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중공업·유통 등…겨울 지나 ‘혹한기’ 만난 기업

코로나19 확산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명동의 주말 오후 모습. [일요서울]
코로나19 확산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명동의 주말 오후 모습. [일요서울]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국내 산업계 각처에서 “못 살겠다” 비명이 나오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경기침체 극복을 위한 새해의 각오를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 꺾었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가 거래처와 국내 기업들의 현지 공장 문까지 닫게 만들면서 산업계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손실 우려에 잠 못 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큰소리 치고 나선 금융지원을 두고 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發 금융지원, 빚만 늘어난 대출 지원
산업계 “관리비·인건비 등 실질적인 지원 필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국내 산업계는 제각각 아우성이지만 정작 이를 위한 대응 방안으로 나온 금융지원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의 경우 선박 인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코로나19 관련 수익성이 악화된 발주처가 선박 인도를 미루기라도 하면 조선사들은 수주량이 많은 순대로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에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상품을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만일 선박의 인도가 미뤄질 경우, 이를 보관하고 있는 동안 관리비와 인건비 등의 추가적인 비용이 들게 된다. 

조선업, 선박인도 미루면 ‘손해’

이와 관련 현대미포조선은 지난해 12월 5일 수주한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에 대한 선박 인도일을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오는 2021년 9월 30일로 예정된 인도일이 5개월 뒤로 밀린 2022년 2월 28일로 조정됐다. 

특히 2척 가운데 1척의 선박에 대해서는 발주처가 계약을 취소할 수 도 있는 상황이다. 선박 건조에 투자한 선사가 선박을 인도받아도 글로벌 위기에 따른 손해 우려가 커지면서 시일을 연기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당시 국내 조선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는 유가 폭락 사태를 맞으면서 인도에 어려움을 겪어 5~6조 원의 손해를 보기도 했다.  조선업계에서 금융위기를 회상하며 인건비 등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자동차업계도 상황이 녹록치 못하다. 자동차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연합회 산하 ‘코로나19 기업애로지원센터’가 완성차 업체 5곳과 1·2차 부품업체 5곳 등 10곳에 대한 2차 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동성 악화 우려로 임금 삭감과 국내공장 휴업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생산차질 불가피
 
현대기아차는 미국, 인도, 유럽 공장이 코로나19 여파로 가동 중단에 들어갔고, 한국GM에 차량을 제공하고 있는 GM본사 공장과 르노삼성차의 프랑스 본사 공장도 셧다운에 들어가면서 대규모 생산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는 완성차 업체들이 80∼98%에 이르는 국내 공장 가동으로 버티는 상황이라며 만들어도 판매가 안 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내수는 차치하고라도 완성차 업체 판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출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한국GM·르노삼성·쌍용자동차 등 국내 5개 완성차 업체의 3월 총판매 대수는 64만7412대로, 전년 동월 대비 14.5% 감소했다. 해외 판매는 총 49만 6387대로 전년 대비 19.8% 급감했다.

특히 현대차는 총 30만 8503대로 20.9% 급락했다. 해외 판매 실적만 놓고 보면 26.2% 하락했다. 이런 감소폭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의 최대치다. 기아차는 국내 판매는 6.4% 하락에 그쳤으나 해외 판매는 11.2% 하락했다.

한국GM은 내수 11.8%, 해외 20.8% 하락했고 쌍용차는 내수가 31.2% 줄고, 해외 판매는 4.6% 하락했다. 다만 르노삼성차는 ‘XM3’ 신차 효과에 힘입어 내수는 9.5% 성장했으나 해외 판매는 57.4% 하락했다.

이에 자동차 업계는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붕괴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간주하고 긴급운영자금 지원, 기업어음 인수 지원, 법인세부가가치세 및 개별소비세 납부 유예 또는 감면 등을 통한 유동성 지원과 대출 상환 관련 이자 유예와 해외 자산 담보 인정 등을 요구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중소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공공기관 구매력을 집중하고 글로벌 수요급감을 내수 진작을 통해 대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100조원 금융 패키지에 의한 기업 유동성 공급이 현장에서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현장 지도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님 없어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 

국내 화장품 업계도 타격이 크다. 가맹점들의 경우, 점주들이 운영하고 있으므로 오프라인 매장의 특성상 사회적 거리두기 등에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이 손님이 없는 상태에서 운영하기에는 인건비 등의 부담이 있어서 정부가 제안한 4월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을 하고 있다. 

한 점주는 “말이 좋아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이지, 반나절 동안 방문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어떻게 매장을 정상 운영하겠느냐”며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화장품 기업들의 직영 매장 같은 경우는 안전과 코로나19 예방을 하면서 운영을 하고는 있으나, 손님들은 확실히 줄었다. 다만 회사 브랜드 이미지 등의 이유로 고객이 없어도 매장은 오픈돼 있는 상태지만 매출에 타격이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A기업 관계자는 “조만간 올해 1분기 집계가 되면 알 수 있겠으나, 전년 동기대비 확실히 줄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면세 쪽이 비중도 꽤 크기 때문에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삭제된 1분기라고 할 정도로 운영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소상공인을 포함한 대중소기업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금융지원 방안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현장 지원 시스템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연 1.5% 초저금리 소상공인 대출 지원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살피고 나아가 개선방안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기업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은 지난 2일부터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 연 1.5% 금리로 신용대출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정부 금융지원, 누굴 위한 대출인가

취재진이 찾아간 명동에 위치하고 있는 B은행 영업점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 소상공인들은 정부 지원 대출을 받아내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우선 관련 서류를 준비해 신용보증기금 등 관련 재단의 보증을 받아야 한다. 보증서를 들고 은행에 와도 유사한 절차가 기다린다. 

B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저금리 대출 상품이 소상공인 모두에게 적용되면 좋겠지만, 이것도 결국 신용등급을 따져서 지원되는 것”이라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소점포 사장님들은 신용등급이 부족한 분들이 많아서 때로는 안타까운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손님이 줄어들면서 월세와 고정비 지출이 걱정되는 마음 급한 소상공인들로서는 정부와 은행권이 마련한 수천억 원의 지원 금액만 믿고 은행에 들렀다가 자격이 안 된다는 이유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한 소상공인은 “정부가 어마어마한 돈을 풀었다고 하는데 그 돈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며 “대출받아 가게를 열어 운영해 왔는데, 은행에 가니 정부지원 대출이 (이미 받은)대출금액 때문에 나는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 하소연 했다. 

조선업, 자동차, 항공, 유통을 막론하고 산업계 전 분야가 희망퇴직, 무급·유급 휴가, 유급휴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인력을 줄여나가고 있는 상황에 정부가 지원한다는 대출 상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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