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지장사를 찾은 세 손님

세월은 나는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다.
동안거를 끝낸 지 달포가 지났을까. 추위가 아주 가신 것은 아니었으나 살에 닿는 바람에는 부드러운 기운이 완연하였다.

‘우수(雨水)·경칩(驚蟄)이 지나고 춘분(春分)이 엊그제 같더니, 오늘이 벌써 청명(淸明) 이로구나……’

방문을 열고 대웅전 앞마당을 향해 몸을 돌려 앉은 이제현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마침 봄의 전령사 매화와 영춘화는 이미 피었다 지고, 며칠 전 내린 봄비로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개하고 나비떼처럼 낙화하는 산벚꽃들의 위용으로 봄의 서기가 완연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춘삼월 어느 날 오후.

때 아닌 폭설로 발목이 잠기던 산사(山寺)의 눈도 거의 녹을 무렵이었다. 그 때 반가운 손님 셋이 지장사를 찾았다.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이색과 그의 제자 정몽주, 그리고 이제현의 큰아들 이서종이었다. 이제현을 개경까지 모셔가기 위해 날을 잡아 멀리 철원까지 온 것이다. 적막하기만 하던 깊은 산속의 절간은 이들의 방문으로 아연 활기를 띠었다.

이제현은 세 사람의 절을 받고 난 후 아쉬움에 젖은 말을 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서 허전하네.”

스승의 말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색이 이에 화답했다.

“대륙의 정세를 잘 알고 있는 최영 장군이 귀양을 가고 없으니 안타깝사옵니다.”

“…… 포은은 중국의 새 주인으로 등장할 주원장을 알고 있겠지.”

“예, 주원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 그를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주원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네. 그는 평민으로 몸을 일으켜 머지않아 중국 대륙을 통일할 걸로 보이네. 앞으로 원·명 교체기의 힘의 공백을 잘 활용하여 발해 멸망(926년)이래 상실한 요동지역을 수복해야 하네. 하늘의 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일세.”

“예, 저는 스승님(이색)을 도와 시중 어르신께서 꿈꿨고 힘써왔던 고려의 온건개혁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사옵니다.”

“배움의 과정을 문(聞), 사(思), 수(修)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하네. 어떤 가르침을 듣고, 그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렇게 실천하고 닦아 가는 것이 배움의 과정이네. 포은은 이런 배움의 의미를 잘 알고 있겠지?”

“예. 지성으로 노력하겠사옵니다.”

“《법구경(法句經)》에 ‘마음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생각이 흔들리지 않으며 선과 악을 초월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는 말이 있는데, 포은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 갖기를 실천할 수 있겠지?”

“예, 어르신.”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한 마음에서 오고,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이기심에서 온다’는 법문이 있네. 자비심만이 이 어지러운 세상, 이 삭막한 세상을 구할 수 있네. 살 만큼 산 나는 생을 작별할 때가 되었지만 세상에 얼마나 자비심을 베풀었는지 부끄럽다네.”

“…….”

정몽주는 이내 눈자위가 젖어들었다. 수(壽)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아무 변함없이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위해 충군애민(忠君愛民)하는 이제현의 모습이 정몽주 자신에게는 살아 있는 성인(聖人)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현, 이색, 정몽주는 조(祖)·부(父)·손(孫)의 삼대라는 학문의 계보를 이어온 고려의 거목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고려 조정을 개혁하고자 했던 신진사대부의 원류로 권문세족이 의지하고 있는 원나라가 기울고 한족이 세울 신흥국(명나라)이 중국 대륙을 지배할 것이라는 동북아 정세를 잘 파악하고, 고려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한 현인들이었다.

그날 밤 철원의 지장사 승방은 세 선비의 담론(談論)으로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같은 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면 셋이 걷다가도 하나가 되는 법. 바람 한숨 쉬어 가는 지장사엔 키가 같은 거목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장사 스님들과의 아쉬운 석별

다음날 아침.

고려 말에 큰 족적을 남긴 세 거목은 지장사 대문 앞에서 주지인 자혜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과 처사들, 보살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이제현은 목이 메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말을 시작했다.

“그동안 이 못난 늙은이를 위해 여러 가지로 애써주고 도와주신 분들께 이렇다 할 보답도 못 해드리고 떠나게 되어 미안합니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지장사에 올 수 있으려나…….”

