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4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되어 가던 때 추미애 법무장관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으로 섬뜩한 말을 토해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부실한 대응으로 “국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숨죽이고 죽어가야 하느냐”며 성토했다. 같은 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박 정권이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질책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지난 2월27일 경북 대구의 74세 남자는 ‘우한(武漢)폐렴(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서도 병원 병상 부족으로 입원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집에서 병세가 악화돼 숨졌다. 그 밖에도 여러 확진 환자들이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이 환자들이야말로 5년 전 문재인·추미애가 박근혜의 메르스 대응에 대해 질책했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는 문재인 정권의 부실한 대응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숨죽이고 죽어”가야 했다.

우한 폐렴으로 18일 현재 8천413명의 확진자가 속출했고 사망자도 91명에 달했다. 5년 전 메르스 때 사망자는 39명으로 그쳤다. 우리 국민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몇 시간씩 줄을 섰다가 한 장도 구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생산·소비·금융 등 모든 경제활동도 마비 상태에 빠졌다. 문 대통령은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질책했으면서도 그동안 자신은 메르스 같은 전염병 재발에 미리 대비해 놓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우한 폐렴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되고 있었는데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서울 방문 추진에 방해될까 두려워 중국 감염원 차단 조치를 미뤘다. 5000만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시진핑 한 사람의 방한이 더 소중했던 모양이다.

문 대통령의 초기 우한 폐렴 대응은 세월호 때와 같이 ‘무능’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의 2월28일 성명은 ’유례가 없는‘ 우한 폐렴 참사로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의 세월호가 되어 침몰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질타했다. 세월호 대응과 같은 무능을 드러냈다는 지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불행한 사건사고와 관련, ‘국가 책임’을 되풀이 강조해 왔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선 눈물을 보이며 “국민을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사명”이라고 했다. 그는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시 화재에 대해서도 “유족들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의 할 일”이라며 국가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인천 영흥도 낙싯배 전복 사고와 관련해서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국가 책임’을 되풀이 강조한 것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박근혜 정권에 있음을 거듭 부각시키기 위한 데 있었다. 동시에 박 정부는 무도한 권력이었고 자신은 눈물지을 정도로 생명 존중의 따뜻한 지도자임을 띄우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보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책임 강조는 결국 부메랑 되어 본인에게 독으로 되돌아와 꽃인다. 문 대통령이 불행한 사태를 막지 못한 건 자신의 말대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문 대통령 책임으로 귀결된다는 데서 그렇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 28일 여·야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선 우한 폐렴 참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마스크 부족난에 대해서만 사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세월호 책임을 혹독히 추궁했으면서도 우한 폐렴 참사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려 한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기본 덕목은 실정(失政)에 대해 솔직히 책임지는 데 있다. 문 대통령에게는 그런 기본 덕목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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