일 故 문중원 기수가 사망한 지 102일 만에 발인이 진행됐다. 문 기수의 사망 사건으로 한국마사회의 부조리, 부산경남경마본부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또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 기수까지 총 7명의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유족 측은 마사회가 죽음을 방관했다며 질책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이 사망할 때까지 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냐는 것이다. 2017년 마필관리사 2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을 때와 2년이 흐른 2019년에도 책임자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故 문중원 기수, 마사회 부조리 유서에 폭로

마사회·민주노총 우여곡절 끝에 합의 마무리

지난해 11월 故 문중원 부산경남(부산경마공원) 기수가 한국마사회의 승부조작 채용비리 등을 유서에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문 기수는 2015년 조교사 자격증을 땄지만 4년 넘게 마방(말을 키우는 곳간)을 배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갓 면허를 딴 다른 기수는 마방을 받게 되면서 의문을 자아냈다. 이는 문 기수가 2018년 받은 조교사 개업심사에 탈락해 마방 배정에 실패했었지만, 당시 마사회 내부위원과 달리 외부위원들에게는 합격점을 받았던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부산경마공원은 2005년 개장 후 문 기수를 포함해 기수 4명과 말 관리사 3명 등 총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7년에는 故 박경근, 이현준 마필관리사가 석 달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다. 두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연달아 목숨을 끊었지만 사내 징계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부산경남경마본부장이었던 최 씨와 부산경마처장 박 씨를 비롯한 총 4명의 관계자가 대기발령을 받았다. 한국마사회 인사규정에 따르면 ‘견책, 근신, 감봉, 정직’ 등을 징계로 규정하고 있지만 당시 대기발령을 받았던 이들은 어느 누구도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았다. 이들은 대기발령이 끝난 후 업무에 복귀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당시 한 사업장에서만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고용노동부는 한국마사회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했다. 이에 이양호 전 회장은 기소유예 처분을, 부산·제주 본부장은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이들은 수사기관으로부터 형사처분을 받았지만 마사회는 별도로 사내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유서 내 실명 거론 ‘김 씨’
책임자에서 가해자로 지목

이번 문 기수의 죽음으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한 매체에 따르면 2017년 두 마필관리사가 자살하자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온 책임자 김 씨가 2년 후 문 기수의 죽음에 자살 가해자로 지목된 것이다. 문 기수는 유서에 마사대부 심사 관련 의혹을 폭로했는데, 유일하게 실명이 적시된 인물이 부산경마처장 자리로 온 김 씨였다.

이번 문 기수의 죽음으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이하 민주노총)은 “정부와 마사회의 의지가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안 공공기관을 감독해야 할 정부가 공기업인 마사회에 대한 감독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마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적 문제보다 개인의 일로 치부했다는 것이 큰 문제로 지목됐다.

마사회의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부분은 기본급을 보장받는 서울경마공원 기수와 마필관리사와 달리 부산경마공원의 경우 순위상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경쟁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렸던 ‘무소불위 마사회 권한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토론회에서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가 비판했던 부분이다.

민주노총 역시 “14년간 반복된 죽음에 대한 근본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책임회피에만 몰두하는 마사회장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젊은 노동자를 절망에 빠뜨린 당사자를 감싸고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며 “마사회장 김낙순은 문중원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부터 즉각 시행하라”고 비판했다.

마사회 측은 “민주노총 요구를 반영해 경쟁성 완화, 기수 소득안정에 중점을 뒀다”며 “제도 개선과 합의서 이행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마사회는 이번 합의서로 조교사 개업심사 투명성 확보를 위해 외부평가위원 수를 내부 위원보다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위원장을 외부위원이 맡음과 동시에 노조 대표 참관을 허용하는 쪽으로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기수 면허갱신제도 보안과 관련해서는 부산경남 기수들의 면허갱신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경마시행규정 시행세칙 중 ‘평균 기승횟수 10% 미만 기수에 갱신을 불허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마사회, 민주노총과 충돌
발인 날에 합의 ‘뒤집기’

한편 지난 9일 문 기수는 숨진 지 102일 만에 영면했다. 순탄하지 않았던 장례과정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 지었지만, 장례 당일까지 민주노총과 한국마사회는 문 기수 죽음을 두고 충돌했었다. 당시 마사회 관계자는 민주노총 시민대책위를 ‘적폐청산위원회’로 존치하기로 한 방침에 대해 항의했고,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쟁위행위 등을 하지 않겠다는 평화선언을 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민주노총 측은 거부 의사를 밝혔고 마사회는 약속했던 ‘사망사고 재발방지 합의서’ 공증절차를 거부하고 자리를 뜨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장례식 이틀 후인 지난 11일 마사회 부산경남경마본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부산지역본부가 합의서 공증을 마쳤다.

합의서에 따르면 ▲3개월 안에 부산·경남 경마 시스템 분석 연구용역 진행 ▲경쟁성 완화·기수 건강권 보호 등 제도 개선 ▲책임자 처벌 등이다. 마사회는 책임자 처벌과 관련해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른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이번 합의서를 통해 마사회는 문 기수 사망사고 책임자가 밝혀질 경우 형사 책임과 별도로 마사회 인사위원회에 면직 등 중징계를 부의해야 한다.

지난 7일 3일장으로 치러진 문 기수의 장례식 첫날, 아내 오은주 씨는 “마사회와의 합의는 정말 쉽지 않은 교섭이었다”며 “남편의 유서 마지막 내용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기수의 죽음으로 한국 마사회의 부조리가 끝날지 여론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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