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살실업 한 회장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자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고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구두쇠 짓을 했으며 이웃을 괴롭혔는가를 잘 말해 준다.
 
그는 증기목욕탕에서 쓰러진 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독방에 입원한 채 한 회장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닌 사람은 병문안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 회장이 입원 1주일 만에 병실에서 죽었다. 그것도 병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사고사였다.

“그러니까 이 냉장고 위에 있는 텔레비전이 떨어지면서 한 회장의 이마를 때렸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말인가요?”

사고 조사를 하러 온 추 경감이 그날 당번 간호사였던 맹형자에게 두 번 세 번 같은 질문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냉장고 위에 얹혀 있던 텔레비전이 혼자 떨어져 환자를 죽게 했다는 것이 도무지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병실은 한 회장 혼자 쓰는 독실이고 한 회장이 누워 있는 머리맡에는 커다란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병실에 아무도 없는 사이 그 텔레비전이 혼자 떨어지면서 한 회장의 이마를 쳤다는 것이다.

“사고는 누가 처음 발견했습니까?” 추 경감이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주름투성이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띠며 맹 간호사를 보고 다시 물었다.
“면회 오셨던 조 회장님이 발견했어요. 그분이 병실에 들어가시자마자 비명을 지르기에 제가 들어가 보았더니 글쎄…. 아이, 끔찍해!”

그녀는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조 회장이 누구지?”
추 경감이 강 형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한 회장과는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친구일 뿐 아니라 사업 경쟁자라고 하더군요. 조 회장은 한 회장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평소 농 반 진 반으로 네놈은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늘 말했다더군요.”

미리 초동 수사를 마친 강 형사가 요령 있게 설명했다. “죽일 만한 동기가 있다고 봐야겠군…. 그러니까 사람은 평소에 덕을 쌓아야 하는 거야. 한 사람의 평가는 관뚜껑을 덮은 뒤에 내려진다고 하지 않아?”
추 경감이 줄곧 강 형사를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반장님도 참! 왜 저만 갖고 그러세요?”

강 형사가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면 조 회장이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텔레비전으로 한 회장의 이마를 내려친 뒤 거짓말한 것 아니야?”
추 경감이 이번에는 강 형사와 맹 간호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요….”

두 사람 다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추 경감은 대답을 들을 생각도 않고 텔레비전이 얹혀 있던 냉장고 위를 살폈다. 거기에는 텔레비전을 받쳤던 것으로 보이는 책 두 권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은 냉장고의 뒷부분에 놓여 있어서 그 위에 텔레비전을 놓는다면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텔레비전의 앞부분을 받쳤던 물건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텔레비전을 앞으로 기울이지게 놓아 그것이 미끄러져 내려오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텔레비전을 들어다 냉장고 위에 놓아보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앞으로 기울어져 떨어지기 때문에 얹을 수가 없었다.
“조 회장이 오기 전에는 이 방에 누가 다녀갔습니까?”
추 경감이 맹 간호사를 보고 물었다. “정 여사란 분이 왔다 갔습니다. 사고가 나기 두 시간쯤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나갈 때 병실 안을 보았는데 별일이 없었습니다”

“정 여사?”
추 경감이 다시 강 형사를 보았다. “한 회장의 전처인데…. 말이 전처지 쫓겨난 거나 진배없는 여자랍니다. 한 회장이 돈 좀 벌게 되자 무식하다고 버린 여자죠.”

“자네 말조심해. 버린 여자라니…. 쯧쯧쯧...”
추 경감은 강 형사에게 핀잔을 준 뒤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그 정 여사란 여자를 데려와. 여자에게 몹쓸 짓을 하면 무사하지 못해.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 여자의 복수심이야. 그 여자가 범인이야.”
“예? 하지만 그 여자가 나간 뒤 한참 있다가 한 회장이 죽었단 말입니다.”
강 형사가 터무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 형사 노릇 몇 년 했어?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추 경감이 강 형사를 때리는 시늉까지 하면서 나무랐다. 그의 행동은 때로 어린애다운 데가 있었다.

 
퀴즈. 그 여자는 어떻게 텔레비전이 떨어지게 장치를 했을까요?

 

[답변-초단] 냉장고가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정여사는 텔레비전의 앞부분 받침대로 얼음을 사용했다. 두 시간쯤 지나 얼음이 녹으니까 텔레비전이 앞으로 넘어진 것이다. 얼음이 녹고 나면 증거가 없다.

 

[작가 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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