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취약계층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재난기본소득 도입 요구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빗발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난기본소득을 받아들일 경우 써야 하는 '총알'(재정) 확보 방안이 마땅치 않을 뿐 아니라 재정 투입 대비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나온다.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민간 정책연구기관인 LAB2050의 윤형중 정책팀장이 '재난기본소득 검토해보자'는 내용의 칼럼을 한 언론사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이재웅 쏘카 대표가 지난달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난기본소득'을 한 달간 50만원이라도 지급해 달라"는 글을 쓰면서 논의의 불씨는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됐다.

여권 지방자치단체장들도 합세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8일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 100만원 지급을 요청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에 여러 차례 제안했다. 특히 이 지사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 꼭 실현해 주시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건의하기도 했다.

지자체의 재난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정부가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는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올해 512조3000억원 규모의 '슈퍼 예산'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하면서 나랏빚은 815조5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1.2%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여기에 2차 추경까지 편성할 경우 국가 채무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주장대로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할 경우 총 50조원이 넘게 들어간다. 이는 한 해 국방 예산보다 더 큰 액수다. 이미 정부가 본예산과 추경을 편성하면서 재정 소요를 늘린 만큼 재난기본소득에 들어갈 50조원을 충당할 만한 여유 재원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녹록지 않은 올해 세수 여건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재난기본소득의 효과는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부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라며 "1인당 50만원, 100만원씩 주게 되면 25조~50조원의 돈이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재난기본소득의 취지를 살린 사업들이 코로나19 추경에 반영된 점도 근거로 들었다. 기초수급자와 법정 차상위를 대상으로 총 88만~114만원(3인 가구)을 지급하는 저소득층 소비쿠폰, 만 7세 미만 아동 가구를 대상으로 총 40만원을 지급하는 특별돌봄 쿠폰 등이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들이 재난기본소득의 성격을 띠면서 국민의 생계안정과 소비 촉에 기여할 것으로 봤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재난기본소득은 재원 마련 등 현실성을 고려한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제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울시 청년수당, 경기도 청년 구직 지원금 등 비슷한 수당 및 제도 등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재난기본소득 역시 하나의 복지제도가 추가되는 결과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가 재정부담을 감수하고 시행했을 때 실제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향후 정부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난기본소득은) 작년에 세수확보가 잘 되지 않은 상태서 재정을 더 투입하는 것"이라며 "향후 고스란히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걸 아는 국민들의 소비를 막을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경기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속가능성 여부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재난기본소득의 논의와 주요 쟁점' 보고서를 통해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19와 유사한 재난 발생 상황뿐 아니라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또다시 요구될 수 있는 정책"이라며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국민의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자 일부 지자체에서는 '현금'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전주시는 취약계층 약 5만 명에게 1인당 52만7000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화성시도 매출이 10% 이상 감소한 소상공인에게 1인당 평균 200만원의 긴급생계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강원도도 소상공인과 기초연금수급자 약 30만 명에게 1인당 40만원의 긴급생활안정자금을 주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위소득 100% 이하 서울 시민 약 118만 가구에 최대 50만원을 지급한다. 다만 지자체들도 보편적 지원이 아닌 취약계층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한 지자체에 재정을 보전해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각 지자체가 지역 상황에 맞춰 재난기본소득과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면 정부가 관련 예산을 2차 추경 등을 통해 보존하는 방식이다. 여권 관계자는 "지자체가 취약계층에 예산을 긴급 지원하면 중앙정부가 추후 추경을 통해 예산을 보존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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