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의 김종인 4.15 총선 통괄선거대책 위원장은 21대 총선 구호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 3년의 “경제 실정”과 “정권 심판”을 들고 나서면서 선택한 캐치프레이즈(구호)이다. 그에 맞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코로나 국난 극복”과 “국민 고통완화”를 내세웠다. 민주당은 통합당의 “못 살겠다” 캐치프레이즈를 “퇴행적”이고 “지겨운 푸닥거리”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구호는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제시했었다는 데서 역사성을 지닌다. 우리 국민이 처한 64년 전의 시대상과 오늘의 현실을 반영한 듯싶어 관심을 끈다.

1956년 정부통령(正副統領) 선거에서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장면 부통령 후보는 이승만 자유당 대선 후보와 맞서며 “못살겠다 갈아보자” 구호를 외쳤다. 그에 대해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 수 없다”로 대응했다. 신 후보의 한강 유세에는 30만 명이 운집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150만 명 이었음을 감안하면 서울 시민 5분의 1이 운집한 대규모 집회였다. 그러나 신 후보는 유세기간 열차 여행 도중 별세했고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1956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66달러에 불과했다. 6.25 남침전쟁이 끝난 지 3년 뒤였다. 우리 국민들은 미국의 구호품에 의존해 허기진 배를 채웠던 시절이었다. 이 국난의 시기에서도 이승만 권력은 장기 집권을 위해 1954년 대통령 중임제 제한 폐지 개헌안을 불법으로 채택했다. 이 개헌안은 처음 국회에서 부결되었는데도 자유당은 “사사오입(四捨五入)”이란 해괴한 산술법을 들이대 통과시켰다. 이승만의 극렬 지지세력은 ‘땃벌떼’ ‘백골단’ ‘민족자결단’ 등의 이름으로 반대자들을 폭력과 폭언으로 짓눌렀다. 뿐만 아니라 자유당은 경찰과 군의 특무부대를 동원, 공공연히 야당을 탄압했다. 여기에 1956년 신익희 후보가 내세운 “못 살겠다 갈아보자” 외침은 권력에 눌리고 빈곤으로 찌든 국민들에게 구원의 복음으로 들렸다. 오늘의 통합당도 “못 살겠다 갈아보자” 구호를 다시 꺼내들면서 64년 전처럼 유권자들로부터 열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한 듯 싶다.

작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3만1천431달러로 올라섰다. 이젠 건설 현장 노동자도 자가용을 굴리고 출근하는 부자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통합당이 올 4.15 총선 구호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내세운 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 문재인 정권 3년 통치 속에 “못 살겠다”고 외치는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다는 사실을 공략하기 위한 데 연유한다.

문 정권은 경직된 좌파 이념 속에 주52시간제 강행과 최저임금 과격인상 그리고 친노조·반기업 노선으로 기울었다. 그로 인해 경제는 침체되었고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들을 궁지로 내몰았다. 한 자영업자 단체 회장은 청와대 회의 때 문 대통령에게 “다 죽게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상인은 경기가 너무 안 좋다며 “살려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충남 아산의 전통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상인은 현지에 들렸던 문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내뱉었다. 64년 전 “못 살겠다”던 그때 상황들을 연상케 했다.

그런가 하면 “문빠(문재인 지지 빠돌이·빠순이)”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등 문재인 극열 지지 세력은 대통령 비판자들을 무차별 공격한다. 자유당 때 “땃벌떼” “민족자결단” 등을 떠올리게 한다. 경찰도 집권 세력 쪽으로 치우친다. 자유당 시절의 정치 경찰을 상기케 한다. 4.15 총선에서 통합당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 구호가 얼마나 유권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오늘날의 “다 죽게 생겼다” “살려 주세요”의 처절한 외마디 절규는 64년 전처럼 “못 살겠다”는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다는 사실,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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