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의 노다야마(野田山) 공동묘지에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의거’를 통해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를 죽게 하는 등의 쾌거를 이룩한 독립운동가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가 암매장되었던 곳이 있다.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의거’ 후 일본 9사단의 본거지가 있던 가나자와로 압송되어 이곳 육군형무소에서 1932년 12월 19일 총살형을 당함으로써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배용순 여사와 두 아들 종과 담이 있었다. 일본군은 유족의 허락도 없이 윤봉길 의사의 시신을 길바닥에 암매장하였으며, 우리가 독립을 맞이할 때까지 윤봉길 의사는 죽어서도 그들에게 짓밟혔다.

독립 후에 백범 김구 선생의 뜻에 따라 윤봉길 의사 유해 귀환이 추진되었으며, 백방으로 수소문 끝에 가나자와의 현지 교민들이 윤봉길 의사가 암매장된 곳을 발굴하여 그의 유해를 고국으로 귀환시켰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효창공원에 백정기 의사, 이봉창 의사와 함께 나란히 묻혀 있다.

현재 가나자와의 윤봉길 의사가 암매장되었던 곳에는 교민들이 암매장지를 성역화하여 윤봉길 의사의 항일독립운동을 기리고 있으며, 해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아 고인의 뜻을 기리고 있다. 필자도 이곳을 여러 번 참배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지며 윤봉길 의사의 항일독립정신의 숭고한 뜻을 되새겼다.

그런데 윤봉길 의사가 뜬금없이 다가오는 총선의 이슈로 떠올랐다. 윤봉길 의사의 첫째 아들인 윤종 선생의 장녀, 즉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이 미래통합당의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21번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윤주경 후보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당시 진보진영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정희를 비판하는 등 그녀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 공으로 대통령선거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고, 2014년에는 여성 최초로 대한민국 독립기념관장이 되었다.

그랬던 그녀를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대표가 영입하였고, 이번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시키기 위해 미래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겨 공천을 신청했는데, 그녀가 받아 쥔 번호표는 21번, 당선권이라 장담할 수 없는 순번이었던 것이다.

논란이 된 것은 황교안 대표가 영입한 인재를 안정적 당선권이 아닌 순번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다.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인물일 수 있지만, 그녀를 정치권에서 영입하고, 그녀에게 정치적 역할을 부여했던 것은 그녀를 통해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에 대해 예우를 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또 윤봉길 의사를 소환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중층적 목적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을 황교안 대표가 영입한 것은 보수 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기선제압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 공병호는 “공관위에 젊은 분이 많아서 윤 전 관장의 상징성이나 의미, 중요성 등을 조금 간과했던 부분이 있다”며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21번 윤주경 후보는 백지화됐다. 비례대표 순번은 다시 조정 중에 있고, 그녀는 더욱 앞 순위로 배치될 것이 분명하다.

항일독립운동가를 소환한 보수 세력의 선거 전략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보수정권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다. 목숨으로 조국을 구한 윤봉길 의사는 이번 총선에서 어디를 가리킬 것인가? 그가 구한 조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25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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