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3700여 명의 한촌 ... 2000년대 들어 진북일반산업단지 건설
- 4.3삼진의거 역사 품은 호국의 고장

[일요서울ㅣ창원 이형균 기자] ‘첫인상은 3초 만에 결정된다’, ‘첫인상은 소통의 시작이다’, ‘한 번 각인된 첫인상은 바뀌지 않는다’ 등등 첫인상에 관한 말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을 정리하는 한 마디가 있다.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이 그렇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비범한 역사를 품고 있다.

4.3삼진의거 당시 숨진 팔의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팔의사창의탑 @ 창원시 제공
4.3삼진의거 당시 숨진 팔의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팔의사창의탑 @ 창원시 제공

진북면은 진동ㆍ진전면과 함께 ‘삼진’이라 불린다. 마산합포구의 서쪽 지역으로, 예로부터 농사를 많이 지어왔다. 쌀과 보리농사가 성하며 파프리카, 토마토, 국화 등도 재배된다. 산을 병풍 삼아 아늑한 마을이 조성돼 있고, 그 앞으로는 들판이 펼쳐진 곳이 많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진북일반산업단지도 생겼다. 1970~19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의 급격한 팽창으로 추가 부지가 필요해지면서 추진된 것이다. 현재 진북일반산업단지에는 전기‧전자, 조립금속, 자동차, 출판업 등과 관련된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의림사 삼층석탑. 석탑의 조성양식이 통일신라 후기의 것이라 실제 창건 시기를 짐작케 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 @ 창원시 제공
의림사 삼층석탑. 석탑의 조성양식이 통일신라 후기의 것이라 실제 창건 시기를 짐작케 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 @ 창원시 제공

이처럼 진북면은 농업과 공업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굳건한 호국의 역사가 깔려 있다. 바로 4.3삼진의거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창원 지역에서도 3~4월 두 달에 걸쳐 모두 13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중 4.3삼진의거는 진전‧진동‧진북면 주민들이 연합한 만세 시위로, 무려 8000명의 주민들이 모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당시 시위대 행렬은 사동교에서 일제 군경과 맞닥뜨렸다. 이 충돌로 8명이 숨지고 22명이 부상 당했는데, 현장에서 숨진 8의사를 기리는 창의탑이 1963년 옛 사동교 근처에 세워졌다.

의림사에 있는 250년 수령의 모과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제77호) @ 창원시 제공
의림사에 있는 250년 수령의 모과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제77호) @ 창원시 제공

진북면에는 더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곳도 있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진 의림사다. 창건 당시 이름은 ‘봉국사’였으나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이곳에 머물자 의병들이 숲처럼 모여들었다고 해 의림사(義林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을 겪으며 옛 절은 소실되고 근래에 새로 지어졌는데, 절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과 250년 된 모과나무가 오랜 역사를 대신 전해주고 있다.

이처럼 진북면은 겉보기에 평범하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수난의 시대에 저항한 선조들의 용기와 호국 정신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곳이다. 4.3삼진의거 기념일을 맞아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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