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적자 늪’에 빠진 한전… 한전공대 1조6000억 예산, 뒷감당은 누가?

 

한전공대 캠퍼스 가상 조감도 [뉴시스]
한전공대 캠퍼스 가상 조감도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략이자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추진했던 ‘한전공대’ 법인 설립이 결국 인가됐다. 한전공대 설립은 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월 후보였던 시절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본사를 방문했을 시 대선 공략으로 밀어붙였던 것으로, 일각에서는 호남 표심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총을 받았던 사업이기도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전공대 설립이 결국 허가가 떨어지면서 예산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총 투입되는 비용만 1조6000억 원. 이 중 한전이 부담해야 할 돈이 1조로 예상되면서 전기요금 인상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기료 인상 불가피한 상황… 오히려 전기료 내 줘

지난해 1조2765억 적자 기록… 11년 만에 최대치

한전공대, 총선 직전 허가 두고 ‘포퓰리즘’ 지적

무당층 “결국 국민들 세금으로 지어지는 것 아니냐”

문 대통령의 숙원사업이었던 한전공대가 개교를 준비중 이다. 지난 3일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는 화상 회의를 열어 한전공대 학교법인 설립을 최종 의결했다. 심사위에서 과반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첫 관문은 넘어섰고 2022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남 나주 부영컨트리클럽 120만㎡ 부지에 대학과 연구소 등을 지을 예정인데, 학생 1000명(학부 400명·대학원 600명)의 등록금, 기숙사비 전액을 지원한다. 규모는 교수 100명, 직원 100명으로 이뤄졌으며 석학급 교수에게는 4억 원, 정교수 2억 원 등 고액 연봉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은 지난 8일 ‘한전공대(가칭) 캠퍼스 종합계획 및 1단계 설계공모’에 대한 심사를 갖고 디에이그룹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디에이그룹)가 제출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디에이그룹은 운생동건축사무소와 함께 총 92.6점을 획득해 41억 원의 설계권을 확보했다. 이에 한전은 디에이그룹과 조만간 계약을 체결해 1년간 캠퍼스 종합계획 및 1단계 건립사업에 대한 기본 및 실시설계를 진행한 뒤 내년 4월쯤 공사 발주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전에 따르면 설계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올 3분기 정도 1단계 건립공사 범위를 정할 예정이다. 다만 한전측은 설계가 끝나는 내년 4월 공사를 발주할 예정이지만 2022년 3월 개교하려면 공사 기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발주를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한전이 곽대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한전공대 개교 준비 기간인 2021년까지는 투자비 등 5200여억 원이 필요하며 2031년까지는 특화연구소 건설 등 확장 비용이 필요해 총 1조6000억 원이 투입된다. 특히 이 중 한전이 부담해야 할 돈은 1조 원 상당으로 예상되면서 국민들의 전기요금 인상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자신을 ‘무당층’(특정 정당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밝힌 경기도 거주민 A씨는 “한전공대 설립 비용은 결국 국민들 세금으로 지어지는 것 아니냐”며 “안 그래도 적자인 한전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전의 한전공대 설립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현재 확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한전이 상장된 독립법인이라며 재정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전남과 나주시 등이 부담할 지자체 부담금 2000억 원과 한전 출연금 60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부족한 금액은 결국 한전이 부담할 몫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전공대 법인설립 허가는 재원 확보 문제로 두 차례 미뤄지기도 했다. 심사위는 지난해 12월 열린 1차 심사에서 “한전 측이 제출한 대학설립 재원 출연계획안에 구체성이 없다”며 심의를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1월 열린 2차 심사 때 역시 같은 이유로 의결을 미뤘지만 총선을 앞둔 세 번째 심사에서 바로 법인 설립허가가 났다.

한전이 과연 안정적으로 대학 설립 자금을 지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전은 지난 2년 연속 적자를 내며 재정상태가 크게 악화된 상태다. 2018년에는 2080억 원, 지난해는 1조276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영업적자 규모는 2008년(2조7980억 원 적자)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다. 2016년 134.4%였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86.8%로 치솟았다.

