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이들 세 명의 정치인을 한국정치사에서는 3김으로 부른다. 1960년대에 시작된 ‘3김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김종필이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하면서 끝났고, 물리적으로는 2년 전 김종필이 사망하면서 끝났다. 이들은 생전에 정치9단으로 불렸고, 사후에는 정치신계(政治神界)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이들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10년 동안 우리 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사람이 있다. 황교안 대표의 삼고초려에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나서게 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그이다. 그의 정치이력은 준 정치9단으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가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승리를 이끌게 된다면, 3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정치9단으로 불리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종인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의 손자이다. 김병로 선생은 항일독립운동가들에게 무료변론을 하는 등 원조 인권변호사이자 이승만, 박정희 독재에 저항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김종인이 80세가 넘어서까지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정치적 식견도 평가를 받아서이겠지만, 할아버지의 후광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종인은 1981년 민주정의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첫 금배지를 단 이후,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금배지를 달 때까지 모두 다섯 번을 전국구와 비례대표로만 국회의원이 된 우리 의정사(議政史)에 남는 기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은 2011년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2012년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왔다. 201620대 총선에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으로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승리를 이끌었다. 2017년 대선에서는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안철수를 도왔고, 이번에는 궁지에 몰린 황교안 대표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 사람이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인지, 자신이 한국정치를 언제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임을 과시하고 싶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단한 노익장(老益壯)이다. 그러나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아닌 것 같다.

당초 황교안 대표는 김종인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김종인 자신이 미래통합당의 공천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면서 없던 일이 됐었다. 그런데 공천 막판에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배신 공천논란, 미래통합당의 뒤집기 공천논란 등으로 인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게 되었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종인은 빠트린 코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빠트린 코만 걷어내어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지, 코를 밥에 비벼 흔적을 없애는 모험을 감행할 것인지, 지금까지의 김종인이라면 후자 쪽을 선택할 것 같은데 그것이 미래통합당의 선거승리를 담보할 것 같지는 않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그의 정치이력이다. 그가 유일하게 지역구에 출마한 선거는 198813대 총선으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 선거구에 나섰지만 2위로 낙선했었다. 그를 꺾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로 당시 만 35세였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칼자루를 쥔 김종인은 이해찬을 공천에서 배제시키면서 소심한 복수를 했지만, 이해찬은 무소속 출마하여 살아 돌아왔고, 그는 당에서 쫓겨났다. 이제 김종인이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유가 선명해졌다. 그가 상대해야 할 사람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당대표이기 때문이었다. 삼세번이라고 했지만 그의 의지대로 선거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노익장과 노추(老醜)의 갈림길에 김종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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