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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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프리랜서 이화자  기자] 남들이 가지 못한 곳을 가고 나면 조금은 더 완전한 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에 매번 힘들어도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조금 더 멀리’를 꿈꾼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탁실라, 미나핀을 지나 여행자의 로망 훈자마을까지. 다시 국경 마을 소스트를 지나 중국의 파미르 고원을 넘어 카스Kashgar까지. 이름조차 낯설기만 했던 곳들은 그 후 조금은 더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조금은 아는 얼굴로 다가온다. 문득 어느 영화나 다큐에서 이들 지명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할 것 같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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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육로 여행은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여행, 그러니까 이 도시의 공항에서 다음 도시의 공항으로 간편하게 건너뛰는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고생을 안겨준다. 분명 국경과 국경을 땅으로 직접 밟아 넘는 것은 힘들지만 동시에 세상 어떤 편리함도 따라올 수 없는 초현실적 경험을 가져다준다. 나라는 달라도 닮은 사람들, 문화들, 그들 간의 소통과 연결, 단절과 묘한 긴장감이 오롯이 느껴져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굴러가는지, 지난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굴러왔는지, 아주 조금은 더듬어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인도의 최북단 라다크로 가는 육로여행이 그랬고, 시킴을 지나 국경을 통해 부탄으로 넘어가는 길도 그랬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의 길이를 직접 몸으로 느끼고 싶어 도시 간 이동에만 30시간 이상 버스로 달려 내려가며 만났던 창밖의 변화하는 지형과 날씨도 그랬다. 육로를 따라 국경과 국경을 넘어가는 많은 여행이 그랬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였다.

선택은 물론 오로지 여행자의 몫이다. 아직은 체력이 남아있을 때, 아직은 고생보다는 희열이 더 크게 다가올 때. 카라코람 하이웨이, 그곳에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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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풍경 속 날 것 그대로의 세상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국가 간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이다. 수많은 고봉과 빙하로 이루어져 있는 카라코람산맥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했던 험준한 지역이지만 새로운 문명을 향한 인간의 도전과 모험 정신은 이곳에도 결국 길을 내고야 말았다. 1966년 건설을 시작하여 무려 12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978년 6월에 개통된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그것이다. 험준한 지형 탓에 공사는 난항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무려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토록 비싼 대가를 치르고 마침내 열린 하늘길은 거대한 문명을 잇는 대동맥이 되었고, 오래전 혜초 스님과 고선지 장군을 비롯한 대상들이 문물을 실어 나르던 옛 실크로드를 뒤로한 채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징이 되고 있다.

히말라야, 카라코람, 힌두쿠시 세 개의 산맥과 인더스강, 길릿강 두 개의 강이 만나서 얽히고설키며 흘러가는 교차로Confluence of Indus and Gilgit Rivers에 차를 멈추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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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망대에 오르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기가 느껴진다. 올드 실크로드old silkroad 표식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산맥 한가운데 여인이 날카롭고 긴 손톱으로 할퀴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세로로 난 가늘고 긴 선이 눈에 들어온다. 옛 비단길이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당나귀나 말 한 마리에 의지하여 짐을 싣고 걸어서 넘나들었을 바로 그 길인 것이다. 지금은 탁 트인 고속도로 위로 알록달록 색칠을 한 파키스탄의 명물 아트트럭과 마을버스 스즈끼, 여행자들을 실은 미니버스와 비포장도로에도 끄떡없는 지프가 달리고 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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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해발 3천~5천에 이르는 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고산증에도 시달리고 마땅한 휴게소나 화장실도 없어 불편한 길이지만, ‘궁극의 길’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최고의 풍경을 선사한다, 이 길 위에선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고개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 설산과 히말라야 빙하가 녹아내려 만들어진 에메랄드 빛 아타아바드 호수attaabad lake, 인디아나존스 영화에도 나왔다는 후사이디두트 서스펜션브릿지까지,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경이로운 세상과 만나게 된다. 카메라 렌즈에 전부 잡히지 않는 압도적인 스케일은 미국의 캐년들도 가뿐히 눌러버리고 남을 규모이다. 노래를 흥얼대거나 수다를 떨던 사람들도 어느새 조용하다. 할 말을 잃는다는 게 이런 것이겠지.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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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높은 국경, 쿤자랍 패스 
Khunjerab Pass

카라코람하이웨이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에서 이른 가을로, 이 기간 외에는 폭풍을 동반한 눈으로 통행이 어렵다. 그 옛날 산적이 대상과 수도승을 상대로 약탈을 자행해 ‘피의 계곡’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쿤자랍 고개는 현장법사가 죽은 이의 뼈를 이정표 삼아 넘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험준하다. 이 길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해발 4,693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경, 쿤자랍 패스이다. 약간 긴장한 채 국경에 도착하니 고산증으로 인한 두통과 어지러움에도 불구하고 설산이 굽이치는 광활한 풍경에 가슴이 뻥 뚫렸다. 짐 검사와 여권 검사를 하느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일행들이 하나둘 고산증을 호소하자 아직 아이 티가 가시지 않은 중국 군인이 다가와 고산증에 좋다며 은단 맛이 나는 작은 알갱이를 한 움큼씩 쥐어준다. 현지 약의 효과일까.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히는 카라쿨Kara kull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전통 유목민들이 사는 유르트Yurt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어가기로 했다. 6년 전쯤, 파미르 고원을 지나며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했었는데, 사람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 그땐 눈보라까지 치는 거센 날씨였는데 오늘은 더없이 화창하다.

<다음 호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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