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노동을 일상화하는 유유자적한 삶

지장사에 다시 봄이 돌아 왔다.

아기단풍나무와 갈참나무 숲속 사이에 꽃과 새 잎사귀가 연출하는 신록의 향연이 사찰 경내에 펼쳐지고 벌과 나비가 아름다운 윤무(輪舞)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제현은 소평(召平, 진秦나라가 망한 뒤, 한나라에 출사하지 않은 선비)이 장안성 밖에서 오이를 심어 생계를 꾸려 나간 것처럼, 텃밭에 오이를 심고 가꾸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일일부작 일일불식)’고 말한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승처럼 노동을 일상화하는 삶을 영위한 것이다.

이제현이 희구하는 삶의 방식은 특별한 피세(避世)나 귀불(歸佛)이 아니었다. 소욕(小欲, 탐내지 않는다), 선정(禪定,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는다), 지족(知足, 족할 줄 안다)의 자세로 불도를 배우는데 있었다.

일생을 성리학을 궁구(窮究)하며 살아온 이제현은 ‘불도를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배우는 것이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라는 옛 선사(禪師)의 법문을 읽으며, 사립문을 매일 열고 닫을 필요도 없이 공민왕이 인편을 보내도 지장사 밖으로 출타하지 않았다.

산사에서의 이제현의 하루 일과는 늘 이러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예불, 좌선, 기공으로 경맥(經脈)을 통하게 하여 음양을 조화시킨 후, 새벽 6시엔 차를 마셨다. 다기(茶器)를 매만지며 하루를 구상하기 위함이다. 아침공양을 마치면 산방에서 나와 정갈한 오솔길을 따라 고암산 중턱 어귀까지 산보를 했다.

가을 산 비탈길 돌길 오르노라니(遠上寒山石徑斜)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 두세 집(白雲生處有人家).

수레를 멈춰 앉아 단풍잎 바라보니(停車坐愛楓林晩)

서리 물든 가을 잎 봄꽃보다 더 붉다(霜葉紅於二月花).

목구멍에는 연기가 피고 땀은 물 흐르는 듯.

열 걸음 걷자면 여덟아홉 번 쉬게 되네.

뒤에서 오는 자 앞지름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라

천천히 가도 결국은 산꼭대기에 이르리라.

이제현은 고암산을 오르내리며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지은 <산행(山行)>과 자신의 시 <등곡령(登鵠嶺)>을 읊조리곤 했다. 그가 ‘천천히 가도 결국은 산꼭대기에 이르리라’라고 노래한 것은 ‘서리 물든 가을 잎이 봄꽃보다 더 붉다’는 구절처럼 한없이 너그럽고 원대한 기상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아침햇살 속에 새소리를 들으며 산보를 끝낸 이제현은 싸리비로 마당을 한바탕 소지하고 난 후 글을 썼다. 점심공양 후에는 채소밭을 돌보고 쌓인 낙엽을 치운 후 책을 읽었다. 저녁공양 후에는 낙엽 지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다람쥐들이 겨우살이 준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등잔불 밑에서 좌선을 하였다.

지장사는 유불 교유의 현장이었다. 이제현은 불가에 귀의하고 싶기도 한 심사의 일단을 혼구(混丘, 지장사 창건자) 스님을 흠모하는 시를 통해서 밝혔다.

지난 날 무극노인 혼구가 도안(道顔)으로 승경(勝境, 절경)을 열었네.
짧은 산기슭에 구름뿌리 뭉쳐 있고, 작은 연못엔 산 그림자 비쳐 있네.
나뭇잎 떨어져 오솔길 희미하고, 솔바람 불어와 초당이 서늘하네.
늙어가며 불문(佛門)을 엿보게 되어, 자꾸만 맹렬하게 공부 못함이 부끄럽네.

여름이 무르익어 가는 어느 날.

