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재조명] '북한에서 50년'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격정 토로’
[밀착취재-재조명] '북한에서 50년'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격정 토로’
  • 조주형 기자
  • 입력 2020-04-05 17:22
  • 승인 2020.04.06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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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대화 통한 남북관계 개선’?…정작 국군 포로 귀환 문제는 ‘찬물’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기자 양반, 이번 총선 어떻게 될 것 같소?” 무려 47년 동안 북한에서 ‘적대(敵對)’ 계급으로 핍박받다 지난 2000년 8월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국군귀환 용사 유영복(90) 씨가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기자는 지난해 9월6일 유 씨의 경기도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반세기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유 씨는 기자에게 “이번 4.15 총선의 결과가 향후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유 씨와의 인터뷰를 소개하지 못했는데, 올해 6.25전쟁 70주기를 맞이한 데다 총선까지 불과 열흘 밖에 남지 않아 다시금 조명해 봤다.

 

6.25전쟁 68주년인 25일 강원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발굴된 유해를 유골함에 넣어 이송하고 있다. 2018.06.25. [뉴시스]
6.25전쟁 68주년인 25일 강원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발굴된 유해를 유골함에 넣어 이송하고 있다. 2018.06.25. [뉴시스]

 

-“부모·가족·나라 지키려고 했는데 반세기 포로 생활…스스로 탈북(脫北)했다”
-“북한 체제 따라가려는 사람들 안타까워…나라 명운은 하늘에 달린 것인가”


북한의 기습적인 도발로 전(全) 국토가 파괴되고 수백만 명의 사상(死傷)자가 발생한 6.25전쟁이 벌써 70주기를 맞이했지만, 어느덧 우리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모양새다. 특히 나라를 지키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일명 ‘국군포로’의 귀환에 대해 어떤 움직임조차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공공연하게 들려오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구호가 무슨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요서울은 통일부를 통해 ‘2014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입수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6·25전쟁 정전 당시 약 8만 2000명의 한국군이 실종된 것으로 추산된다. 5만 명에서 7만 명 정도가 국군포로(prisoners of war: POW)로 잡혀가 북한이나 북한 동맹국에 억류되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적시돼 있다. 또한 ‘북한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을 지휘한 사령관 펑더화이(팽덕회·彭德懷)는 같은 회담에서 중국군이 전쟁에 참전해 4만 명의 한국 국군포로를 데려갔다고 밝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정전의 즉각적 결과로 1953년 4월과 1954년 1월 사이 한국으로 송환된 국군포로는 8343명에 불과하다. 이는 김일성·펑더화이가 스탈린에게 보고한 수치의 차이를 감안할 때, 조사위원회는 최소 5만 명의 한국 국군포로가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았다고 파악한다”며 “이들 중 약 500명의 생존자들이 아직 북한에 억류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난 1994년 조창호 중위의 귀환을 시작으로 1997년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년 국군포로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닌, 탈북(脫北) 등 자력에 의해 국내로 귀환했다. 국내 귀환한 국군용사는 2014년 4월 기준 80명이지만 현재 약 20여 명만이 생존해 있다.

‘국군귀환용사회’의 장(長)인 유영복(90) 씨는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 1953년 6월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포로가 된 유 씨를 두고 국군은 한 해 뒤인 1954년 9월 화랑무공훈장까지 수여하는 등 전사(戰死) 처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들은 ‘북한 내무성 건설대원’으로 혹독하게 핍박받았다.

이후 47년만인 지난 2000년 스스로 북한을 탈출해 그해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단장께 ‘유영복 9395049 전역을 신고합니다’라는 보고를 하는 순간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당시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국군 귀환 용사 유영복 씨.
국군 귀환 용사 유영복 씨.

 

- 정부가 지난 2017년 북한과 ‘9.19 남북 군사합의’ 등의 대북 정책을 추진한지 1년인데, 어떻게 봤는가.
▲ 기자도 지금 정부가 앞장서서 ‘무엇인가는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지 않나. 군사 분계선 일대에서 전사(戰死)자 유해를 찾아오겠다는 둥 자기들 딴에는 남북 관계를 좋게 풀어가려고 한다는데, 살아 있는 국군포로 1명도 나서서 데리고 오지 못하면서...처음에는 국가가 발 벗고 나서서 하겠다고 하더니. 그나마 과거에는 국가 핵심 업무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아주 쏙 들어갔다.

 
- ‘국군 포로 귀환’ 문제를 두고 정부에서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는가.
▲ 처음에는 국가가 나서서 하겠다면서 보내달라고 북한에 요구했었다. 지난 2000년 당시 북한에서 우리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그때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했을 당시에 한국 대통령이 북한에서 아예 국군 용사들 말씀도 없으셨고. 솔직히 서신 교환만이라도 협상할 줄 알았는데...한 마디 말씀도 없으셨다. 우리나라 대통령조차 말씀이 없는데 누가 날 찾겠소. 그래서 바로 탈북(脫北)했다. 그해 8월에 우리나라에 왔고, 생애 끝자락에 계신 아버지를 만났고, 이후 가족들을 탈출시켰다. 당시 정부의 협조를 통해서 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 정부 태도를 두고 국군 귀환 용사들은 어떻게 보는가.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니 해결은커녕 북한에 부담이 되는지 아예 말조차 없다. 앞서 정부에선 그나마 말이라도 했다. 지금까지 22명이 살아있다며 주소까지 나왔는데 하나도 못 데리고 오지 않았는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누구 하나 발 벗고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데다 국가와 국방부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국가가 부담스러워 하는데 복잡하게 해결도 못하는 걸 가지고 나서는 건... 지금쯤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한 전우(戰友)들이 몇 명이나 남아 있겠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


