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출마한 어느 여당 후보는 최근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고 한다. 나름 여권의 실력자인 데다 지역구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꼽히는 곳이라 당선이 무난하다고 봤는데 암초를 만났다. 최근에 지역구 경계 부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했는데 기대와 달리 입주민들의 민심이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어서다.
 
입주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비대위를 결성하고 단지 끄트머리의 지하를 지나는 도로의 터널 공사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후보 쪽의 설명에 따르면 주민들이 문제 삼는 도로는 이미 다른 구간 공사를 마쳐 가는 중이기에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파트 분양가 책정 과정에서도 이 도로나 주변 혐오시설의 존재까지 반영해서 분양가도 낮게 책정되었다.

입주한 지 1년 만에 2억 원이 올랐지만 주민들은 인근 단지보다 아파트 시세가 낮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자신들이 사는 단지가 시세가 낮은 이유를 입주 전에 부랴부랴 공사를 마친 혐오시설과 이미 착공한 도로가 단지의 지하를 지나기 때문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젊은층이 대거 입주하면서 낙승을 기대했던 후보자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다.

후보 쪽에서 “도로나 혐오시설이나 이미 다 알고 입주한 것 아니냐”고 물으면 주민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들의 반대도 이해 가는 측면이 있어서 입주 이후에도 그 지역에 도서관이나 공원을 비롯한 여러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받고 돌아서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대로 공사를 막자니 막대한 정부예산을 투입해서 건설 중인 도로를 끊어버리는 꼴이 되고, 주민들을 외면하자니 선거에서 잃을 표가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후보는 “내가 정치를 안 하면 안 했지 어떻게 저런 요구를...”이라고 한다지만 선거운동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모든 후보들이 다 공약을 내놓고 있고, 그 공약들을 파헤쳐 보면 주된 공약은 대부분 부동산과 관련한 공약이다. 집값 올려주는 공약을 다들 하나씩 내놓고 유권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선거가 끝나고 나면 부동산에 투자할 사람들이 가장 바빠질 것 같다. 

한국정치에서 부동산 공약이 노골적으로 선거판을 뒤흔든 것은 2008년 치러진 총선부터였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뉴타운 열풍을 일으켰다. 전통적 야권 지지자들도 뉴타운 열풍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집값 올려준다는 공약에 욕망에 사로잡힌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분출되어 마땅한 다른 가치들에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세상에 욕망 없는 사람은 없고, 집값 오른다는 데 반기지 않을 사람도 드물다. 이런 유권자의 욕망을 비난하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도 아니다. 문제는 유권자가 아닌 후보자와 정당에 있다. 많은 유권자들이 욕망으로 몰려갈 때 이를 방조하거나 편승하지 않고 욕망을 넘어서는 가치를 제시할 수는 없을까. 앞서 말했던 후보자가 그런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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