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액 입장’ 고수할까…협상 장기화 가능성도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진보연대 등 단체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한국 노동자 볼모로 방위비 강요하는 미국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진보연대 등 단체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한국 노동자 볼모로 방위비 강요하는 미국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6개월 넘게 지속됐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막판에 또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 한때 한국 정부 안팎에서는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고 기대했지만, 미국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대했다는 해석이 우세한 가운데 미국이 막판까지 증액 압박을 이어갈 전망이라 타결까지 진통이 예상되는 형국이다.

정부, 너무 섣불렀나···주한미군 무급휴직 사태도 여전

지난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지난 2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한국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미 국무부 관계자는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관계자는 “한국과 상호 이익이 되고 공정한 합의를 이뤄 먼 미래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동맹 강화와 연합 방위를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미국의 동맹국들이 더 기여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기대를 명확히 해왔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가 한국 언론에 먼저 논평을 보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한국 정부 안팎에서 제기됐던 ‘방위비 협상 타결 임박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 국무부가 ‘동맹국이 더 기여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미국의 증액 요구가 아직 후퇴하지 않았다는 점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의 ‘김칫국 트윗 논란’도 회자되고 있다. 방위비 협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 한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지난 2일 트위터에서 “나는 오늘 부화하기 전 닭을 세지 말라는 것이 때가 될 때까지 김칫국을 마시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배웠다”고 적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해당 트윗이 논란이 되자 “순수한(악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그가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김치를 즐겨먹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명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김치를 좋아해서 김칫국 관련 관용구를 썼을 뿐이라는 논리다.

주한미군은 또 “에이브럼스 장군은 대한민국 정부나 합참, 그리고 연합사와의 회의나 대화 시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어 구문과 은유들을 매주 배우고 있다”면서 “이는 그의 통역관이 번역 시에 놓칠 수 있는 미국의 구문을 사용하는 대신에 한국문화 범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사한 표현을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합의 접점

찾기 어려워

앞서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대사는 지난달 31일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을 앞두고, 한미간 방위비 협상이 ‘막바지 조율 단계’, ‘마지막 단계’라면서 “조만간 최종 타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청와대, 외교가 안팎에서는 빠르면 1일 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는 지난해 분담금 1조389억 원보다 10~20% 인상된 1조2000억 대이며, 협상 유효기간은 5년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타결 임박설을 정부는 하루 만에 진화했다. 외교부는 지난 2일 방위비 협상 상황에 대해 “고위급에서도 계속 협의해 왔으나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협상이 조기에 타결되도록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 타결을 위해 실무진이 아닌 고위급까지 나섰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모양새다. 고위급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으로 이날 전화 협의를 진행했으나 합의에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외교부는 “유선이나 화상을 통해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협상은 여러 채널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가 최종 타결에 진통을 겪는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잇따른다. 미 NBC 방송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백악관을 찾았다. 무급휴직은 예상대로 시행됐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방위비 협상이 막판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가 남아있는 분위기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로 협상 타결이 무산된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韓美국방 통화서도

이견 ‘팽팽’

일각에서는 정부가 방위비 협상의 막판 변수로 손 꼽혔던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잠정 타결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무급휴직 사태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서두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잠정 타결에 돌입했던 협상이 막판에 틀어지면서 또다시 미국의 증액 압박이 거세질지 이목이 집중된다. 당초 미국은 협상 초기에 50억 달러로 무리한 증액을 요구했다가 한 차례 40억 달러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겨우 좁혔던 총액 증가율을 10~20% 수준에 머무르게 한 상황에서 또다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간 방위비 인상폭은 2.5~25.7% 수준이었다.

지난 6일 정경두 국방장관도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전화 회담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관한 견해를 교환했으나, 의견 접근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문제에서도 해법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에 따르면 정 장관과 에스퍼 장관 간의 통화는 지난 6일 오후 8시30분(한국시간)부터 25분 남짓 이어졌다. 통화는 에스퍼 장관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이번 통화에서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에스퍼 장관은 이견이 여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서 “공정하고 균형 있고 포괄적인 합의에 신속히 서명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비췄다.

한미 방위비 협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일본 등 다른 동맹국과의 방위비 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측이 대폭 인상 입장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협상이 답보 상태를 거듭하면서 미국 안팎에서는 장기화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향후 협상이 어떻게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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