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코로나 정국에 특별한 정치나 정책 이슈가 없는 탓인지 4.15 총선 운동 첫날부터 정당 대표나 후보들의 말 몇 마디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예전 같은 대규모 장외 홍보전마저 없으니 언론에서는 자연스럽게 선거관련 보도는 중진이나 신인, 국민 관심 여부를 떠나서 ‘막말 실언’ 논란에 집중되고 있다. 여나 야나 득점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너의 실수가 곧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대 선거전에서 말 한마디가 승패를 결정했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가장 극적인(?) 실언으로 선거를 망친 사례는 2006년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후보(22번)의 노인폄하 발언이다. 당시 노무현대통령 탄핵역풍으로 46.8%(한나라당 15.8%)였던 지지율이 정동영 의원의 ‘말 한마디’로 42.4%로 떨어졌다. 특히 정동영 의원은 다음해에 여권의 대선후보가 되지만 ‘노인폄하’ 낙인은 사라지지 않아 이후 정치경로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02년 16대 대선 후보 유세도중 한 여학교를 방문, 학생들에게 친근감 표시로  ‘빠순이’ 농담을 했다가 크게 후회하게 된다. 정치권은 물론 온라인에서 ‘서민들의 용어도 모르는 사람’ ‘억지 위장쇼’ 등 비난이 거세져 상대적으로 서민 풍모가 넘쳐났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차이만 부각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지역감정을 일으켜 선거에 영향을 준 막말 원조격인 초원복국 사건 역시 유명하다. 1992년 12월 11일 부산지역 주요 기관장들이 부산 ‘초원복국’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 당선을 위해 ‘우리가 남인가’라며 지역감정을 자극하자는 회의 내용을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에서 도청해 폭로했다. 그러나 부산지역의 지역감정을 더 자극하는 역풍을 맞아 당시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의 지지세가 꺽이는 결정적인 악재가 됐다. 

 2007년 17대 대선을 불과 몇일 남지 않은 12월 2일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합당추진 중이던 국민중심당을 두고 "구멍가게 지분 갖고 장사하고 다니면서 걸맞은 값을 불러야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면 장사가 되겠느냐"고 비난했다. 이에 격노한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명박 후보가 큰 격차로 승리했지만 집권 이후 충청권 민심을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반대로 말실수를 가장해 지역감정을 자극, 성공한 것이 1995년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의 ‘충청도 핫바지론’이다. 김종필 전 총재는 김영삼 정권 출범 후 민주자유당 대표를 지냈으나 민주계와의 갈등 끝에 19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자민련 창당할 때만해도 성공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김종필 전 총재가 1995년 대전광역시에서 열린 자민련 창당 대회에서 충청남도 도민들에게 "충청도가 핫바지입니까!"라는 이른바 '핫바지론'을 내세워 지역감정을 이용해 충청 표심을 집결시켰다. 그러나 김종필 전 총재가 겨냥했던 ‘충청 핫바지론’의 진원지는 당시 김윤환 정무장관이었다. 자민련과의 연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대구 경북이 핫바지냐”고 한 발언을 대전 한 언론사가 ’김 장관, 충청도 핫바지 발언 물의‘ 제목으로 보도한 것이다. 

김종필 전 총재는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 충남, 충북, 강원 4곳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을 당선시켰으며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약 역대 최다 의석 3당으로 올라섰고 15대 대선에서 일명 'DJP 연합’으로 공동정권을 창출하게 된다.

 이제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 역시 다르지 않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선거총괄선대위원장이 당 대표인 황교안 종로구 후보와 인천 정승연 인천연수갑 후보, 민경욱 인천연수을 후보 등을 만났다.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후보들의 ‘입’ 단속을 당부했다는 전언이다. 박형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후보들의 막말 특별경계령을 내렸다. 유승민 의원도 “후보들이 제발 민심 역행하는 실수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당 안팎에서는 ‘황교안 리스크’를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박빙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 통합당 후보들은 특히 그렇다. 황교안 대표는 초민감 사건인  'n번방 호기심‘ 발언으로 발칵 뒤집었다. 지난 2일에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갖고 '키 작은 사람' 폄하 논란을 일으켰다. 또 코로나방역 성공 요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 의료보험‘ 이라고 주장해 아연실색케 했다. 

황교안 대표 실언 파문에 비하면  ’인천 촌동네‘ ’교도소 무상급식‘ 정도는 실수축에도 끼지 못한다. 대전 한 후보진영 관계자는 ”황 대표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박빙 지역에서는 당 대표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아느냐“고 말했다. 새삼 홍준표 대구수성을 무소속 후보의 ’종로 선거에 나 집중하라‘는 충고가 달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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