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보호구역 사고 영상에 네티즌 “운전자가 피해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자전거-차량 충돌 사고 [사진=보배드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자전거-차량 충돌 사고 [사진=보배드림]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달 25일, 일명 ‘민식이 법’이 시행됐다. 민식이 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구성돼 있다. 민식이 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김민식 군 사고 이후 김 군의 어머니가 게시한 국민청원에 수십만 명이 동의하자 발의된 법안이다. 해당 법안은 발의 22일 만인 2019년 12월 1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된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식이 법이 ‘악법’이라는 지적과 함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식이 법 개정 청원 30만 명 돌파
“내비게이션 ‘스쿨존 회피 기능’ 도입”

민식이 법이 비판받는 이유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명시된 강력한 처벌 수위와 모호한 처벌 기준에 있다. 민식이 법 제5조의13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어린이가 상해를 입을 경우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 받는다. 물론 민식이 법의 적용 대상에는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라는 단서가 붙었다.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운전하다 스쿨존에서 사고가 나도 가중 처벌 받는다’는 주장은 ‘이론상으로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충분히 안전에 유의하며 운전하더라도 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책임을지지 않아도 될 확률은 현저히 낮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년에 발생하는 4~5만 여 건의 보행자 교통사고 중 보행자 과실로 처리되는 사고는 0.00002%에 불과하다. 1000만 건의 보행자 교통사고 가운데 2건만 보행자 과실일 뿐, 나머지 999만9998건은 운전자 과실로 처리된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행하더라도 보행자 사고 발생 시 ‘전방주시의무 태만’을 적용해 운전자 과실을 잡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26일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민식이 법 위반) 무죄 안 나온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다친 아이의 부모가 경찰에 사건을 접수할 경우 사실상 500만원을 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 28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온 영상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자전거를 탄 어린이와 충돌한 사고 당시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 속 운전자는 1차선 도로에서 직진하던 중, 반대편 차선 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전거와 충돌했다. 누가 봐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인데다, 어린이가 자전거를 타고 있던 점 때문에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한 변호사는 이 사고 역시 민식이 법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봤다. 그는 “구의동 어린이 보호구역 자전거 사고는 ‘민식이 법’ 적용대상이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운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내비게이션 업체는 ‘스쿨존 회피 경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전자지도 소프트웨어 업체 맵퍼스는 최근 아틀란 내비게이션에 ‘스쿨존 회피 경로 탐색’ 기능을 추가했다. 기능을 추가한 뒤 아틀란 내비게이션의 사용량은 추가 직전보다 6배 이상 증가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또 해당 법을 개정해달라는 청원도 등장했다.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한다’는 글은 3일 현재 30만60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개정안은 형벌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며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피할 수 없었음에도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아이들의 돌발행동을 운전자가 무조건 예방하고 조심하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부당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민적 공분을 사며 ‘악법’이라는 오명을 쓴 민식이 법이 개정을 통해 합리적인 법안으로 탈바꿈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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