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역사와 인연은 질기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킨다. 2012년 대선에서 당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박근혜 캠프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주관했다. 당시 범진보는 역동성이 넘쳐났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경쟁을 펼치면서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은 것이다. 자칫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보수’에 갇힐 수도 있는 위기였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중도를 견인했다.

2016년 총선에선 정반대였다. 당시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범 진보는 큰 위기를 맞았다. 그해 1월 민주당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다.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하고 정당투표에서 민주당에 앞섰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민주당은 김종인 체제를 통해 국민의당 확장을 막아내고 중도를 지켜낸 것이다. 2016년 총선 민주당 선전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샤이보수는 여론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개표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숨은 표다. 따라서 샤이보수는 사실은 보수층이 아니다. 평상시에 무당층, 중도, 유연한 보수나 진보에 흩어져 있다가 보수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이다. 2012년 김 위원장은 이들을 새누리당으로 이끈 것이다. 반대로 2016년 총선에서는 샤이진보를 깨운 것이다. 김 대표는 이들을 민주당 쪽으로 이끌었다.

이제 총선까지는 보름 남짓 남았다. 황교안 대표가 전면에 나서 당과 선거를 이끌어 왔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다. 황 대표는 종로에서 이낙연 전 총리와 혈투를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차기 선호도에서도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공천에서 배제된 인사들의 무소속 출마도 의석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김종인 상임선대위원장 원톱 체제가 출범했다.

이제 김 위원장은 한때 도왔던 문 대통령 측과 최후의 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샤이보수를 투표장으로 이끄는 것이다. 대략 두 기관 여론조사로 현재의 샤이보수 규모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무당층이나 지역구 후보를 공천하지 않은 국민의당 지지층, 기타 범보수 정당 지지층을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2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은 27%이다. 역대 선거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많다. 국민의당 지지층(4%)도 타깃이 될 수 있다. 더하면 31%로 작지 않은 규모다(여론조사와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26일 발표된 리얼미터 기준으로 하면 규모는 다소 줄어든다. 무당층 7.8%, 국민의당 3.6%, 자유공화당 2.6%, 친박신당 1.6% 등으로 합치면 15.6% 정도이다. 통합당은 대략 15.6%∼31%에 이르는 유권자를 공략할 수 있는 셈이다. 여론조사마다 천차만별이지만 현재 민주당과 통합당의 격차는 주로 10%대 초중반이다. 만약 무당층 등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면 통합당은 민주당과 팽팽한 승부를 겨룰 수 있다.

문제는 여론의 속성이다. 겉으로 보면 여론은 급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 탄핵 이후 통합당은 나름대로 혁신과 쇄신, 공천 물갈이를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 일각의 평가다. 김 위원장도 여야를 넘나든지 수 차례다. 신선감이나 파괴력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샤이보수를 깨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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