발전자회사들도 ‘적자 수렁’
부채 비율 증가

한전공대가 개교할 때까지는 한전과 발전자회사가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자회사들과 일정한 분담 비율에 따라 공동지원에 나서는 내용 협약을 맺었다. 한전뿐만 아니라 발전자회사(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들의 실적과 재무구조도 악화된 상태라 이들도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어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중부발전은 58억 원, 남부발전은 342억 원, 서부발전은 466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발전자회사 부채비율은 탈원전 정책이 도입된 2017년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부발전은 2017년 168.25%과 비교하면 지난해 43.36%p가 늘었고 남동발전은 26.84%p, 남부발전은 18.38%p, 서부발전은 16.96%p, 동서발전은 15.4%p가 증가했다. 기획재정부는 한전의 부채 비율이 2023년까지 153%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으며 중부발전 서부발전 부채비율은 200%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한전은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초 한전은 올해 정부와 전기료와 관련해 논의 후 전기료 인상체제 개편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전기료를 오히려 내줘야 할 처지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대구와 경북 지역 소상공인의 경우 오는 9월까지 전기료 50%를 감면해 주기로 했고 전국적으로도 소상공인과 저소득층 447만가구 이상을 대상으로 전기요금 납부기한을 3개월 유예하기도 했다. 특히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탈원전 후 70%선까지 추락한 원전 이용률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큰 수익원인 전력 판매 수요도 감소 중이다. 이에 한전 이사회는 줄어들지 않는 부채에 대해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에도 한전은 공대 설립을 위해 3956억 원의 지출을 보고했다.

한전 소액주주들, 文 정부 ‘강요죄’로 고발

한전은 정부가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지만 소액주주도 42만 명이나 된다. 한전의 계속되는 적자,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름철 주택용 전기요금 할인 등으로 소액주주들은 지난해 7월 문 대통령, 이낙연 전 국무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 주영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을 ‘배임 강요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한전소액주주행동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상장회사인 한전을 정부의 소유물처럼 여겨 공약이행,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해 한순간에 흑자회사에서 적자회사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재정 악화 속에서 한전이 안정적으로 대학 설립을 위한 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일각에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한전은 적자 늪에 빠졌는데 한전공대 설립 지원 금액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전기료 인상도 코로나19로 물 건너간 상황에서 공대 설립을 진행한다는 것은 얼마 안 남은 총선을 의식한 행동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한전공대 설립 인가 시기를 두고도 비판이 거세다. 4·15 총선을 불과 열흘 남짓 앞두고 한전공대 설립 인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허가한 것 역시 결국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다. 한전공대 설립 여부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나주혁신도시 한국전력본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에너지 분야 국정 감사에서 이종배 자유한국당(現 미래통합당) 의원은 “한전공대는 정부 입맛에 맞춘 대책 없는 코드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한전 김종갑 한전 사장을 향해 “오랜 공직생활과 기업 경영 경험이 있어 한전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라고 믿었는데 취임 이후 한전 경영이 악화되고 무리한 코드 경영을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원 인사도 문 정부 들어 친정부 인사를 감사로 임명하는 등 정부 입맛에만 맞춰 대책 없는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윤한홍 의원 역시 “탈원전에 의한 적자 누적으로 비상경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전공대 설립은 적절치 못한 결정”이라고 질타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야당의 공세에 곤욕을 치르는 김 사장을 옹호하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한전공대는 세계적인 에너지 공대로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짊어질 대한민국 신산업의 핵심 축”이라며 “지역의 문제를 넘어 여·야가 그 어느 때보다 합심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말했다. 같은 당인 최인호 의원은 “한전공대 설립이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며 “전력과 에너지를 책임지는 한전이 나주에 공과대학을 설립한다는 것 자체가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모범사례’가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 대선 후보 당시 한전공대 설립을 처음 제안했던 신정훈 19대 전남 나주시·화순군 국회의원은 지난 3일 교육부의 ‘학교법인 한전공대’ 심의 통과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11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한전공대의 교육부 법인설립 인가에 대해 조속한 처리를 건의했다. 이어 “문재인대통령께 처음으로 한전공대 공약을 제안했던 제안자로서 이번 한전공대 법인설립 심의가 통과돼 기쁘다”며 “나주, 화순 4대 행복 약속 공약인 ‘한전 공대 2022년 개교’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방공약특별위원장이었으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5·6대 전라남도 의원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민선 3·4기 나주시장을 맡았다. 특히 2014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제 19대 전남 나주시·화순군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