회암사의 승려 심선사로부터 서찰이 왔다. 이제현은 옛 친구를 그리며 시 한수를 읊었다.

산중에 친구가 있어, 나에게 편지를 보내 왔네.
신선 배우는 묘법이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나그네이리.
부귀영화를 흠모하는 것 아니지만, 목석과 더불어 살 수는 없네.
그런 일은 술 마시는 것만 못하니, 사생(死生)은 자연에 맡기리라.

 

친구 심선사가 ‘산중으로 와서 같이 신선을 배우자’고 하였지만, 이제현은 ‘인간 세상과 절연하고 목석과 더불어 살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그렇다고 ‘속세에 남아 있으려는 것은 부귀영화를 탐해서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지장사의 주지인 자혜스님은 키가 크고 이마가 넓으며 용모가 순박하고 말이 곧았다. 그는 이제현과 법문을 논하고 함께 산보하는 다정한 말동무였다.

낙엽지는 가을 어느 날 늦은 오후. 이제현은 자혜 스님과 함께 낙엽을 밟으며 지장사 뜰 주변을 산보했다. 두 사람간의 대화는 스스럼이 없었다.

이제현은 이렇게 물었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산보를 합니까? 무슨 좋은 점이 있습니까?”

자혜 스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옛 속담에 ‘식사 후 백보를 걸으면 아흔아홉 살을 살고, 식사 전에 백보를 걸으면 백아흔 살을 산다’고 했습니다. 시중 어른께서는 이렇게 산보를 즐기시고 신체가 건강하시니 백수를 누릴 것입니다.”

잠시 후. 이제현은 고암산에 걸린 검붉은 저녁노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불쑥 말을 건넸다.

“일찍이 송나라 소강절(邵康節)은 ‘명예를 구하던 젊은 시절에는 공자를 사모했는데(求名小日慕宣聖 구명소일모선성), 죽음이 두려워진 노년에는 석가모니와 친해지더라(死老年親釋迦 파사노년친석가)’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스님, 나도 소강절을 닮아가는 것만 같구려.”

자혜 스님은 이에 화답했다.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속에 과거인 어제와 미래인 내일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의상 스님의 <법성계(法性戒)>에서는 이러한 이치를 ‘한 생각이 곧 무량 겁(一念卽時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십이인연설에도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의 설명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인과관계를 맺고 현재와 미래가 인과관계를 맺어 두 겹의 인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원인이 됩니다. 시중 어른께서는 공자와 석가모니의 사귐을 실천해왔고 유·불뿐만 아니라 도교의 이치까지도 그 근본은 같되 현상만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계시기에 소강절의 소회가 새삼스럽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제현은 다시 물었다.

“자혜 스님, 만약 해가 저물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소이까? 아마 이 세상은 더없이 혼란해지겠지요. 저녁의 낙조가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듯 사람 또한 마음을 비운다면 고암산의 낙조처럼 평화로울 수 있겠지요.”

이제현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잘 알고 있는 자혜 스님은 이에 화답했다.

“하늘과 땅이 나와 뿌리가 같고(天地與我同根 천지여아동근), 만물이 나와 한 몸인 것(萬物與我一體 만물여아일체)처럼 아끼고 나누는 자비의 실천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입니다.”

이윽고 이제현은 고려 사직을 걱정하는 근심어린 한탄을 내뱉었다.  

“일체중생은 평등하고 존귀한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自他不二 자타불이)입니다. 이것이 불가(佛家)는 물론 세상의 이치인데…….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감싸주고 나누어 주는 상생정신이 고려 조정에는 필요한데…….”

이제현은 성리학자로서 현실주의자였다. 따라서 출처(出處)에 대한 생각은 유가의 처세방법인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가고, 도가 없으면 숨어 지내라(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천하유도즉견 무도즉은)’는 가르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승에서의 시련과 좌절이 있다면 독서와 음주로써 달랠 뿐, 생사문제는 하늘에 맡기는 천명론에 순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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