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은 그야말로 자중지란에 빠진다.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이회창 씨의 두 아들에 대한 병역 기피 의혹이 제기되자 이 후보의 지지율은 급강하한다. 

이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던 이인제 씨가 이회창 후보로는 당선이 힘들다며 대체자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대체자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지율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대체자 선출이 무산되자 이 씨는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가 됐다. 

선거 결과 새천년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40.3%를 득표해 이회창 후보를 1.6%(40여 만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인제 씨는 19.2% 득표율에 그쳤다. 

대체자는 정치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를 교체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선발로 나온 선수가 제 몫을 하지 못하면 감독은 그 선수를 빼고 대체 선수를 투입한다. 

문제는 성공률이다. 교체된 선수가 더 잘 해서 경기를 역전시킬 수 있으나, 반대로 역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야구에서는 대타제도가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 선수를 교체해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실패 확률도 만만치 않다. 

감독은 교체 선수를 내 보냈을 때의 성공 확률이 높은 선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를 두고 흔히들 ‘용병술’이라고 한다. 

성공하면 감독과 선수는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역적이 된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대선 운동 기간 내내 공화당 지도부가 주도한 교체설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버틴 후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키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20 미국 대선이 11월로 다가온 가운데 민주당 일각에서 ‘선수’교체설‘이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버니 샌더스 등 지금의 후보들로는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매체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트럼프에 대한 모든 악재들을 잠재웠다며 국민들의 눈이 오직 트럼프 대통령에만 쏠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매일 백악관에서 2시간 여 동안 기자회견을 열며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폭스TV를 비롯해 CNN, MSNBC 등은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매일 중계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블룸버그 통신 등 미국 유력 언론 매체들도 호불호를 떠나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일 보도하고 있다.  

반면, 바이든과 샌더스의 존재감은 거의 미미할 정도다. TV에 나오는 경우가 가물에 콩나듯 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결정짓는 프라이머리 선거마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연기되는 등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는 게 이들 매체의 분석이다.

이들은 특히 바이든 후보를 벤치에 앉혀야 한다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소환해 민주당 후보를 다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자로는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를 비롯해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힐러리 클린턴 등을 꼽고 있다. 

쿠오모 주지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뉴욕주에서 창궐하자 공격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등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대체자로 떠오르고 있다. 

펠로시 하원의장도 트럼프와 각을 세우며 탄핵 정국을 이끌어 미국 민주당원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심어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클린턴은 4년 전 대선에서 어이없는 패배를 당해 절치부심하고 있어 언제든지 대체자로 나설 주자고 꼽히고 있다. 

민주당 진영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중간에 교체될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선거운동으로 역이용하고 있는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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