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우리가 맡을 일이 아니지요?”
강 형사가 얼이 빠져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디스켓이 지워진 문제를 해결하라니 컴퓨터엔 깡통인 강 형사가 넋이 나갈 수밖에.

“자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추 경감이 나무라며 말했다.
“엄연한 살인 사건인데 왜 우리가 맡을 일이 아니야?” “그렇긴 해도 범인은 디스켓을 망가뜨린 위인이라면서요?”

“그런 것 같다는 거지” “제가 컴퓨터를 뭘 압니까? 이건 우리 소관이 아니네요” “이 친구가, 지금 농담하나?” 추 경감이 화를 벌컥 냈다. “다시 한 번 상황이나 정리해 봐” 추 경감의 정색에 강 형사가 찔끔해서 사건을 설명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중소기업인 가나다 물산, 사건 일시는 3월15일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은 근무 시간이 12시까지여서 대부분 직원들은 퇴근을 한 상태였다. 그날 이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피살된 총무과의 정 대리와 경리과의 미스 김, 역시 총무과의 사원 오을호, 비서실의 미스 황 이렇게 네 명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있었던 장소도 제각기였다. 정 대리는 자재 창고에 있었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 부서에 있었다. 자재 창고는 상고에서 떨어진 독립 가옥이었기 때문에 정대리가 피살될 때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정 대리의 사체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총무과의 오을호였다.

오을호는 자기 볼일을 마치고 나가던 길에 직속상관인 정 대리에게 인사를 하려고 들렀다가 정 대리가 창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살펴보니 뒤통수를 뭔가로 얻어맞고 숨져 있었다.

일단 사건은 외부에서 침입한 도둑이 정 대리를 해치고 달아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정문의 수위에 따르면 외부에서 출입한 사람이 없는 데다가 대낮에 창고를 털려고 한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아 내부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추리가 성립되었다. 문제는 정 대리가 쥐고 있던 디스켓에서 비롯되었다.

3.5인치 컴퓨터 디스켓을 정 대리는 손에 꼭 쥐고 죽었는데 범인은 그 디스켓을 빼앗아 가려고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정대리가 필사적으로 그 디스켓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범인은 디스켓을 가져가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 디스켓의 표면에는 아무런 단서가 될 글이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정 대리가 최후의 순간에도 디스켓을 놓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디스켓에는 뭔가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 그 디스켓의 내용은 모두 지워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컴퓨터상에서 어떤 조작으로 지운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지운 것이라 복구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현장에 있던 다른 세 사람은 모두 추 경감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그곳에 잡혀 있었다. 오을호는 서류 가방을 들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고, 미스 김은 장부를 정리하던 터라 손에 컴퓨터 디스켓을 여러 장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비서실의 미스 황은 특이하게 오프너(병따개)를 들고 있어서 강 형사의 눈길을 끌었다.

“웬 오프너입니까” “어머”
미스 황은 자신도 그걸 들고 있는 것을 그때야 알아챘다. “비서실에 있는 냉장고를 열다가 나왔거든요. 거기에 붙여 놓는 오프너예요”
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을호의 서류 가방을 열어 보라고 했다. 서류들과 더불어 자명종 시계가 하나 들어 있었다.

“이 시계는 뭡니까?” “아, 예, 제가 워낙 지각대장이어서요. 오늘 하나 구판장에서 샀습니다.”
오을호가 웃으며 말했다. 강 형사는 눈길을 미스 김에게 돌렸다.
“디스켓을 갖고 있는데…. 정 대리의 디스켓도 경리과 것입니까?”

“아니에요. 우리 것은 일련 번호가 매겨져 있어요.” 미스 김은 펄쩍 뛰며 부인했다.
강 형사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있던 위치와 시간에 대해 조사를 했지만, 누구든 살해할 수 있다는 막연한 결론밖에 얻을 수 없었다.
추 경감은 시경 안의 컴퓨터 전문가라 불리는 한 형사에게 찾아가 자문했다.

“이 디스켓은 조그만 데다가 꽤 단단하게 보이는데 왜 고장이 난 거야?”
“글쎄요?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말씀드릴 수 있나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중에 답이 있을 거야. 입장을 뒤집어 놓고 생각하자고. 자네가 범인으로 그 디스켓을 탈취해야 하는데 꺼내 갈 수는 없다. 그러면 그 디스켓을 사용 불능으로 만들어야겠지? 그런데 이 디스켓은 상당히 단단해서 부러지지는 않는단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나?”
“그렇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한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은 뭐야?” “그건 자석을 이용하는 겁니다. 강력한 자석으로 디스켓을 문질러 버리면 십중팔구 그 디스켓은 사용할 수 없게 되지요. 본래 디스켓이라는 게 자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추 경감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래! 그렇다면 범인이 누군지 알겠군.”
 
퀴즈. 정 대리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요? 

 

[답변-초단] 범인인 비서실의 미스 황. 미스 황은 세 여자 중 유일하게 자석과 관계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냉장고에 자석의 힘으로 붙여 놓는 오프너(병따개)를 가지고 있었던 것.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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