자혜스님이 염주 구슬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대답했다.

“시중 어르신, 사람이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는 것처럼, 헤어지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會者定離 去者必返 회자정리 거자필반). 개경으로 가시더라도 저희 빈도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저희들은 늘 시중 어르신의 강녕을 기도하겠습니다.”

“자혜 스님, 내가 죽고 없어도 이 자리에 있는 목은과 포은, 그리고 서종이 스님의 좋은 동무가 되어 주겠지요.”

“나무관세음보살…….”

이제현은 자혜스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정들었던 곳, 철원의 지장사였다.

날씨는 해동(解凍)이 되어 따사로웠으나 이제현을 태운 마차는 미쳐 녹지 않아 돌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 위를 가로질렀다. 지장사를 떠난 다음날 저녁무렵, 마차는 송악산에 떨어지는 장엄한 노을을 바라보며 너무도 익숙한 대문으로 다가섰다. 이제현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이 반갑게 다가왔다. 대문 오른쪽에는 박씨부인, 서씨 부인과 연경에서 온 해월이, 그리고 일가친척들이 서있었고, 왼쪽에는 아들 창로와 딸·사위들, 그리고 그 바로 앞에는 몰라보게 훌쩍 자란 손자·손녀들이 서 있었다.

죽음 이후의 ‘무(無)’의 세계를 품어줄 개경의 수철동 집은 변한 것이 없었다. 가족들과 하인들, 집 정원의 느티나무와 매화나무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정원에 만개한 개나리와 진달래는 화려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고, 양지바른 담벼락의 틈새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지만, 가족들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그날 아침부터 서씨 부인과 며느리들은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촐한 주안상이 마련되었다. 첫째 서종과 셋째 창로, 그리고 손자 보림(서종의 아들), 덕림·수림·학림(작고한 둘째 달존의 아들)이 사랑방으로 모여들었다. 이제현은 평소 좋아하던 매실주를 한 잔 입에 대며 그윽하지만 천근의 무게로 입을 열었다.

 

 

 

“선비가 이 험한 세상을 헤쳐 가는 것은 마치 배(舟)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재주라는 것이 있어서 노가 되고, 운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순풍이 된 뒤에라야 그가 가는 길에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선비가 세상에 나가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최후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없다. 뛰어난 문재(文才)를 바탕으로 정도(正道)의 삶을 영위한다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행히 문재로 세상에 나아갔기 때문에 인생의 끝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만 생전에 쌓은 업보가 송악산보다도 더 크니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자손들에게 성리학자의 대의명분에 입각한 삶을 살 것을 당부한 다음날, 이제현과 해월이는 서안(書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제현은 해월의 손을 꼬옥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연경에서 개경에 온 지는 얼마나 되오?”

“한 보름 남짓 되었나 봅니다.”

“이 관장 때문에 내가 지장사를 일찍 떠나게 되었군.”

“때 아닌 폭설로 춘설이 다 녹지 않아서 일정을 오히려 늦춘 걸요.”

“우리가 만난 지 올해로 몇 해나 되지?”

“아이 대감도. 새삼스럽게 그건 왜 물어요. 한 50년 되었나 봐요.”

“이 관장도 이젠 많이 늙었어.”

“세월을 이기는 사람 본 적 있나요. 올해 예순 여섯인걸요.”

“연경의 만권당은 잘 운영되고 있겠지?”

“대감의 혼과 정신이 서려있는 곳인데, 잘못될 리 있겠어요.”

“내가 죽으면 최영 장군과 목은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으면 좋겠어.”

“돌아가시다니요. 그럴 순 없어요. 저는 이참에 대감을 모시고 개경에 오래 있을 생각인걸요. 두 분은 대감의 분신이니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어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하지 않았는가. 오래 살겠다는 생각은 중생들의 부질없는 욕심인걸…….”

다음날부터 이제현은 매일 아침 목욕재계하고 가묘(家廟)에 나가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린 다음 마지막 시무책인 <9조의 정책 건의서>를 써 내려갔다. 60여 년 동안 관직생활을 하며 체득한 국정 전반에 걸친 문제점들과 개선방안들을 정리하여 공민왕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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