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해자 혼재···텔레그램 등으로 유도한 뒤 범행도

지난 2016년 3월17일 서울 중랑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열린 ‘강남 성매매 알선 조직 총책 등 113명 검거 브리핑’에서 공개된 휴대전화(증거물). [뉴시스]
채팅 사이트‧앱 등에서 성매매 알선에 사용된 휴대전화를 경찰이 공개한 모습.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일명 ‘n번방’ 사태가 터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암암리에 성행했던 불법 성문화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특히 채팅 애플리케이션(이하 채팅 앱)의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언론의 지적이 지속되면서 채팅 앱 개발자들은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채팅 앱 내에서 미성년자 조건만남, 협박 등의 문제는 끊이지 않고, 모니터링을 피하기 위해 텔레그램, 카카오톡, 라인 등 다른 서비스로 유도한 뒤 불법 성문화를 이어가는 실정이다. 일요서울은 현재까지도 만연한 ‘채팅 앱 청소년 성범죄’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경찰 관계자 “채팅 앱, 법적 규제 기준 없어···강력 범죄 창구로 변해”

채팅 앱이 청소년 성범죄 피해의 온상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보람 10대여성상담센터 상담사는 1일 CBC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채팅 앱들은) 회원가입이나 로그인 없이도 아이디 생성이 가능하고 익명성이 특징이어서, 성매매 창구로 자주 이용되고 있는 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래 들어 거의 조건만남이나 성매매를 위한 용도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부터 채팅 앱을 통한 조건만남 등 청소년 성범죄는 암암리에 성행해왔다. 최근에도 랜덤채팅‧익명 채팅 앱으로 조건만남을 빙자해 남성들의 돈을 뜯어낸 청소년들이 경찰에 잇따라 붙잡혔다.

경기 동두천에서는 10대 남학생 6명, 여학생 1명이 지난달 23일 동두천시의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을 폭행하고 흉기로 협박하며 10만 원을 빼앗았다.

범인들은 동네 친구 관계로, 범행 당일 여학생이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20대 남성을 “조건만남 성매매를 한다”며 모텔 방으로 유인했다.

둘이 모텔로 들어가자 남학생들은 여학생을 찾는다며 모텔에 몰려 들어가 소란을 피운 뒤, 20대 남성을 밖으로 유인해 각목과 흉기로 위협하며 돈을 뺏은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에서도 같은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달 18일 조건만남을 미끼로 40대 남성을 유인해 금품을 빼앗은 일당이 붙잡혔다. 지난해 12월 북구의 한 모텔에서도 30대 남성을 조건만남으로 유인한 일당이 최근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무작위 만남을 주선하는 랜덤 채팅 앱에 대한 법적 규제 기준이 없고, 자율 규제에 맡겨져 있다. 모니터링으로만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성 착취 또는 강력 범죄의 창구로 변한 앱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피해 발생”

채팅 앱을 통한 청소년 성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혼재돼 있는 실정이다. 10대들이 돈을 갈취하기 위해 조건만남을 미끼로 성인 남성에게 접근하는 경우, 성매매 또는 성착취를 하려는 남성들이 청소년에게 접근해 텔레그램, 카카오톡, 라인 등으로 서비스 이동을 유도한 뒤 신체 사진을 요구하는 경우 등이다.

김 상담사는 “보통 청소년들이 또래 친구를 만나거나 고민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상대를 찾기 위해서 채팅 앱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인 남성들이 이러한 친구들에게 ‘용돈 필요해?’라거나 ‘스폰 구해?’, ‘조건해?’, ‘가슴 보여줘’, ‘내 거 볼래?’ 등 그런 식으로 아동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혹은) 랜덤 채팅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카카오톡 라인, 텔레그램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한 뒤, 그 안에서 아이들의 개인 정보, 신체 사진을 요구한다”면서 “이후 갑자기 친절했던 사람이 돌변을 하면서 ‘네가 나한테 준 셀카 사진을 유포시키겠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협박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앱을 통해 현실에서 만나서 성행위를 하자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고, 사이버 성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피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동은 성매매‧성착취를 하기 위한 성인 남성들이 시도하거나, 남성들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10대들도 악용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로 떠오른다.

성인인증 절차 ‘부실’

기자는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채팅 앱을 설치해 봤다. 그동안 여러 지적이 잇따른 탓인지 채팅 앱들은 공지를 통해 “성과 관련한 내용(음란채팅, 노출 사진, 성적인 농담, 성 관련 질문 등), 돈과 관련한 내용(돈 빌림, 알바, 용돈, 조건만남 등), 불쾌감을 주는 행위, 기타 부적절한 내용 작성 시 사용 정지될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설치한 일부 채팅 앱들은 명확한 성인인증 절차도 없었다. ‘미성년자입니다’, ‘성인입니다’를 확인하는 문구는 나왔지만, 구체적인 인증 절차가 없다 보니 미성년자도 성인으로 둔갑할 수 있는 실정이다.

채팅 앱 운영진의 모니터링 강화 조치 때문에 ‘조건만남’ 등의 직접적인 문구는 없는 모양새다. 그러나 불법적인 성문화를 이어가기 위한 뉘앙스의 소개 글은 한 둘이 아니었다.

한 채팅 앱의 구글 플레이 스토어 ‘평점 및 리뷰’에 올라온 글. [구글 플레이 스토어 화면 캡처]
한 채팅 앱의 구글 플레이 스토어 ‘평점 및 리뷰’에 올라온 글. [구글 플레이 스토어 화면 캡처]

실제 일부 채팅 앱의 구글 플레이 스토어 ‘평점 및 리뷰’를 살펴보면 “여기 캡처나 도용 좀 어떻게 해달라. 저번에 어떤 친구도 여기서 프사 캡처당해서 음란 사이트 관리자 같은 사람이 ‘사이트에 올린다’고 협박해 친구가 엄청 울었다. 또 유명한 사람 도용한 뒤 이상한 짓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신고 버튼 좀 만들어달라”, “랜덤 채팅이 변태들만 노는 곳도 아닌데 자기들이 왜 이상하냐며 따지는 사람이 많다”, “앱은 좋은데 캡처 좀 없애달라. 사진 캡처해서 도용하거나 어디에 퍼뜨리는 데 이것 좀 생각해달라”, “피 땀 흘려 만든 프로그램을 잠재적 범죄자들로 인해 인식이 나빠지고 썩혀지는 꼴을 계속 두고만 볼 것인가”, “좋은 앱은 맞다. 근데 텔레그램 대화하자는 여성분 있으면 절대 가지 마시고, 설령 가더라도 다운로드하라는 유도에 절대 넘어가지 말아라”, “남성분들 요즘 모든 앱에서 유행하는 사기 조심하라. 영상통화로 서로 놀자고 하면서 녹화 후 파일 설치 유도, 연락처 탈취해서 협박, 성매매 미끼로 돈 뜯는 형식 등 조심하라” 등의 글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 2016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67%의 청소년이 이러한 채팅 앱을 창구로 성범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청소년이 채팅 앱을 통해 성범죄를 주도하는 경우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용자 인증을 제대로 하는 앱이 5%도 안 된다. 정확한 인증 과정을 만들고, 각종 범죄로 이어질 경우 앱 폐쇄‧정지 등 강력한 행정 처분과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청소년 유해 매체물 등록과 관련한 법 개정도 검토해야 한다. 온라인 그루밍을 상시 감시하는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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