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매일 우리는 수많은 의사 결정에 직면한다. 매번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최적의 결론을 내리면 좋겠지만, 각자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꼼꼼히 따져 본 다음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동안의 경험이나 몇 가지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듯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시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부른다.

‘코로나 선거’라 불리는 국회의원 총선, 기초 정보량이 적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는 초유의 사태에서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택할 것인가? 또 각 정당은 선례가 전혀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어떤 전략과 전술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코로나19’ 여파로 예년보다 조용한 듯 보이지만, 그 어떤 선거보다 물밑 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선거전도 어느덧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제3지대는 거의 없이 완전히 양극단으로 갈라져 격한 선거전이 펼쳐진 데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소위 ‘블랙아웃’ 깜깜이 선거운동 기간에 접어들다 보니 판세 예측과 유불리에 대한 원인진단도 제각각이다. 쏟아지는 진단 가운데에도 진보, 보수 양 진영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점은 ‘공천 과정’과 ‘공천 결과’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공천전쟁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양 진영이 공히 “이기는 선거”를 위한 공천을 최우선 원칙으로 천명하였다. 이해찬 대표가 소위 ‘그립(grip)’을 강하게 틀어쥐고 주도권을 행사한 더불어민주당은 일찌감치 현역 의원 탈락 비율과 경선 기준을 확정 짓고 출발한 덕분인지, 일부 탈당과 무소속 출마의 부작용은 적었지만, 물갈이 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밋밋한 공천으로 마무리되었다. 

황교안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표명하면서 김형오 공관위원장의 힘이 배가된 미래통합당도 공천 초반엔 박수를 받으며 순항했다. 그러나 대권주자급 후보의 낙천과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가 본격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형오 키즈 사천’ 논란과 구태 정치인의 ‘돌려막기’ 및 청년 정치인의 ‘총알받이’ 비판을 자초했고, 급기야 지도부의 공천 번복이 “민경욱 일병 구하기”라는 비판으로 막을 내렸다.

이미 확정된 주요 정당의 비례대표 최선순위 후보자들이 거의 모두 코로나 확진자 치료와 관련된 의료인으로 채워진 것만 보아도 ‘코로나19’ 여파가 각 정당에 주는 무게감과 총선에 미치는 비중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극도로 혼란한 초유의 사태 속에서 ‘이기는 선거’를 위한 공천은 과연 제대로 된 모습이었을까?

통합당 공천 번복에 대해 황교안 대표는 ‘이기는 선거’를 위해 잘못된 공천을 바로잡는 과정이고 ‘이기는 공천’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밋밋한 공천으로 비판받던 민주당 공천에 대해서는 노련한 이해찬 대표가 ‘코로나19’ 사태 앞에 인지도 위주의 지키는 전략을 택한 ‘영악한 공천’이라는 평이 세간에 돌기도 했다.

훌륭한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뽑고 싶은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공약과 도덕성, 경력 등을 비교할 여력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지금이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시켜 판단하고 본능적으로 후보를 결정해야만 하는 ‘휴리스틱(heuristic)’ 상황일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 “아메리칸”에서 자기를 노리는 암살자가 누구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본능대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조지 클루니’처럼.

초유의 코로나 선거! 후보자들의 막말 등 변수를 단순화시켜 본능에 맡긴 채 판단해 보니 공천의 중요성이 새삼 더 크게 다가온다. ‘이기는 공천’을 주장하는 측과 ‘영악한 공천’으로 평가받는 측의 승자, 유권자는 진작에 그 답을 내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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