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희 겸임교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세계가 빗장을 걸어 잠그고 공장을 셧다운하니 수출 길도 닫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제 수출의존도는 주요 20국(G20) 중 네덜란드, 독일에 이어 3위로 37.5%에 이른다. 수입을 포함한 무역의존도는 국내총생산액(GDP)의 70%에 달한다. 무역이 우리 산업의 생명줄인데 코로나19 사태가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판이다.

코로나19 초기 방역 대처와 탈원전 에너지전환정책 시행에는 아주 중요한 닮은 점이 있다. 전문가를 무시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 울타리 식구들의 정치적 이념, 자기도취와 오만으로 사태를 키운 것이다. 적절하게 대처할 기회를 놓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오기 전에 전문가 의견을 듣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가를 떠받치는 세 개의 축이 있다. 산업계, 학계, 연구계가 그것이다. 세 축이 굳건하게 버티고 조화롭게 협력할 때 국가는 안정되고 지속 발전이 가능해진다. 세 축 중 하나만 부실해도 국가는 기울어지고 무너지게 된다. 정치는 이들 축을 튼튼하게 만들고 협력시키는 경영일 뿐이다. 세 축 중 기관차는 산업계이다. 산업계 활동이 왕성해야 전문 인력을 양성·공급하는 학계의 기능이, 산업계가 필요한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연구계의 기능이 활발하게 작동된다.

산업이 붕괴되면 국가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에 세계는 코로나19 환경에서 산업 살리기에 국력을 쏟아 붓고 있다. 미국은 GDP의 10%에 이르는 250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한다. 프랑스는 필요 시 대기업의 국유화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국가를 견인하는 기관차인 산업계를 살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국내 원전 건설이 없어지고 수출시장도 어두운 상태에서 우리 원전산업계는 가본 적이 없는 붕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기업도 지쳐 무기력해졌고 전문가는 떠나고 있다. 그 여파로 대학의 원자력공학 관련 전공이 없어지고 지원하는 학생도 격감했다. 연구계는 포장만 그럴싸한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불 꺼진 연구실은 코로나19 사태를 벗어난다 해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1979년 미국 쓰리마일섬(TMI)원전 2호기 사고 이후 원자력산업의 종주국인 미국은 원전산업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신규 원전 건설은 사라졌고, 대학의 전문학과는 폐지되었으며, 연구계의 연구비는 줄었다. 그날 이후 30여 년 만에 보글(Vogtle) 원전 건설이 결정되었을 때 미국 내 원전설비 공급 산업망은 없었다. 그때 두산중공업이 보글 원전 3,4호기의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했다. 

원전 주기기 설계·제작사인 두산중공업은 미국 원전 산업계가 붕괴된 이후 미국의 기존 10여기 원전에 교체용 증기발생기, 가압기, 원자로헤드, 제어봉 구동설비 등 핵심설비를 공급했다. 웨스팅하우스의 신규 원전인 중국 AP1000 원전 2기(샨먼 1호기, 하이양 1호기)에도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했다. 우리의 기술을 앞지를 세계적인 기술공급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기술과 실력이 세계 최고임을 원전운영사와 원전공급사가 인정한 것이다.

그런 원전 주기기 산업계의 세계 리더인 두산중공업이 무너지고 있다. 당장은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백지화된 후유증이다. 45세 이상 2600명에 명예퇴직을 독려하고, 이어 휴업까지 검토하고 있단다. 3000여 개 협력 중소기업 10만여 명의 일자리도 사라지게 되었다. 두산중공업의 붕괴는 1979년 TMI 원전사고 이후 전개된 미국 원전산업계 붕괴의 복사판이다. 세계 원전산업계를 지배했던 웨스팅하우스사는 집을 잃고 떠도는 고난의 방랑자 신세다. 각고의 노력으로 이룬 우리의 원전 설계·제작·건설·운영 기술자립 40년 역사와 기업들은 방랑자 신세는커녕 대한민국 실록에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질 운명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운 세계경제 환경에서 국가를 살리는 길이다. 원전건설은 설계-제작-건설-운영(유지·보수 포함)으로 연결되는 산업생태계를 살리고 수많은 기업도 살린다. 수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싼 에너지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며, 효자기술로 국가경쟁력을 키워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 에너지정책이 가야 하는 길이다. 이념과 자기 도취의 오만은 건강한 산업과 국가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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