-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에서는 국군 포로가 수만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던데.
▲ 내가 오기 전인 지난 1994년 故 조창호 중위가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그렇게 어렵사리 고생해서 넘어와 조국 땅을 밟았는데...북한에서는 한 명도 없다고 왜곡 선전(宣傳)했다. 그들은 우리들을 광산에 500~600명씩 투입했는데, 그 때 그들은 우리를 ‘해방 전사’라면서 ‘내무성 건설대, 7xx, 8xx 부대’라는 위장명칭으로 광산 현장에 투입했다. 애초에 ‘포로’가 아니었고, 훗날 교환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공민(公民)’인 것처럼 위장 흡수했다. 그러니 그들 말마따나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포로’는 없는 것이고, 교환조차 할 의도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진 월북(越北)했다고도 했다.

북한은 1951년 당시 10만 명을 넘게 국군 포로들을 잡았다고 선전(宣傳)했다. 그런데 우리는 8300여 명만 돌아왔지 않은가. 북한에서도 주민들 상대로 핵심분자, 동요분자, 적대분자로 구분한다. 하물며 국군이었던 우리는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탄압 당하고 감시받았다. 도대체 누가 ‘아오이 탄광에서 일하고 싶어 자진 월북’하겠는가. 그 곳에서는 그저 목숨을 끊지 못해 사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국회에서 증언했었다. 적진에 남고 싶어하는 군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걸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는 ‘반공포로’라고 들어봤나? 전쟁 중 포로 교환 때 오지 않았으니 자진 월북했다는 논리인데, 평생 탄압 받으며 탄광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저 부모형제, 가족을 지키려고, 나라를 지키려고 간 거지...

 
- 국군 포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 북한에서 아예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저 없다고만 한다. 과거에 10만 명을 넘게 잡았다고 선전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없다고 하는데, 그런 억지 주장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북 정책 기조에 따라 이제 이들을 고향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흉금을 털어놓고 담판을 하는 등의 가능성 여부도 생각해 봤다.

현재 최전방에서 경계선 무너뜨리고 유해 찾겠다고 하는데, 아직 살아 있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국군 포로들, 이들도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정부가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기조로 나선 것 같은데, 이들에 대해 논의하면 마치 ‘남북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들도 나라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인데, 왜 데려오겠다고 선뜻 나서지 않는가. 비록 명이 다해 세상을 떠난 분들의 유해라도 모셔와야지, 그런 것이라도 안하고 있는데 누가 나서서 싸우겠는가. 싸우다 포로가 되면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질 않고 있는데...

 
- 근원적인 문제는 결국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천착하는 젊은이들도 있겠지만, 결국 다들 자기 생활도 바쁘고 해서 이 문제까지 도통 관심을 줄 만큼 여유롭지 않은 것 같다. 정치인들도 어려운데, 내 밥벌이도 힘든 젊은이들은 오죽이나 더 하겠는가. 국가가 나서지 않고 있는 이 문제를 내가 혼자 나서서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러나 살아있는 국군포로 문제는 대한민국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나라가 무책임하면 누가 용감하게 나서겠는가. 기자도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은가. 강대하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분위기는 좀 나는 것 같은데, 어느 누구도 나서지는 않고 있다. 그러니 다들 가만히 있는 것이고. 기자 양반, 어떡하면 좋겠소?


 
국군 귀환 용사 유영복 씨.
국군 귀환 용사 유영복 씨.

 

- 현재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어떤 노력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 정부 행사에 초청을 받아 갔던 적이 있었는데, 일명 ‘문재인 상품’을 받았다. 근데 받은 건 받은 거고, 잘했다고 했겠는가. 북한에서 반세기 살아본 사람이 외부인보다 더 잘 아는데, 결국 지금 모습이 북한에 매달려 해결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북한으로부터 욕먹고 미국으로부터 외면 받는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혼란스럽다.

‘조용히 하는 게 더 좋다’라는 그런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관심 없는 것 같은데, 이번 문재인 정권은 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남북관계가 해결되면 저절로 해결 된다’는 식이다. 과거 독일과 이스라엘처럼 사과를 받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정작 6.25전쟁은 북한이 일으켜서 그 피해는 우리가 고스란히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나 숙이고 쌀이나 보내주면서 욕이나 듣고 있다니...

그런데 6.25전쟁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됐지 않은가. ‘남침’이라는 단어를 빼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자기들 딴에는 ‘北 김정은’이 비(非)핵화 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확고하다는 것인지...불확실하다고 본다. ‘北 김정은’이 요구하는 바는 결국 주한미군도 철수하고 국군도 해체되는 것 아닌가.

 
- ‘북한 비(非)핵화’와 ‘9.19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한 미군이 대한민국에서 철수하면, 그때 가선 북한이 ‘생각은 해볼 수도’ 있겠지만 설사 그런다고 해도 결코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요구가 모두 관철되면 이미 그 때에는 무장 해제 돼 아무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북한에서 간신히 연명하다가 조국으로 왔는데, 이만하면 거의 지상낙원이나 다름없다. 이곳에는 바로 '자유(自由)'가 있다. 이번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부 사람들이 북한 체제가 나쁜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시각에 이어 선전(宣傳)까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살아본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북한 체제를 따라가려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나라의 명운은 하늘이 정한다는데...더 떠들어봐야 뭐하겠는가. 그렇지 않소, 기자 양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사(戰死)자 명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사(戰死)자 명비.

 

 

조주형 기자 chamsae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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